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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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즐거움 받는 기쁨 자신에게 선물

셀프기프팅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입력2014-12-01 1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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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당신이 생일에 자기 자신에게 꽃다발이나 선물을 보냈다고 생각해보자. 이건 뭐 왕따도 아니고, 인기가 없어서 아무도 선물을 안 주니까 남에게 선물 받은 척 자랑하려는 가식적인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불쌍해 보일 수도 있다. 기성세대라면 이렇듯 스스로에게 선물 보내는 걸 이상하게 여기기 쉽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며 사람들은 이런 행위에 셀프기프팅(Self-Gifting)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붙였고, 이는 또 하나의 소비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셀프기프팅을 하는 이는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요즘 시대 소비자일 뿐이다. 요즘에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기에게 주는 선물을 언급하는 이도 쉽게 볼 수 있다. 셀프기프팅한 사실을 애써 숨기려들지도 않는다. 그만큼 보편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SNS로 왕성하게 소통하고 연결된 것처럼 느끼지만 실상 외로움은 더 짙어졌다. 과거에는 사람들과 눈앞에서 친구가 되고, 갈등을 겪고 풀기도 하면서 끈끈해지는 게 인생사였지만 요즘은 현실에서의 ‘진짜 관계’에 대해 피곤함이나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 많다. SNS에서는 일방적으로 친구를 맺었다가 끊기도 하고, 오늘의 ‘절친’이 내일의 남이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선물이란 건 대개 특별한 날 친한 이에게 받는 것을 의미하지만 요즘 세대에서는 이런 관계를 맺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반면 자아는 아주 강하다. 스스로 인정과 존중을 받고 싶어 하는 태도가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이어진다. 사실 셀프라는 말과 선물이란 말은 참 어울리지 않지만, 묘하게도 점차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오고 있다.

    온라인 쇼핑 덕에 셀프기프팅 확대

    결정적으로 우리 사회에 셀프기프팅을 확대하는 데 일조한 건 온라인 쇼핑 문화다. 온라인 쇼핑몰에선 구매자 10명 중 7명 이상이 셀프기프팅을 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는데, 실제론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대부분 배송할 때 선물용 포장을 하거나 축하 메시지를 적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추가 비용이 들지 않으니 이왕이면 그걸 이용한다. 더군다나 내가 물건을 샀다 해도 선물용 포장에 축하 메시지를 넣어 며칠 뒤 택배로 받는 것이라 은근히 선물 받는 기분이 난다. 해외 직구(직접 구매)라면 더더욱 그런 효과가 크다. 배송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주문해놓고 잊어버릴 만하면 어느새 깜짝 선물처럼 ‘짜잔!’ 하며 나타난다.



    온라인 쇼핑몰을 자주 이용하며 셀프기프팅에 익숙한 사람은 이런 트렌드를 오프라인 소비에서도 이어간다. 이들은 내가 뭔가 필요해 물건을 산다기보다 어느 순간 내가 어떤 일을 잘했거나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를 위한 선물로 고가 물건도 잘 산다. 일종의 스스로 상 주기다. 고가의 패션 명품을 살 때 셀프기프팅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많다. 그냥 사면 사치나 과소비 같지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면 양상이 좀 달라진다.

    소비가 물건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행위임을 요즘 사람은 더 잘 안다. 그래서 경제 여력이 부족해도 상대적으로 고가 물건을 더 당당하게 살 수 있다. 기성세대라면 사기 전 주저하고 망설였을 고가 물건에 셀프기프팅 의미를 부여해 자기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로 만들어버린다. 정말 갖고 싶었던 것, 벼르고 벼르던 것을 가지는 최고 방법이기도 하다. 자신을 위한다는데 큰맘 먹고 지르지 못할 게 무엇이겠는가. 다만 이런 소비는 정말 가끔 해야 한다.

    시중에서 파는 물건 가운데 열기 전까지 내용물을 모르는 비밀스러운 상자도 있다. 내가 돈을 주고 샀지만 그 속에 뭐가 있는지는 열어봐야 알 수 있다. 뭔지도 모르는 걸 사는 것이지만, 그래도 꽝은 없다. 적어도 구매 가격보다 비싼 물건들이 들어 있다. 불확실성이 주는 의외의 기쁨이라는 게 선물이 주는 속성과 비슷하다. 내 돈 주고 산 물건이라 해도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면 그것을 받아서 열어보는 순간 선물 받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골라주는 큐레이션 소비에 선물이 주는 시크릿한 의미를 담는 것이다. 일본 백화점에서 매년 초 후쿠부쿠로(福袋)라는,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복주머니를 팔던 것과 비슷한데 이걸 큐레이션 소비와 연결해 특별한 선물로 만든 게 시크릿 박스다.

    본격적인 시크릿 박스는 화장품을 담아주던 미국 글로시 박스였다. 국내에도 이런 시크릿 박스를 표방하는 서비스가 여럿 있다. 패션브랜드에서도 철마다 다양한 패션상품을 담은 박스를 한정판매하기도 하고, 신진 패션디자이너의 액세서리나 가방, 구두를 골라 담아 한 달에 한 번 배송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과자나 간식을 비롯해 유명한 빵집의 빵을 골라 담아 보내주는 곳도 있다.

    잡지 구독하듯 신청하면 정기적으로 물 건을 보내주는 걸 서브스크립션 커머스(Subscription Commerce) 서비스라고 한다. 영국 ‘낫어나더빌(Not Another Bill)’은 유료회원으로 가입한 동안 고객에게 어떤 물건이 들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자를 정기적으로 배송한다. 매달 선물 받는 즐거움을 사는 것이다. 서브스크립션이면서 셀프기프팅이기도 하다. 달리 생각해보면 선물 받는 즐거움이 줄어든 시대이다보니 이런 비즈니스도 번성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매력적인 일상 만들기

    셀프기프팅이 보편화하고 있다 해도 ‘선물’은 다른 사람에게 줘야 제맛이다. 비즈니스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주는 선물은 예외다. 진짜 선물은 이해관계와 상관없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줘야 그 의미가 살아난다. 어쩌면 이런 선물을 챙기는 게 일상의 작은 사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선물을 주는 행위는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나는 선물을 줄 때 예쁜 카드에 손 편지를 쓰는 것을 즐긴다. 전 세계 미술관에서 사 모은 예쁜 카드를 이럴 때 쓴다. 그냥 물건만으로는 감사 마음이 다 전해지지 않을 것 같아 꼭 손 편지를 쓰게 된다. 사실 이런 습관은 내가 선물 받았을 때도 누군가의 손 편지가 함께 있으면 더 감동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세상에 선물 받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다. 마음이 담긴 선물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다. 그러니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자. 마침 자연스럽게 선물을 보내기 좋은 시기가 다가온다. 이왕이면 손 편지도 꼭 넣자. 같은 선물이라도 손 편지 한 장이 덧붙여져 있으면 선물 가치는 배가된다. 또한 연말이 가기 전 올 한 해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위해서도 멋진 선물을 하나 준비해보면 어떨까. 일상의 작은 사치는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다. 나를 위한 멋진 선물, 이 또한 매력적인 일상을 만드는 하나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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