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1

2018.03.28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여행 같은 공연’을 꿈꾸던 음악공동체는 왜 사라졌나

협재 게스트하우스의 음악실험

  • 입력2018-03-27 11: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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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협재 게스트하우스에서 가수 이적(왼쪽)이 공연 후 뒤풀이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사진 제공 · 김작가]

    제주 협재 게스트하우스에서 가수 이적(왼쪽)이 공연 후 뒤풀이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사진 제공 · 김작가]

    제주는 서울 다음으로 많이 머무르는 곳이다. 한창 빠졌을 때는 한 달에 일주일씩 내려가 있을 정도였다. 고교 수학여행 때도 안 와본 이 섬에 처음 발을 디딘 건 2011년 초였다. 만화가인 친구가 서울 생활을 접고 제주로 간다 해 따라가본 것이다. 당초 3박 4일 일정으로 갔다 바로 항공권을 연장해 일주일을 채우고 올라왔다. 그는 협재에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당시 국내에는 게스트하우스 여행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만화계에서 이름을 얻고 있던 그의 게스트하우스는 성업을 이뤘다. 

    그 무렵 협재엔 20세기 스타일의 민박집이 띄엄띄엄 있을 뿐, 편의점조차 찾기 어려웠다. 제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빛깔의 바다와 ‘어린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모양의 비양도가 있건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협재 바다를 고향집인 양 드나들다 보니 잔꾀가 생겼다. 

    주말이건 평일이건 늘 30명 안팎의 투숙객으로 만실인 데다, 예약 대기를 걸어놓은 사람들까지 있다. 게다가 협재에는 이렇다 할 유흥자원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게스트하우스 거실에서 공연. 단, 음향 시스템이 문제였다. 스피커 등 최소한의 음향 장비를 갖출 수는 있겠지만 제대로 된 사운드 효과를 내기는 어려웠다. 

    이 고민을 해결해준 건 데이미언 라이스의 내한공연이었다. 2011년 처음 한국을 찾았던 라이스는 어쿠스틱 기타 한 대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공연 하이라이트는 ‘Cannonball’을 부를 때였다. 그는 모든 음향 전원을 내린 뒤 노래하고 연주했다. 옆 사람의 숨소리마저 소음으로 느껴질 만큼, 객석 집중도는 최고조로 향했다. 그 경험을 떠올리며 나는 게스트하우스 공연의 모토를 이렇게 정했다. ‘No Plugged.’ 최선의 환경을 제공할 수 없다면 공연자의 역량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생각이었다. 

    주변의 친한 음악가 가운데 제주 공연을 하고 싶어 하는 이가 많았다. 항공권과 숙박을 책임질 테니 여행 같은 공연을 해보자고 그들을 꾀었다. 대부분 흔쾌히 응했다. 제법 자신감 있는 라인업이 형성됐다. 어차피 일정 수의 관객이 확보된 상황, 한 가지 꾀를 더했다. 공연 일자는 미리 발표하되 라인업은 공연 한 시간 전 알려주는 신비주의 전략이었다. 



    짙은, 3호선 버터플라이, 허클베리핀, 언니네 이발관으로 이어지며 월마다 열린 공연은 늘 사람들로 가득 찼다. 게스트하우스 거실에서 아티스트의 생목소리와 날것의 연주가 울려 퍼졌다. 공연이 끝나면 그 자리에서 모두 어울려 제주의 주말 밤을 만끽했다. 결국 이적까지 이 공연을 위해 제주공항에 내렸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는 사이, 제주 전역에 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생겨났다. 협재도 ‘제주 서쪽의 홍대 앞’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개발됐다. 여기저기서 유사한 공연이 열렸다. 그리고 나는 그 공연을 접었다. 남들 다 하는 걸 굳이 계속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지금도 제주 구석 어디선가 기타를 멘 뮤지션이 공연을 한다. 아예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섬으로 내려간 음악인도 적잖다. 문화적으로 풍요로워져야 하는 게 정상일 텐데 꼭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게스트하우스 붐이 꺾이고, 펜션이나 호텔을 이용하는 여행객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느슨한 형태의 공동체 문화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인디문화 중심지이던 홍대 앞에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음악이 뒷전으로 밀린 것과 유사한 양상이다. 한 지역의 개발과 문화의 성장은 정녕 반비례하는 걸까. 사람들로 북적이던 친구의 게스트하우스는 텅 비어 갔다. 그걸 보면서 가졌던, 풀기 힘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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