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가수 서태지는 ‘신비주의’와 ‘깜짝 마케팅’의 수혜자라 할 수 있다. 의도했든 안 했든, 두 사람은 대한민국의 문화 및 정치 스타로 부상하던 시기에 ‘신비주의 논란’으로 더 큰 인기를 누렸다. 대중의 호기심이 폭발하기 직전 ‘깜짝 작품’이 나오면, 팬들은 더 열광했다. 일반인과 달라 보이는 스타의 모습에 팬들의 관심은 더 높아졌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3김 시대(김영삼-김대중-김종필)와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을 끝으로 이제 더는 이렇게 강한 팬클럽을 가진 정치인은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연예인에 대한 팬들의 그것만큼이나 뜨겁고 강렬하다는 비유다.
대중의 높은 관심에 비해 공개되는 정보가 적으면 특이 현상도 생긴다. ‘정보의 희소성’이 과도하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대중은 어느 순간 주인공의 직접 발언을 기대하지 않고, 주변인이 전하는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 박 대통령 측근으로 불리는 한 의원도 현장에서 이를 자주 실감했다고 한다.
“지역 모임에 갔는데 대다수가 대통령에 대해 궁금한 점을 나에게 물었다. 내 말 한마디를 다 믿는 눈치고 어떤 때는 뉴스가 되더라. 이제는 어디 가서 크게 웃지도 못하겠다. 나 때문에 대통령이 경박해 보인다고 할까 봐. 대통령 측근의 행동 하나하나까지 국민이 보고 있다는 것을 그때 피부로 느꼈다.”
그런데 서태지와 박 대통령이 가진 ‘신비주의 및 측근들 행보’의 영향력에는 차이가 있다. 연예인을 둘러싼 소문은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은 정국을 강타한다. 국정 최고지도자의 리더십이 상처를 입고, 나아가 공권력의 신뢰가 약화된다.
2014년 연말 정국을 강타한 ‘정윤회 문건’ 의혹이 그렇다. 박 대통령은 문건을 ‘찌라시’에 비유했으나, 의혹은 또 다른 의혹을 낳았다. 고전에서나 등장하던 ‘환관’ ‘십상시’가 유행어로 떠올랐고,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발언한 ‘청와대의 인사 개입 의혹’은 공직사회를 술렁이게 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른바 ‘최 경위 자살 사건’은 ‘가이드라인 수사’에 대한 야권의 공세로 이어졌다. 여야 의원들은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정윤회 문건 의혹을 놓고 공방을 벌였고, 주요 일정에 대한 여야 협상은 툭 하면 결렬됐다.
독버섯, 토양 바꿔야 안 자라
다만 여권 일각에서는 연말연시를 기점으로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2014년 12월 23일 여야의 극적 합의로 임시국회가 정상화됐고, 검찰이 1차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 ‘문건 정국’이 어느 정도 수습될 것이란 관측이다. 여기에 연금을 중심에 둔 개혁 드라이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보수 지지층의 결집도 여권이 주시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과연 여권 바람대로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될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개운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집권 3년 차를 맞을 정부가 국정 동력을 회복하려면, 대형 사건이 발생한 ‘맥락’을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건 사태 발생 후 전문가들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청와대의 위기이자 기회라고 진단했다. 위기 요소는 대통령 지지율이 흔들려 국정 동력까지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이고, 기회 요소는 국정 쇄신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40% 선이 붕괴됐고, 전통 강세 지역인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에서도 이상 기류가 나타났다. 이 시기 대통령 지지율은 37~39% 수준이었다. 2014년 12월 16~18일 한국갤럽 조사(성인 남녀 1006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에서는 전주에 비해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가 TK 33→46%, PK 42→ 53%로 크게 늘었다.
주목할 것은 시점이다. 박 대통령이 2014년 12월 7일 문건에 대해 ‘찌라시’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후 여론조사 결과는 민심이 문건 의혹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갤럽 측은 “국민은 문건의 사실 여부와 별개로 청와대에서 문건이 만들어졌고, 비선(秘線) 실세라 불리는 사람과 대통령의 동생이 검찰에 출두하는 등 일련의 사태 자체를 엄중히 보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의 직무 부정평가 응답자 가운데 21%가 ‘소통 미흡’을, 11%가 ‘인사 문제’를 부정평가 이유로 꼽았다. 한마디로 최근 상황에 대한 민심의 요구는 ‘청와대의 소통과 쇄신’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심의 요구에 청와대 움직임은 별다르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도 한때 일부 의원이 대통령 리더십 변화를 주장했지만, 헌법재판소(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내부 단결론’과 ‘종북 비판론’에 밀려 이런 얘기가 쏙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이 ‘위험한 출구전략’이라고 우려한다. 이념 논란은 일부 보수층 및 노년층을 결집할 수 있으나, 중도층의 피로감을 자극할 공산이 크다는 것. 또 이번 사태로 드러난 문제를 어물쩍 넘기면, 여권에 대한 민심의 누적된 불만이 다른 사건을 기점으로 갑자기 폭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안보 강조 등은 역대 정권에서도 지지율 회복을 위해 쓴 방법이지만 임기응변식 대책이었다”며 “박 대통령이 2년 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고, 새누리당이 최근 선거에서 비교적 선전한 것은 이념 논쟁을 벗어나 중도 및 ‘생활 보수’로부터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산만한 야당도 능력 보강해야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비선 논란’을 독버섯에 비유했다. 권력의 그늘에서 자라는 독버섯 몇 개를 제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독버섯이 자랄 토양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검찰 수사로 독버섯을 몇 개나 없앨 수 있겠나. 수사 결과가 어떻든 이번 기회에 대통령 리더십도 개방적으로 바꾸고 신비주의 논란도 극복해야 한다.”
여권과 달리 야권은 초반에는 단결하다 후반으로 갈수록 산만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비선 실세’ 문제를 집중 거론하며 한동안 대여공세에 화력을 집중했으나,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거나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2월 8일로 예정된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분위기는 더 산만해졌다.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새로운 지도부 체제로 넘어가는 시기에 야당의 고질병이 또다시 도진 것이다. 시민선거인단 명부를 분실해 ‘야당 무능론’을 자초했고,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야권연대 내부 책임론’ 등이 내부 갈등을 부추겼다. 대여 전선이 내부 분열로 흩어져 이도저도 아닌 모양새가 된 것이다. 최근 정치권 상황에 대해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여권에는 신뢰 회복을, 야당에는 능력 보강을 주문했다.
“국정 3년 차를 맞아 신뢰 회복을 하려는 청와대와 강력한 구심점이 없는 야당 모두 인적 변화와 쇄신이 필요하다. 특히 정부 견제와 민생 챙기기 투트랙을 실행하려는 야당도 전당대회를 통한 인적 쇄신을 보여주는 게 필수다.”
한편 1월 9일 국회운영위원회(운영위)가 열리면서 ‘신년 정국’에도 비선 논란을 둘러싼 여야 공방은 계속될 전망이다. 큰 일정만 합의한 여야가 운영위 출석 대상자를 놓고 삐걱댈 가능성도 있다. 새누리당은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출석시키겠다는 입장인 반면, 새정치연합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은 물론 김영한 민정수석까지 출석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더불어 연초 개각이 사실상 가시화되면서, ‘정윤회 의혹’ 정국이 인사의 폭과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위층의 ‘눈치작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국회에서의 공무원연금 처리, 4월 보궐선거 일정을 고려해 3월쯤 개각이 있으리란 전망도 나온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3김 시대(김영삼-김대중-김종필)와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을 끝으로 이제 더는 이렇게 강한 팬클럽을 가진 정치인은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연예인에 대한 팬들의 그것만큼이나 뜨겁고 강렬하다는 비유다.
대중의 높은 관심에 비해 공개되는 정보가 적으면 특이 현상도 생긴다. ‘정보의 희소성’이 과도하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대중은 어느 순간 주인공의 직접 발언을 기대하지 않고, 주변인이 전하는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 박 대통령 측근으로 불리는 한 의원도 현장에서 이를 자주 실감했다고 한다.
“지역 모임에 갔는데 대다수가 대통령에 대해 궁금한 점을 나에게 물었다. 내 말 한마디를 다 믿는 눈치고 어떤 때는 뉴스가 되더라. 이제는 어디 가서 크게 웃지도 못하겠다. 나 때문에 대통령이 경박해 보인다고 할까 봐. 대통령 측근의 행동 하나하나까지 국민이 보고 있다는 것을 그때 피부로 느꼈다.”
그런데 서태지와 박 대통령이 가진 ‘신비주의 및 측근들 행보’의 영향력에는 차이가 있다. 연예인을 둘러싼 소문은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은 정국을 강타한다. 국정 최고지도자의 리더십이 상처를 입고, 나아가 공권력의 신뢰가 약화된다.
2014년 연말 정국을 강타한 ‘정윤회 문건’ 의혹이 그렇다. 박 대통령은 문건을 ‘찌라시’에 비유했으나, 의혹은 또 다른 의혹을 낳았다. 고전에서나 등장하던 ‘환관’ ‘십상시’가 유행어로 떠올랐고,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발언한 ‘청와대의 인사 개입 의혹’은 공직사회를 술렁이게 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른바 ‘최 경위 자살 사건’은 ‘가이드라인 수사’에 대한 야권의 공세로 이어졌다. 여야 의원들은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정윤회 문건 의혹을 놓고 공방을 벌였고, 주요 일정에 대한 여야 협상은 툭 하면 결렬됐다.
독버섯, 토양 바꿔야 안 자라
다만 여권 일각에서는 연말연시를 기점으로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2014년 12월 23일 여야의 극적 합의로 임시국회가 정상화됐고, 검찰이 1차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 ‘문건 정국’이 어느 정도 수습될 것이란 관측이다. 여기에 연금을 중심에 둔 개혁 드라이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보수 지지층의 결집도 여권이 주시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과연 여권 바람대로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될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개운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집권 3년 차를 맞을 정부가 국정 동력을 회복하려면, 대형 사건이 발생한 ‘맥락’을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건 사태 발생 후 전문가들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청와대의 위기이자 기회라고 진단했다. 위기 요소는 대통령 지지율이 흔들려 국정 동력까지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이고, 기회 요소는 국정 쇄신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40% 선이 붕괴됐고, 전통 강세 지역인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에서도 이상 기류가 나타났다. 이 시기 대통령 지지율은 37~39% 수준이었다. 2014년 12월 16~18일 한국갤럽 조사(성인 남녀 1006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에서는 전주에 비해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가 TK 33→46%, PK 42→ 53%로 크게 늘었다.
주목할 것은 시점이다. 박 대통령이 2014년 12월 7일 문건에 대해 ‘찌라시’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후 여론조사 결과는 민심이 문건 의혹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갤럽 측은 “국민은 문건의 사실 여부와 별개로 청와대에서 문건이 만들어졌고, 비선(秘線) 실세라 불리는 사람과 대통령의 동생이 검찰에 출두하는 등 일련의 사태 자체를 엄중히 보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의 직무 부정평가 응답자 가운데 21%가 ‘소통 미흡’을, 11%가 ‘인사 문제’를 부정평가 이유로 꼽았다. 한마디로 최근 상황에 대한 민심의 요구는 ‘청와대의 소통과 쇄신’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심의 요구에 청와대 움직임은 별다르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도 한때 일부 의원이 대통령 리더십 변화를 주장했지만, 헌법재판소(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내부 단결론’과 ‘종북 비판론’에 밀려 이런 얘기가 쏙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이 ‘위험한 출구전략’이라고 우려한다. 이념 논란은 일부 보수층 및 노년층을 결집할 수 있으나, 중도층의 피로감을 자극할 공산이 크다는 것. 또 이번 사태로 드러난 문제를 어물쩍 넘기면, 여권에 대한 민심의 누적된 불만이 다른 사건을 기점으로 갑자기 폭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안보 강조 등은 역대 정권에서도 지지율 회복을 위해 쓴 방법이지만 임기응변식 대책이었다”며 “박 대통령이 2년 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고, 새누리당이 최근 선거에서 비교적 선전한 것은 이념 논쟁을 벗어나 중도 및 ‘생활 보수’로부터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산만한 야당도 능력 보강해야
2014년 12월 22일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하는 문희상 비대위원장(가운데).
여권과 달리 야권은 초반에는 단결하다 후반으로 갈수록 산만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비선 실세’ 문제를 집중 거론하며 한동안 대여공세에 화력을 집중했으나,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거나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2월 8일로 예정된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분위기는 더 산만해졌다.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새로운 지도부 체제로 넘어가는 시기에 야당의 고질병이 또다시 도진 것이다. 시민선거인단 명부를 분실해 ‘야당 무능론’을 자초했고,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야권연대 내부 책임론’ 등이 내부 갈등을 부추겼다. 대여 전선이 내부 분열로 흩어져 이도저도 아닌 모양새가 된 것이다. 최근 정치권 상황에 대해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여권에는 신뢰 회복을, 야당에는 능력 보강을 주문했다.
“국정 3년 차를 맞아 신뢰 회복을 하려는 청와대와 강력한 구심점이 없는 야당 모두 인적 변화와 쇄신이 필요하다. 특히 정부 견제와 민생 챙기기 투트랙을 실행하려는 야당도 전당대회를 통한 인적 쇄신을 보여주는 게 필수다.”
한편 1월 9일 국회운영위원회(운영위)가 열리면서 ‘신년 정국’에도 비선 논란을 둘러싼 여야 공방은 계속될 전망이다. 큰 일정만 합의한 여야가 운영위 출석 대상자를 놓고 삐걱댈 가능성도 있다. 새누리당은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출석시키겠다는 입장인 반면, 새정치연합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은 물론 김영한 민정수석까지 출석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더불어 연초 개각이 사실상 가시화되면서, ‘정윤회 의혹’ 정국이 인사의 폭과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위층의 ‘눈치작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국회에서의 공무원연금 처리, 4월 보궐선거 일정을 고려해 3월쯤 개각이 있으리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