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59

2022.10.07

폼페이 남녀가 소파 앞에 누워서 죽은 사연은?

[궤도 밖의 과학] 유전자 검사 기술 발전으로 과거 상황 복원… 결핵으로 도망 못 간 것 추정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입력2022-10-12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GettyImages]

    [GettyImages]

    아마 유전자나 DNA라는 단어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의 차이를 명확히 알기는 쉽지 않다. 그저 시간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머나먼 조상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기억해낼 뿐이다. 오래전 사람들은 당연히 자식은 부모로부터 여러 가지 특성을 물려받는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부모가 보유한 여러 특징이 마치 카페라테의 커피와 우유처럼 자연스럽게 섞여 자식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났다. 하지만 이 과정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혹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대답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유전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멘델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유전법칙을 발견한 그레고어 멘델은 오스트리아 제국 식물학자이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사제였다. 원예가 집안에서 자란 어머니 덕분에 식물 품종을 개량하는 농업기술에 대한 기본 지식을 보유한 그는 이를 바탕으로 현대 유전학의 기초를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특히 완두콩 교배를 관찰하면서 알아낸 사실들을 통해 이런 현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어떤 인자가 존재한다고 확신했고, 훗날 이 인자는 유전자로 불리게 됐다.

    유전법칙을 발견한 그레고어 멘델. [GettyImages]

    유전법칙을 발견한 그레고어 멘델. [GettyImages]

    생물 고유의 특성을 정보 형태로 담는 유전자

    유전자는 모든 생물의 고유한 특성을 정보 형태로 담고 있는 부분으로, DNA 서열 가운데 특정한 의미를 갖는다. 사람의 유전자를 담고 있는 세포 내 굵은 막대 모양 구조물은 염색체이며, 세포가 분열할 때 핵 속에 나타난다. 이렇게 DNA부터 유전자를 지나 염색체를 담고 있는 핵까지 가면 드디어 사람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세포가 등장한다. 세포는 핵을 보유하며, 모든 생물체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단위가 된다.

    다시 유전자의 기초물질인 DNA로 가보면 1869년 스위스 의사이자 생물학자였던 요한 프리드리히 미셰르가 상처에서 생기는 고름을 연구하다 DNA를 발견했다. DNA는 생물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을 담당한다. 세포의 유전 정보를 갖고 있으며, 전체 구조는 2개의 폴리뉴클레오티드(polynucleotide) 사슬이 서로 꼬여 있는 이중나선 형태다. 이중나선 구조의 기본 단위는 다시 당과 인산, 그리고 염기로 이루어진 뉴클레오티드(nucleotide)라는 단위체 분자로 내려오는데, 여기서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시토신) 4종류의 염기가 배열 방법에 따라 특정 단백질을 지정한다. 즉 염기가 어떻게 늘어서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집을 짓거나 무언가를 만들 때 설계도를 그리는 이유는 완성된 형태를 사전에 예측하기 위해서다. 설계도가 있다면 완성된 집이 없어도 서로 정보를 공유하거나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완벽한 집을 짓기 시작할 수 있다. 사람의 정보가 담긴 유전자가 바로 이런 설계도다.



    이중나선 구조 발견부터 게놈 프로젝트까지

    좀 더 쉽게 비유해보자. 만약 염색체를 책이라고 한다면 DNA는 책에 적힌 수많은 글자가 된다. 이런 글자들이 모여서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만드는데, 이를 문장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문장 안에는 각각 의미를 지니는 단어들이 존재할 텐데, 이 단어들이 유전자가 된다. 이렇게 글자와 단어, 문장들이 적혀서 책을 만들고, 책이 모여 전집을 이루면 결국 우리를 만들 기회가 온다. 혹시 이 책이 컴퓨터에서 사용하기 위한 기계어라면 0과 1이라는 두 가지 글자가 다양한 배열로 쓰였겠지만, 다행히 우리 몸을 만들기 위한 책에 사용되는 글자는 앞서 이야기했던 DNA 염기서열인 A, T, G, C 4종류다. 현생 세포에서 이전 세대의 정보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유전물질이 대부분 이중나선 형태의 DNA라는 점에서 놀랍지만, 이러한 DNA 구조의 발견 과정은 굉장히 위대하고도 치졸했다.

    1953년 ‘네이처’라는 유명한 학술지에 제임스 듀이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논문이 실렸다. 바로 DNA의 이중나선 구조에 관한 내용이었다. 사실 두 연구자는 DNA의 비밀을 알아내고자 애쓰던 다른 쟁쟁한 연구자들에 비하면 상당히 뒤떨어져 있었다. 왓슨은 동물학을 공부하다 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크릭은 나이는 많았으나 아직 학위도 없는 초보 연구자였다. 당시 과학자들은 이미 DNA에 무언가 위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예상했고, 이제 구조를 밝혀내는 게 가장 중요한 시점이 왔다. 이 과정에서 가장 앞선 성과를 보유하고 있던 과학자는 런던 출신의 로절린드 프랭클린이었다. 킹스칼리지 산하 연구소에서 X선 회절 실험을 진행하던 그는 실제 핵 속의 DNA 구조가 나선형으로 돼 있다는 명확한 증거를 촬영했다. 하지만 발견한 내용을 정리하는 사이 앙숙이던 동료 모리스 윌킨스가 그의 DNA X선 회절 사진을 왓슨과 크릭에게 몰래 보여줬고, 결정적 단서를 확보한 그들은 나선형 모형으로 만들어 세상에 발표했다. 물론 왓슨과 크릭이 놀라운 직관력으로 결과를 도출하긴 했지만, 허락도 없이 함부로 남의 사진을 분석한 건 굉장히 무례한 연구 업적 가로채기의 결과였다.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프랭클린은 37세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살아 있는 이들에게만 돌아가는 노벨상의 주인공은 왓슨과 크릭, 그리고 윌킨스였다.

    다시 말하지만 DNA는 A, T, G, C라는 4종류의 염기로 구성돼 있다. 배열에 따라 설계도가 완전히 바뀌기 때문에 염기 성분들이 특정 유전 정보 내에서 어떻게 배열됐는지를 밝히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이걸 유전자 분석이라고 부른다. 만약 인체 설계도를 보유하고 있다면,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를 바로 알 수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그래서 유전자를 분석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이게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등장한 이유다.

    게놈(genome)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를 합쳐서 만든 단어로, 하나의 세포에 들어 있는 DNA 염기배열 전체를 의미한다. 1990년 시작된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중국까지 6개 나라에서 인간 게놈에 있는 32억 개 염기쌍 서열을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13년간 3조5000억 원을 투입했다. 2003년 인간 유전체의 서열을 전부 알아낼 수 있었고, 이후 각 유전자가 어떤 기능을 가졌고 염기서열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등을 연구하는 유전체학 분야에서 기반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전자 분석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들

    데니소바인 화석. [사진 제공 ·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데니소바인 화석. [사진 제공 ·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정말 엄청난 돈과 시간이 들어간 프로젝트다. 하지만 이제는 일일이 사람 손으로 작업하는 대신 모든 기술이 자동화돼 속도가 빨라졌고, 분석 비용도 상당히 낮아졌다. 추출된 DNA를 짧게 자른 후 염기서열 정보를 기기로 해독하고, 해독된 염기서열을 컴퓨터로 조립하고 분석한다. 이렇게 하면 DNA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정보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유전자 분석은 앞으로 어디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까.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유전자 분석의 활용처는 부모와 자식에 진짜 혈육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친자확인이다. 혈액이나 모근, 구강상피세포, 타액 등에서 DNA를 추출하고 PCR로 증폭해 공통으로 반복되는 염기서열을 확인한다. 쉽게 말하면 두 사람이 각자 해온 과제를 서로 베꼈는지 확인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두 과제를 전부 다 읽고 비교해보기는 힘드니까 제출된 두 과제에서 특정 단어 하나만 본다. 예를 들어 ‘목표’라는 단어만 본다고 가정하면 ‘목표’가 두 과제의 어떤 위치에서 나오는지만 비교해도 베낀 건지 아닌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친자확인도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심지어 최근에는 유전자 분석이 고고학 분야에서도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2018년 ‘네이처’에는 6년 전 러시아 시베리아 동굴에서 발견된 뼈 화석의 유전자를 분석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시간이 오래 지난 뼈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가 개발한 새로운 유전자 분석 방법으로 해낼 수 있었다. 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밝혀진 화석의 주인은 4만 년 전 사라진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사이에서 태어난 10대 소녀였다. 지금은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만 남아 있지만,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도 같은 시기에 존재했다. 이번 유전자 분석을 통해 당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사이에 이종교배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심지어 매우 흔한 일이었다는 추측도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인류 기원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최근에는 화산재에 덮인 상태로 발굴된 폼페이인의 유전자도 분석했다. 1933년 폼페이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뿜어져 나온 화산재에 덮여 사망한 두 남녀의 시신이 발견됐다. 특이한 점은 화산재를 피해 도망치다 집 밖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소파를 바라보고 편안히 누운 채로 사망했다는 점이었다. 두 남녀의 귀 안쪽에서 유전물질을 추출해 해독했더니 건강 상태에 답이 있었다. 여성의 DNA는 분석할 수 없었지만, 해석된 남성의 DNA에서 결핵균 유전자를 발견했다. 화산폭발 이전에 결핵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기에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우리는 고고학적으로 아주 오래전 상황에 대해 마치 사진으로 보유한 것과 동일한 수준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인류가 갖게 된 엄청난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반드시 돌아갈 필요가 있는 과거 장면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오직 과학기술이 있기에 가능한 추억여행이 언젠가 인류 기원의 비밀을 풀어주길 바란다.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