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의 방 : 한국과 중동의 남성성’ 전시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 2층(왼쪽)과 3층 전경.
그동안 페미니즘적인 시각에서 여성 문제를 다룬 전시는 많았지만 ‘남성성’을 키워드로 삼은 전시는 보기 힘들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혜원 대진대 교수는 10여 년 전부터 이 새로운 영역을 다뤄보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사회의 주류라는 이유로 오히려 담론에서 소외돼 있는 남자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성적인 존재로서의 남성보다 사회적인 관계망 안에 놓인 젠더적 존재로서의 남성에 초점을 맞추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전시에 한국 작가뿐 아니라 터키, 이라크, 오만, 레바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지역 작가의 작품을 대거 소개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흔히 가부장적인 사회의 전형으로 인식되는 한국과 중동의 작가들이 그려낸 다양한 남성의 모습은, 오늘 우리 곁에 있는 남성 존재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준다.
시갈리트 란다우의 ‘남자의 훌라’.
김지현의 영상 작품 ‘총알맨’에서 느껴지는 정서도 비슷하다. 이 작품은 남성의 성기 모양을 본뜬 듯 보이는 은색 투구를 쓴 남자 7명이 지하 공간에서 출구를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담고 있다. 영상은 등장인물 중 한 명이 끝내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패닉에 빠진 상태로 중단된다.
터키 작가 굴순 카라무스타파의 ‘우는 남자들’은 아예 60, 70대 남자 3명이 우는 모습을 담았다. 등장인물은 모두 터키의 유명배우로, 영화감독 아티프 일마즈의 지휘 아래 ‘상실’의 감정을 연기했다. 이 모습을 촬영해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마초적인 외모의 남성들이 흐느낌을 통해 자신의 정서를 드러내는 것은 묘한 느낌을 준다.
영화 ‘해리 포터’로 유명한 배우 에마 왓슨은 2014년 9월 유엔에서 양성평등에 대해 연설하며 “‘남성답지 못하다’는 평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도움을 청하지 못한 채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젊은 남성을 많이 봤다”고 밝히고 “남성들이 성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 여성들을 위한 변화도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울고 웃고 혼란스러워하고 때로는 ‘가족사진’ 밖에서 홀로 머무는 우리 시대 남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새로운 남성성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1월 25일까지, 문의 02-739-8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