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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는 국가 무한 책임의 출발점”

인터뷰 l 변호사 박준영의 正道無憂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5-08-03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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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는 국가 무한 책임의 출발점”
    ‘사회 정의를 위해 애쓰는 판사님, 그리고 검사님. 저와 유가족들은 그냥 이대로 앉아서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8월 9일을 맞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재심을 개시해주십시오. 진범을 꼭 잡아주십시오.’

    2000년 8월 10일,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해 사건’ 피해자의 아내가 최근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 내용이다. 해당 사건의 재심을 청구한 박준영(41·사진) 변호사는 이 글을 읽어 내려가며 몇 번이나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참았다고 했다.

    글쓴이의 가정은 15년 전 참혹한 범죄로 무너져 내렸다. 그의 남편은 유도를 해 체격이 건장했고, 자상했으며, 무엇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운영하던 사업체가 문을 닫자, 가정을 위해 주저 없이 택시운전을 시작할 만큼 성실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칼에 10여 차례나 찔려 숨진 모습으로 가족 앞에 돌아온 것이다.

    경찰은 당시 15세 최모 군을 범인으로 체포했고, 최군은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런데 피해자 가족이 공소시효 만료를 겨우 10여 일 앞두고 탄원서를 쓴 것은 최군이 이 사건의 진범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범행 일체 자백이 나오기까지



    7월 24일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일명 ‘태완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일단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진범을 잡으려면 기존 수사와 판결을 다시 검토하는 재심이 필요한 것이다. 박 변호사는 2009년 ‘수원 노숙소녀 살해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 최초로 형사사건 재심 결정을 끌어낸 적이 있다.

    당시 박 변호사가 결과를 ‘뒤집었던’ 판결은 많은 부분에서 이번 사건과 닮았다. 2007년 경기 수원 한 고등학교 화단에서 소녀의 사체가 발견된 게 시작이었다. 경찰은 곧 지적장애인 2명을 소녀 살해 혐의로 체포했고,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법원은 이들에게 각각 징역 5년과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고, 용의자가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이듬해 경찰이 10대 청소년 4명을 또 해당 사건 범인으로 지목해 체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들 역시 수사과정에서 범행을 시인한 것이다. 가출을 수차례 반복한 이른바 ‘비행청소년’들이라 변변한 보호자조차 없던 이들의 변호는 당시 수원에서 국선변호인으로 활동하던 박 변호사에게 맡겨졌다.

    “처음엔 숱한 형사사건 중 하나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진행 과정을 들여다보니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요. 앞서 범인으로 지목된 지적장애인들이 벌을 받았는데 범인이 또 나타났죠. 게다가 사건 기록에는 아이들이 범행 일체를 자백한 걸로 나와 있는데 정작 제 앞에서는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경찰과 검찰에서 ‘절대 아니다’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았다며 펑펑 울더라고요.”

    박 변호사는 결국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며 목격자를 찾기 시작했다. 기록을 뒤지고, 수사과정이 담긴 영상녹화물도 열람했다. 이 과정에서 수사관이 용의자들에게 사건 내용을 알려주고 답변을 유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수사검사가 “공범이 모두 자백했다. 너도 자백하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다”며 회유하는 모습도 발견했다. 분노가 치밀었다. ‘일개’ 국선변호인이면서 그는 검찰과 법원을 향해 ‘잘못을 인정하라’고 요구했고, 그것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재심과 상고심을 통해 지적장애인도, ‘비행청소년’들도 이 사건의 진범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났다.

    그러나 이후 이런 ‘기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고 있다. 국가기관의 판결이 모두 정당하기 때문이라면 문제될 게 없지만, 박 변호사 생각은 다르다. 그가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해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도 용의자가 의지가지없는 초등학교 중퇴 학력의 청소년이라는 점, 별다른 증거 없이 자백만으로 유죄를 인정받았다는 점 등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2010년 최군이 교도소를 나오자 직접 찾아가 재판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물었다. 그날 “수사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다.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아 죄를 뒤집어썼다”는 호소를 듣는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는 국가 무한 책임의 출발점”
    약자를 보호하는 법

    박 변호사는 2008년 그때와 마찬가지로 또 사건 현장을 찾아가 목격자를 수소문했고, 관련 기록을 뒤졌다. 택시 운행기록장치와 최군의 통화 기록을 입수해 꼼꼼히 대조하며, 검경 수사의 허점을 찾아냈다. 그리고 3년 만인 2010년 4월 1일, 20년 전 최군의 유죄를 확정지은 광주고등법원에 재심을 신청했다.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6월 22일, 박 변호사가 17번이나 보충자료를 제출한 끝에 법원이 재심을 결정했다. 그러나 다시 사흘 만에 검찰이 항고하면서 재심 결정 여부는 대법원 손으로 넘어간 상태다. 박 변호사는 “잘못된 판결을 그대로 두는 건 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재심이 결정돼 최군과 사건 피해자 가족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박 변호사가 수임료조차 받기 힘들 이런 일에 매달리는 건 그 역시 불우한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대를 1년 다니다 자퇴한 뒤 막노동판에서 일했던 그는 뒤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에도 법조계 내에서 늘 소수자였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면 더욱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지금 그는 이 사건 외에도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은 김신혜 씨 사건과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일어난 나라슈퍼 강도살인 사건 재심도 맡고 있다. 변변한 수입이 없어 최근 수원에 있던 사무실을 내놨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니 두려울 것도 걱정도 없다고 한다. 그의 명함에는 ‘법은 약자를 보호해야 합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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