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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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인 세대’는 위로가 필요해

“너도 한 적이 있다”에 울컥, “슬퍼해도 괜찮아”에 공감…추억 마케팅의 진화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7-31 16: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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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인 세대’는 위로가 필요해
    “어린이 친구들, 이제 어른이죠? 어른이 됐으니 잘할 거예요.”(김영만)

    “영만이 아저씨 ㅠㅠㅠㅠㅠ.”(누리꾼)

    7월 12일 오후 7시쯤 직장인 박정환(34) 씨는 색종이와 풀, 가위를 들고 네 살 된 아이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날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 온라인 생방송에는 박씨가 코흘리개 시절 챙겨 보던 ‘TV유치원 하나둘셋’의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이 출연했다. 박씨는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인물에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위로를 받아 울컥했다. 방송이 끝나고도 유저들과 어린 시절 추억에 잠겨 한참 동안 채팅을 즐겼다”고 말했다. 이날 김 원장은 단 한 번 방송 출연으로 ‘대통령도 해내지 못한’ 온라인 커뮤니티 대통합을 이뤄냈다.

    ‘백종원의 방송이 ‘너도 할 수 있다’였다면 김영만의 방송은 ‘너도 한 적이 있다’.’ 방송 후 한 누리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에 적은 이 말은 우리가 왜 그들의 방송에 열광하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는 어른이 된 어린이들에게 추억 속 인물이 “잘 자라줬다” 한마디 했을 뿐인데 눈물바다가 됐다. 박진경 마리텔 PD는 “감성이나 추억을 자극하고자 김영만 선생님을 섭외한 건 아니었다. 2030세대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고, 프로그램 성격상으로도 만들기 콘텐츠가 재미있을 것 같았다. 방송이 나가면 어느 정도 반향이 있겠구나 싶었지만 이 정도로 이슈가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제위기 때마다 복고 유행



    “김영만 선생님의 방송을 보고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세대가 특히 많이 공감했는데 한편으로 이 세대는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여놨거나, 발을 들여놓으려고 취업 준비를 하는 또래이기도 해요. 딱 이 또래가 사회적 위치도 그렇고, 안정된 가정을 이룬 사람도 많지 않아 애매한 세대 같아요. 그전까지 의지했던 부모와는 멀어진 나이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딱 끼인 세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해준 분이 그때처럼 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은 게 아닐까요.”

    현대인은 추억을 소비하고, 그 과정에서 위로받는다. 2012년에도 영화 ‘건축학개론’,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등 추억을 다룬 콘텐츠가 인기였다. 당시 LG경제연구원은 ‘90년대와 통한 2012년의 복고형 감성코드’ 보고서를 통해 ‘지나간 시대를 추억하며 그 시대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재현하는 복고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복고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는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복고를 찾는 이유로는 ‘위안’을 꼽았다. ‘따뜻하고 즐거웠던 추억을 꺼내 보며 위로받고 싶은 복고의 욕구는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 더욱 강해진다. 경제위기 때마다 복고가 강세를 보이기도 했는데 스트레스, 고독, 치열한 경쟁, 실업, 경제적 어려움 등을 경험하는 요즘에 현대인들은 복고를 더욱 찾는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 △무의식에 잠재된 쾌락의 기억을 이끌어냄 △불안감 해소 △소속감 추구 등이 복고의 인기 이유로 분석됐다.

    ‘끼인 세대’는 위로가 필요해
    지난해 미국 디즈니사와 픽사의 ‘겨울왕국’이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했을 때도 흥행 주역은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었다.

    최근에는 디즈니사와 픽사의 새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이 어른들을 위한 ‘힐링 무비’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개봉 3주 차에 240만 관객을 돌파했다. 7월 21일 오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 ‘인사이드 아웃’ 상영관을 채운 관객은 대다수가 20, 30대였고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은 딱 한 팀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스태프롤이 올라가는 동안 훌쩍이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관계자는 “관객 중 10대와 40대를 제외한 20, 30대가 전체의 66%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에서 빙봉(동심)의 희생으로 라일리가 좀 더 성장하고 머릿속 컨트롤 패널도 복잡해진다. 관객들이 ‘내가 언제 동심을 잃었을까’를 생각하면서 그리움을 느낀 것 같다. 작품의 가장 큰 메시지가 ‘슬퍼해도 괜찮아’인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기분 나빠도 웃으며 상대를 대하거나 취업난에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자신을 토닥토닥해주는 것 같은 작품 메시지에 공감을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끼인 세대’는 위로가 필요해
    때로는 가족보다 남의 위로가 더 좋아

    ‘끼인 세대’는 위로가 필요해
    위로 콘텐츠는 문화계를 넘어 식음료업계에서도 흥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만든 커피숍 프랜차이즈 ‘빽다방’은 ‘다방’처럼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재미있는 메뉴들로 향수에 젖게 만든다. 커피믹스 맛이 나는 ‘원조냉커피’, 학교 앞에서 팔던 무탄산 ‘불량쥬스’, 어린 시절 빵집에서 먹어본 ‘사라다빵’, 팥과 연유가 듬뿍 들어간 ‘옛날팥빙수’ 등이 카페를 잘 찾지 않는 중·장년층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빽다방 홍보팀 관계자는 “모든 메뉴를 대표님이 개발했다. 원조냉커피는 나이 불문하고 인기가 많다. 중·장년 고객은 어릴 때 학교 앞에서 사 먹던 맛을 떠올리며 불량쥬스를 사 드신다”고 말했다.

    때로는 가까운 사람보다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다 털어놓은 뒤 울고 싶을 때가 있다. SNS 어라운드는 일부 익명 애플리케이션이 익명성을 악용해 변질된 것과 달리 3년째 ‘청정구역’을 유지하고 있다. 가입할 때 입력하는 정보는 성별과 태어난 연도가 전부이고, 일기처럼 비공개로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다. 글을 공개 설정하면 익명의 유저들과 소통 가능한데, 이때 필요한 아이템인 버찌는 타인의 글에 댓글을 달고 공감을 얻어야 획득할 수 있다. ‘내 이야기를 하기 전 남의 이야기부터 들어주라’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들은 시시콜콜한 연애 고민부터 직장생활, 가족사까지 가감 없이 털어놓고 위로받는다.

    어라운드 유저들은 ‘1일1선행’ ‘달콤창고’ 등의 자발적 이벤트도 벌이고 있다. 특히 지하철 역사 사물함에 초콜릿을 채워놓고 자신의 이야기와 사물함 비밀번호를 공유하면서 시작된 ‘달콤창고’는 서울 강변역, 대방역을 비롯해 고려대, 연세대 등 학교 캠퍼스로도 퍼져나갔다. 유저들은 달콤창고의 간식을 꺼내 먹고, 또 다른 간식과 쪽지를 채워둔다.

    어라운드를 만든 콘버스 관계자는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던 공동창업자 4명이 진심을 담은 소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만든 애플리케이션”이라며 “이곳에서 소통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나’와의 소통과 편견 없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보는 ‘너’와의 소통 두 가지를 뜻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내면의 이야기를 적으며 진짜 ‘나’에게 한 걸음 다가선다. 이름 없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결국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공감이 되기 때문이다. 댓글로 위로하는 것도 어찌 보면 나를 위로하는 것이다. 어라운드에 이름이 없는 또 다른 의미다. 그러다 보니 공감 가는 이야기가 많아졌고, 서로 배려하는 존중의 문화도 형성됐다. 앞으로도 표현에 도움이 되는 기능을 하나씩 선보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불황의 장기화, 복고의 장르화

    현대인은 왜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타인으로부터 위로받고자 하는 걸까.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지나친 경쟁으로 다들 지쳐 있다. 상대를 지적하며 생기는 박탈감도 크고, 나만 피해를 보고 사는 것 같은 거부감도 팽배하다”며 “심리적 피로감이 큰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힐링할 수 있고 위안받을 수 있는 것에 눈길이 한 번 더 가게 되고, 그런 것에 집착하는 성향이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종이접기를 하고 만화영화에 푹 빠졌던 시절이 있잖아요. 어른이 돼서도 어릴 때 좋아하던 걸 보면 굉장히 안락해지거든요. 돌이켜보면 그때는 지금만큼 각박하지 않았던 것 같고, 누군가로부터 보호받거나 자기 위주로 해도 괜찮은 시기였던 거죠. 현재가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그 시절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받는 것 같아요. 또한 가족의 위로는 ‘가족이니까’라며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모르는 사람의 격려가 가까운 사람의 위로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거죠.”

    이혁준 문화평론가는 “현재 우리나라에 정치적, 경제적 불안 요소가 많고 호황을 누려본 지도 굉장히 오래됐다. 사람들은 가장 아름답고 편안했던 시절로의 자궁 회귀 본능을 갖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복고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복고 콘텐츠는 우리에게 위로를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이들에게 해결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복고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힘을 얻고, 당시 비슷한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떠올리는 거죠. 당분간 복고가 유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되리라는 보장이 없고, 불황까지 장기화하면서 복고가 하나의 장르로 정착했기 때문입니다. 굳이 장기 불황이나 사회적 불안정을 논하지 않더라도 복고문화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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