주간동아 1131

2018.03.28

황승경의 on the stage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서사시

뮤지컬 | ‘닥터 지바고’

  • 입력2018-03-27 11: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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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오디컴퍼니]

    [사진 제공 · 오디컴퍼니]

    광활한 설원에서의 애잔한 사랑으로 기억되는 뮤지컬 ‘닥터 지바고’가 6년 만에 한국 관객을 다시 만나고 있다. 제정러시아 차르 시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 볼셰비키 혁명, 러시아 내전으로 이어지는 혼돈 시대의 여러 인간 군상이 뮤지컬 음악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그들의 운명은 거대한 러시아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솟구치고 사라진다. 

    ‘닥터 지바고’ 하면, 이집트 출신 배우 오마 샤리프(1932~2015)가 열연한 영화가 가장 먼저 연상된다. 원작은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의 동명 소설이다. 

    요동치는 러시아의 근현대사를 겪은 작가는 지바고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글로 남겼다. 인간 가치에 대한 존중이 실종된 비이성적 시대의 발자취를 세상에 증언하려 했다. 

    의사이자 시인인 지바고(류정한 · 박은태 분)는 우연히 마주친 여인 라라(조정은 · 전미도 분)를 뇌리에서 지우지 못한다. 어쩌면 앞으로 닥칠 그녀와 운명적 사랑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미 정혼한 토냐(이정화 분)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한 지바고는 남편을 찾아 전장에 온 종군 간호사 라라를 만나고 이내 두 사람은 애달픈 운명적 사랑에 빠진다. 전쟁이 끝나자 두 사람은 모스크바와 유리아틴으로 각자 길을 떠난다. 두 사람은 왕당파(백군)와 혁명파(적군)로 나뉘어 총부리를 겨누던 처참한 내전의 와중에도 자석처럼 재회하고, 이후 우연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혁명이나 이념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한 지바고는 생사가 갈리는 절박한 순간에도 창작에 전념한다. 

    한편, 라라의 남편 파샤(강필석 분)는 숙청당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라라를 위해 반드시 혁명대업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해 스스로 냉혈한이 됐다. 라라가 진정 원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파샤의 죽음으로 라라를 지켜주던 방패막이 없어졌다. 



    라라의 정조를 유린하며 파샤를 파멸로 이끈 변호사 코마로프스키(서영주 · 최민철 분)가 라라와 지바고에게 거부할 수 없는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뮤지컬은 영화나 소설보다 엔딩 시점을 앞당겨 색다른 판타지로 관객을 인도한다. 쉴 새 없이 다이내믹하게 바뀌는 시대 장면 속에서 배우들의 열연은 극을 입체적으로 이끈다. 덕분에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스토리는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대서사시가 됐고, 다큐멘터리 영상과 세련된 조명이 무대 위에서 장대하게 펼쳐진다. 다만 오케스트레이션의 셈여림 조절과 음악적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다. 지휘자의 과도하고 과장된 동작은 잔잔하고 서정적인 작품 분위기와 맞지 않았다. 펄쩍펄쩍 뛰는 지휘자의 지휘봉이 무대 위 애잔한 배우들의 동선 사이에서 포착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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