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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야말로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 치유법을 찾자

티앤씨재단 주최 혐오 주제 컨퍼런스 ‘비뚤어진 공감이 만드는 혐오사회’ 강연요약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혐오야말로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 치유법을 찾자

티앤씨재단 APOV 컨퍼런스 토론 세션 참석자들. 
왼쪽부터 홍성수 교수, 김민정 교수, 이희수 교수, 한건수 교수, 사회자 황수경 아나운서(왼쪽). 티앤씨재단 APOV 컨퍼런스 
‘Bias, by us’를 알리는 포스터.  [사진 제공 · 티앤씨 재단]

티앤씨재단 APOV 컨퍼런스 토론 세션 참석자들. 왼쪽부터 홍성수 교수, 김민정 교수, 이희수 교수, 한건수 교수, 사회자 황수경 아나운서(왼쪽). 티앤씨재단 APOV 컨퍼런스 ‘Bias, by us’를 알리는 포스터. [사진 제공 · 티앤씨 재단]

코로나19로 마음의 둑이 무너지고 있다. 심적 불안이 커지면 미움과 분노 지수가 올라간다. 전 세계가 혐오와 차별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바이러스 팬데믹(대유행병)을 겪고 있지만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티앤씨재단(T&C Foundation)이 ‘비뚤어진 공감이 만드는 혐오 사회’를 주제로 한 온라인 컨퍼런스 ‘바이어스 바이 어스(Bias, by us)’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에 본격적으로 ‘혐오’를 키워드로 한 인문학 컨퍼런스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추석 연휴기간이었던 10월 2일~4일간 사전 신청자들만 대상으로 했는데도 인터넷 조회 수가 1만 회를 넘어 큰 관심을 드러냈다. 재단은 10월23일 재단 유튜브 채널에서 컨퍼런스를 전체 공개한다. 다음은 강연요약.

1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혐오의 기원, 생존과 공감의 파편

[사진 제공 · 티앤씨 재단]

[사진 제공 · 티앤씨 재단]

혐오는 해당 대상을 회피하고 싶은 행동적인 요인까지 들어가 있는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이다. 전쟁이나 감염병처럼 생존이 극단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모든 게 불확실해지고 불안해지기 때문에 집단의식이 강화된다. 이게 잘못된 방향으로 파편이 튀게 되면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로 나타날 수가 있다. 

혐오는 다른 집단을 미워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내 자신에 대한 사랑, 내 집단에 대한 애착이 오작동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공감 자체는 매우 좋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기가 속한 집단에만 국한되면 내 집단이 아닌 사람들을 혐오하고 차별하고 무관심해지는 그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혐오가 가지고 있는 은밀한 속성들, 즉 공감의 뒷면일 수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속한 집단에만 공감하는 위험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감만이 이타적인 행위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혐오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 공감과 같은 착한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런 마음을 갖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을 돕고 배려하고 이해하는 행동이 나올 수 있는 시스템과 제도를 갖춰놓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2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혐오현상의 이해와 과제

[사진 제공 · 티앤씨 재단]

[사진 제공 · 티앤씨 재단]

역사적으로 혐오와 차별은 폭력을 낳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건이 ‘홀로코스트’였다. 유럽연합의 탄생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지만 지금은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혐오문제가 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예전에는 혐오조장이 국가권력에 의한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일반 대중들이 동참하고 있다. 인터넷 놀이 정도가 아니라 집회를 하는 등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히틀러 같은 선동가가 대중 연설로 혐오를 조장했지만 지금은 가짜뉴스, 음모론이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저성장시대 도래로 생존에 대한 위협이 늘면서 사람들의 불만, 분노, 우울감이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집단주의 문화가 강해지면서 이질적인 집단에 대한 거부감, 적대감이 확대되고 있다. 

재난의 시기에는 약한 사람들을 겨냥해 희생양을 찾아 공격하는 식으로 혐오가 확산됐던 경우들이 많았다. 1918년 스페인독감 때도 이주자들에게 책임을 물리는 혐오 현상으로 이어져 포퓰리즘 정치, 나치 정권을 등장하게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됐다. 진짜 원인과 맞서 싸우지 않고 희생양을 찾는 식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3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현대의 혐오: 인터넷과 혐오

[사진 제공 · 티앤씨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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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분석을 통해 혐오를 키워드로 하는 기사들을 찾아보면 1990년에서 99년까지는 매년 1000개 미만이었다가 2000년이 되면서 1000개가 넘기 시작하고 2015년에는 4400여 개, 지난해 1만 건으로 급증한다. 올해는 7월 기준 8000건이 넘었다. ‘혐오’ 관련 기사가 가장 많았던 달은 2020년 2월로 1826건이었고 다음으로 많았던 달은 2020년 3월로 1413건이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혐오나 편견은 ‘감정 전염’으로 확산되며 네트워크를 통해 확대되어 집단성을 띤다. 부정적 감정이 긍정적 감정보다 전염력이 훨씬 강하다. 대면 상황뿐 아니라 비대면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혐오는 일시적 혹은 개인적 차원의 감정으로서의 아니라 인종주의, 자민족 중심주의, 반유대주의, 성차별주의 등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사회적 의미에서 다뤄져야 한다. 역사적으로 특정 집단에 투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늘 소수 집단에 대한 공격으로 변했다.
 
인터넷은 혐오를 표현하고 특정집단을 공격하는 좋은 수단이다. 인터넷상 혐오표현이 더 널리 퍼지고 극단적인 양상을 띄는 과정은 침묵의 나선모델, 연쇄 하강 효과, 집단극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맞춤형 정보를 통해 편향된 정보를 얻고 믿는 것만 보려는 심리적 기제도 혐오를 강화시킨다. 혐오에 대항하는 집단적 연대와 조직에 기반한 ‘대항표현’을 제안하고 싶다.

4 이은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혐오발언 왜 문제인가?

[사진 제공 · 티앤씨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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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상 혐오의 난무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까지 인종 차별 반대 시위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띄웠다가 페이스북 주가가 폭락하는 일까지 있었다. 

온라인 상 혐오 발언을 별생각 없이 공유한다거나 간단하게 ‘좋아요’를 누름으로써 해당 혐오발언에 대해 자연스럽게 더 강한 신념을 갖게 되고 그 결과 태도가 더 극단화된다는 것이 여러 실험을 통해 드러났다. 개방성이라는 특징 때문에 직접 커뮤니케이션 행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혐오, 증오 발언에 노출이 된다. 

특정 자극물에 자주 노출이 되면 이를 당연하게 여겨 어지간한 자극에는 눈도 깜짝않는 ‘둔감화’가 생긴다. 온라인상 접하게 되는 뉴스 댓글이나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다양한 포스팅 혹은 댓글들도 머리 속 현실 인식에 영향을 준다. 

사람들은 따돌림 당하고 싶지 않다는 욕구 때문에 끊임없이 타인들의 관심, 취향에 신경을 쓴다. 내 의견이나 취향이 소수에 속한다고 판단되면 침묵한다. 그 결과 소수 의견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의견으로 전락된다. 

오늘날 여론을 파악하는 매우 중요한 잣대가 댓글이나 소셜미디어 포스팅이다. 이런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고 혐오, 증오 발언을 교정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건전한 시민 정신의 표현이란 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는 것 이상으로 정보 처리자로서 가지고 있는 능력의 한계, 인지적 편향을 잘 인지하고 이로 인해 우리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는 게 중요하다.

5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
홀로코스트: 혐오와 차별의 종착역

[사진 제공 · 티앤씨 재단]

[사진 제공 · 티앤씨 재단]

나치 독일은 유대인만 죽인 게 아니라 집시들과 장애인도 죽였다. ‘혐오스럽다’ ‘다르다’ ‘미개하다’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면 모두 죽였다. 이렇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1100만 명을 헤아린다. 

홀로코스트는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사건이나 천재지변이 아니었다. 히틀러는 총칼로 집권했던 게 아니라 총선에서 당당히 1위 표를 얻은 나치당을 이끈 사람이다. 히틀러는 광신주의자가 아니라 국민들의 반응과 여론에 따라 행동한 현실 정치인이었다. 나치당은 철저한 미세분업에 의해 거대한 기계처럼 움직였다. 당이 유대인 학살을 기획하고 공무원들에게 하달하면 경찰은 이들을 체포해 기차에 실었고 철도청 관리들은 이송했으며 친위대 장교들은 유대인들을 분류해 가스실로 넣었다. 

독일의 성인들, 지식인들은 각자 선 자리에서 이 수레바퀴를 멈추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충분히 세 번쯤은 뒤로 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대한 반성은 행동으로, 결과로, 조직으로, 제도로, 건물로 드러나야 한다. 우리는 홀로코스트를 바라보면서 죽어갔던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움 온정 공감이 필요하다. 아무런 대가 없이 위험에 처한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던 사람들을 늘 생각하면 우리도 지금 현재 그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선한 이웃이 될 수 있다.

6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특훈교수
역사 속 혐오: 이슬람포비아를 중심으로

[사진 제공 · 티앤씨 재단]

[사진 제공 · 티앤씨 재단]

문화는 우월하다거나 열등한 개념이 아니다. 선과 악도 없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보면 혐오와 배제가 사라지고 따뜻한 애정이 생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정말 필요한 덕목이다. 

역사적으로 혐오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치고 아픔을 줬는지 대표적으로 십자군 전쟁이 있다. 이 전쟁은 중세 인류의 가장 큰 약탈과 피해를 준 전쟁이었다. 겉으로는 종교적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가장 잔혹하고 비종교적이고 반인륜적인 전쟁이었다. 여기에는 사람들 마음 속 깊이 자리한 타 문화에 대한 혐오가 자리잡고 있었다. 20세기가 와서도 인류가 기억해야 될 혐오가 가져다줬던 3대 인종 학살 비극으로 홀로코스트, 아르메니아 대학살, 알제리 대학살이 있다.

코로나 시대의 공존의 메시지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튤립으로 기록됐던 셈페르 아우구스투스라는 튤립종을 예로 들고 싶다. 이파리에 줄무늬가 있는 독특한 튤립이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한 송이에 1억 원을 호가했다. 이 튤립은 바이러스와의 공존을 택해 인간이 상상하지 못했던 7개의 줄무늬가 있는 새로운 튤립을 피워냈다. 바이러스는 이처럼 퇴치나 박멸의 대상, 혐오나 배제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튤립으로부터 얻게 된다. 혐오보다는 사랑과 포용으로 이웃과 함께한다면 세상은 훨씬 보람 있고 또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7 한건수 강원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집단정체성과 혐오: 아프리카에서의 인종과 민족

[사진 제공 · 티앤씨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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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혐오에 기반한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로 유명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혐오의 상처를 복수가 아닌 새로운 공동체로 가는 발판으로 삼았다. 넬슨 만델라와 투투 주교가 이끌었던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실규명과 사회통합에 사회적 에너지를 썼다. 백인정권 앞잡이로 흑인을 탄압했던 비밀정보원이나 군인들이 범죄를 솔직하게 고백하기만 하면 처벌을 면하게 했다. 

르완다에서도 독일 벨기에가 식민통치를 거치며 민족갈등을 부추긴 탓에 생긴 투치와 후투족의 내전으로 100 일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투치족 80만 명이 학살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투치족 군대가 장악한 새 정부는 남아공처럼 집단 보복을 하지 않았다. 모든 과정을 전통적인 마을공동체에서 주관하는 관습 법정을 도입해 공동체 회복에 집중했다. 서로 총과 칼을 겨누던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살아가는 노력을 하자는 것이 르완다가 선택한 해결방법이었다. 르완다는 오늘날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정보통신기술을 가장 강력하게 도입한 국가가 됐고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정부 청렴도 평가가 4위인 나라로 성장했다. 여성들의 정치 참여 비중도 전체 의원의 60%이상을 차지한다. 

집단정체성은 소속감과 열정을 키워 문화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기도 하지만 상대를 혐오하고 차별하고 탄압하고 심지어 학살하기까지 한다. 집단정체성이 인류 역사와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때이다.

8 박승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
중세 유럽 역사 속 혐오

[사진 제공 · 티앤씨 재단]

[사진 제공 · 티앤씨 재단]

중세 유럽에서 있었던 세 가지 역사적 혐오 사건을 들라면 그리스도교에 대해 로마 제국이 가졌던 혐오, 십자군전쟁 중 타 종교에 대한 혐오. 흑사병 전파시기 공포와 혐오가 있다. 로마제국 때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한 혐오는 많은 오해에서 비롯되었고 국가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혐오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되어 힘을 가지면서부터는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는데 이것이 바로 무시무시했던 십자군 전쟁이었다. 이때 새겨진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한 분노는 다시 폭력으로 이어졌고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중세 말기 페스트 시대에는 교회와 통치자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무정부 상태 혼란이 찾아오면서 절망과 분노에 찬 시민들이 사회적 소수자였던 유대인들과 가장 약자였던 여자를 향한 마녀사냥에 나섰다. 사람들은 소문만으로 마녀를 만들어냈고 악감정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을 없애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십자군전쟁 때는 황제나 교황들이 혐오를 조장했다면 페스트와 마녀사냥부터는 평범한 시민들이 혐오를 만들었다. 

마녀사냥의 역사는 혐오가 단순하고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되었든 종교적인 것이 되었든 금전 만능주의가 되었든 집단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교육 학습되면서 퍼져나갔다는 사실들을 깨닫게 된다. 혐오의 기억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요즘 같은 환경이야말로 혐오 바이러스가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혐오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성찰해 혐오를 없앨 수 있는 진정한 공감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9 전진성 부산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왜 독일인은 유대인을 혐오하게 되었나?

[사진 제공 · 티앤씨 재단]

[사진 제공 · 티앤씨 재단]

상대적으로 인종주의가 약했던 독일에서 대규모 유대인 학살이 나오게 된 것은 반공주의 영향이 컸다. 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에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면서 유럽 국가들은 자기들 나라로 공산주의가 전파될까봐 전전긍긍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게 파시즘이다. 

1920년대 독일에서는 패전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좌우대립이 격화되고 거리에서 공산주의자들과 극우 세력 간에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1929년 세계공황이 닥치자 기득권층이 느낀 위기의식은 대단했다. 공산당 세상에 사느니 나치당을 지지하겠다는 심리가 신생 정당 나치당을 1당으로 만들었다. 나치는 스스로를 소련 공산세력으로부터 유럽을 지키는 십자군이라고 했고 실제로 소련을 침공해 스탈린과 한 판 승부를 벌이기도 했다. 이 와중에 민족공동체 단결을 꾀하고자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게 된다. 

혐오는 단지 도덕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이처럼 역사적인 원천이 있다. 유럽의 식민주의는 타 문명 사람들을 밑도 끝도 없는 범주 안에 가두고 열등한 식민지 피지배층으로 착취했으며 그것은 냉전기에 또 다른 방식의 혐오로 이어졌다. 따라서 혐오를 벗어나려면 꽉 막힌 식민주의적, 인종주의적, 냉전적 편견의 감옥은 물론 서양 근대문명이 만들어낸 각종 이분법, 선진국 대 후진국, 우월함 대 열등함, 우리 대 그들이라는 이분법을 벗어나야 한다.





주간동아 1260호 (p52~57)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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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67호

20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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