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8

2017.07.26

法통팔달

증언 거부, 기습 증언의 난장

‘세기의 재판’

  • 윤배경 법무법인 율현 대표변호사 bkyoon@yoolhyun.com

    입력2017-07-25 14:5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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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세기의 재판’이 서울 서초동 법정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형사재판이 그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혐의는 다수지만, 이 부회장 재판의 핵심은 박 전 대통령이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 부회장에게 부당한 편의를 봐주고 뇌물을 받았는가 하는 점이다. 특별검사팀은 지난해 이 부회장의 혐의 입증에 주력했고 마침내 그를 구속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그 후 특검 수사기록은 검찰로 넘어가 민간인 신분의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피의자들의 혐의를 입증할 자료는 차고 넘친다”고 했건만, 특검과 검찰은 공소사실을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법원에 입증해야 할 부담을 진다. 이는 언론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과는 다른 차원이다. 만약 이들에게 무죄가 선고된다면 무리한 수사로 죄 없는 사람에게 옥살이를 시켰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피고인들의 변호를 담당한 대리인들 역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특검과 변호인들의 칼과 방패 대결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막전막후의 전략과 법정 안팎에서 전술이 총성 없는 전쟁 그대로다.

    먼저 변호인 측이 포문을 열었다. 지난달 삼성그룹 임직원이 법정에 나와 잇달아 증언을 거부했다. 박 전 대통령 사건에서는 박상진 전 대한승마협회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등 삼성그룹 전직 고위 임직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증언을 거부했다. 이들은 증언거부권 행사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본인들이 연관된 뇌물 공여 사건에 불리하게 작용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형사소송법의 규정을 최대한 활용한 전략이다. 동법 제148조는 자기나 친족 또는 친족관계에 있던 자가 형사소추 또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사실이 발로될 염려가 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형사소송에서 증인의 증언 거부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검찰 처지에서는 이들 증인이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이 담긴 각종 조서와 진술서를 증거로 활용할 수 없게 된다. 형사소송법에서는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을 기재한 조서 또는 진술서 등 서류의 경우, 진술자가 공판기일 등에서 적법하고 믿을 만하게 작성됐다고 진술해야만 법원이 이를 증거로 쓸 수 있도록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동법 제314조, 제315조). 서류 증거가 우월한 민사재판에 반해 형사재판에서는 증인의 입이 좀 더 중요한 이유다. 삼성그룹 인사들의 잇단 증언 거부로 특검이 한 방 먹은 셈이다.

    그런데 최근 특검이 필살기를 날렸다. 7월 12일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이 부회장 재판에 출석해 증언한 것. 정씨가 갑자기 법정에 나타나 삼성 측은 물론, 어머니에게도 불리한 진술을 쏟아냈다. 형사송소법 제148조의 진술거부권을 포기한 것이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이 부회장과 최씨 측 변호인들은 격앙했다. 정씨에 대해 “살모사 같다, 장시호보다 더 하다”고 했다. 증언이 있던 날 새벽 2시 무렵 정씨를 승용차로 태우고 모처로 떠나는 폐쇄회로(CC)TV 영상이 언론에 보도되자 특검을 향해 “보쌈해 증언하게 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앞으로 박 전 대통령, 이 부회장, 최씨의 증언 등이 각각 예정돼 있지만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 가늠하기 어렵다. 국격(國格)이 달린 세기의 재판. 실체적 진실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건만 기습과 역습, 허 찌르기가 어지러이 춤을 춘다. 난장(亂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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