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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on the stage

혹독한 시대에 맞선 3代, 풍랑 같은 가족사

연극 ‘제향날’

혹독한 시대에 맞선 3代, 풍랑 같은 가족사

혹독한 시대에 맞선 3代, 풍랑 같은 가족사

[사진 제공·국립극단]

고당 조만식(1883~1950)과 백릉 채만식(1902~1950)의 이름 및 사망 연도가 같아서인지 이 둘을 종종 헷갈리곤 했다. 직업은 다르지만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대를 적극적으로 살다간 조선 지식인이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고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어찌 민족 지도자와 친일 문학가를 구분하지 못하느냐”며 망신을 당한 이후 친일부역 작가라는 선입견에 채만식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기도 했다.

오점을 남기기는 했지만 그의 작품 면면을 살펴보면 진한 중독성이 있다. 채만식은 어려운 수사를 작위적으로 화려하게 수놓는 게 아니라, 냉정하고 간결하게 작품 속에 현실을 투영했다.

풍자, 아이러니, 알레고리, 역설, 패러디 같은 기법을 동원해 구수한 사투리와 구어체, 판소리 등을 작품에서 맛깔스레 구사하며 주제를 형상화했다. 그가 쓴 희곡 30여 편 가운데 ‘제향(祭饗)날’은 대표작이 아니다. ‘제향날’을 탈고하고 반년도 안 돼 대표작인 장편소설 ‘탁류’와 ‘태평천하’를 발표했다.

‘제향날’에는 채만식 특유의 역사 현실에 대한 대응 방식이 좀 더 거칠고 직설적으로 담겨 있다. 그리고 1930년대 현대문학에서 양산되던 가족사 소설처럼 가족의 변화를 통해 역사의 변화를 조망한다. 이 희곡을 발표한 37년은 일제의 악독한 탄압이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던 시기. 채만식은 제사 지내는 망자의 삶을 통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꺼져가는 민족의 앞날을 조망하고 싶었을 테다.





혹독한 시대에 맞선 3代, 풍랑 같은 가족사

[사진 제공·국립극단]

‘제향날’은 남편의 제사를 준비하는 최씨가 외손자에게 들려주는 파란만장한 가족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다. 젖먹이를 키우면서 임신까지 한 그녀는 동학운동을 하는 남편의 최후를 목격해야 했고,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상하이로 떠나 소식이 없는 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사회주의운동에 뛰어든다. 과거 이야기로 인해 같은 무대공간에 다른 시간이 겹쳐지고, ‘현실의 나’가 이야기하는 ‘과거의 나’가 분신으로 한 무대에 등장한다. 당시 검열을 의식해 작품의 표현기법과 수위를 조절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희곡은 무대에 올리기에는 매우 난해한 구성이다. 그래서 이를 극복할 고도의 연출기법을 요한다. 연출자 최용훈은 역사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을 완벽하게 분리하며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최용훈은 1930년대 언어를 구사해 시기성을 살리면서 채만식의 건조한 문체를 뜨겁게 만들었다.

불의에 굽힐 줄 모르는 의연한 역사적 인물과 그의 모든 짐을 짊어져야 했던 기구한 팔자의 순박한 여자, 그리고 외손자. 그들을 지켜보는 관객은 가슴 한구석을 저미는 알알함으로 눈물을 훔친다.







주간동아 2017.10.25 1110호 (p79~79)

  • 공연예술학 박사  ·  동아연극상 심사위원회 간사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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