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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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토론…와인 제조…이 대학 특별한 매력 있다

미국과 유럽의 대학 ‘지성과 개성’으로 미래 주도

  • 글·사진 함정임 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trelajiham@hanmail.net

    입력2014-12-01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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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최근 미국과 유럽의 30여 개 대학을 돌아보고 쓴 세계 대학 답사기 ‘세계의 대학을 가다’를 펴냈다. 필자가 세계 대학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흘간 일본 도쿄 출장 겸 여행을 떠났는데, 귀국할 때까지 필자 발길이 향하고 머문 곳은 크고 작은 서점과 박물관, 그리고 도쿄대와 와세다대였다. 당시 필자는 연구자 신분이 아니었다. 근대문학사 속 현장을 찾아간 문학기행의 의미가 컸다. 도쿄대 혼고(本鄕) 캠퍼스의 붉은 벽돌 건물들과 일렬로 치솟은 전나무 아래를 걸으며 인근 도쿄대병원에서 숨을 거둔 천재 문인 이상(李箱)을 생각했다. 이후 소설 집필 및 자료 수집차 몇 번 더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고, 방문 대학 목록에 도쿄예술대와 게이오대가 추가됐다.

    일본 도쿄를 필두로 20여 년 동안 매년 한두 곳 이상 크고 작은 대학을 방문했다. ‘세계의 대학을 가다’에 수록한 30여 개 대학 외에 필자가 방문한 대학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의 미시간대, 이탈리아 볼로냐대,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 헝가리 부다페스트대,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대 등 30여 곳. 그러니까 지금까지 60개 이상 대학을 돌아본 셈이다.

    대학은 유럽 중세시대 산물이다. 유럽 대학은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대학의 중심 구실을 해왔다. 이후 교육과 연구기관으로서의 기능과 구실은 미국으로 옮겨갔고, 오늘에 이른다. 이러한 이행의 배경에는 추구하는 가치와 운영체제, 그리고 경제력이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지난해 집중적으로 답사한 미국과 유럽 대학 30여 개 중 인상적이었던 곳, 새롭게 발견한 곳, 추천하고 싶은 곳 중심으로 소개한다.

    고전 토론…와인 제조…이 대학 특별한 매력 있다
    미국 동부 대학의 재발견

    세인트존스 칼리지·브린모어 칼리지



    세인트존스 칼리지는 메릴랜드 주 대서양 연안 항구도시 애나폴리스에 위치해 있다. 워싱턴 DC에서 65km, 델라웨어 주 볼티모어에서 48km 떨어진 애나폴리스는 워싱턴 DC가 미국 수도로 정해지기 전 미합중국 최초의 수도였다. 현재는 메릴랜드 주의 주도이자 세계 해군 교육의 메카인 미 해군사관학교(해사)의 도시로 유명하다. 대서양 연안 체서피크 만의 세번 강어귀에 자리 잡은 인구 3만여 명의 작은 소도시인데, 강과 기슭에는 요트와 저택이 있어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한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 조건으로 세계 요트족의 천국으로 사랑받고 있고, 미 해사와 세인트존스 칼리지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어 대학 도시로서 면모도 갖췄다.

    워싱턴 DC의 명문 사립대인 조지타운대와 조지워싱턴대를 돌아본 뒤 방문한 애나폴리스에서 깊은 인상을 심어준 곳은 미 해사보다 세인트존스 칼리지였다. 이곳은 미국 대학 체제의 특징 중 하나인 리버럴 아트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LAC)로 인문, 사회과학, 자연과학, 어학의 교양과목을 가르치는 학부 중심 대학이다. 현재 미국에는 266곳의 리버럴 아트 칼리지가 있다.

    세인트존스 칼리지가 특별했던 이유는 ‘그레이트 북(Great books)’, 즉 고전 읽기 교육 때문이었다. 이곳 학생들은 4년 동안 전공을 정하지 않고 고전을 읽은 뒤 토론하는 세미나 형태의 수업만으로 졸업한다. 학년별로 고전 목록 100권이 주어지는데, 1학년에는 호메로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르키메데스 등, 2학년에는 성서, 베르길리우스, 단테, 셰익스피어 등, 3학년에는 세르반테스, 데카르트, 파스칼, 칸트, 루소, 몰리에르 등, 4학년에는 다윈, 키르케고르, 니체, 프로이트, 도스토옙스키, 버지니아 울프, 랭보 등의 고전이 주어진다. 미국에는 고전 교육을 특성화한 대학이 몇 곳 더 있는데 모두 이 대학의 커리큘럼에서 파생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 덕인지 박사학위 배출자가 미 대학 상위 2%로 나타나고 있다.

    대학 본질은 학문 연구와 교육에 있다. 현재 한국 대학은 연구도 교육도 모두 학생 취업의 도구로 삼는 역사상 가장 비연구적이고 비교육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고전은 인류 역사와 문화, 정신의 산물이다. 이를 위한 연구 교육이 지속되려면 절대적인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학문 후속 세대의 연계가 절실하다. 세인트존스 칼리지가 아이비리그 명문대들보다 더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가 여기 있다.

    고전 토론…와인 제조…이 대학 특별한 매력 있다

    미 동부 사립 명문 여대 중 하나인 브린모어 칼리지.

    브린모어 칼리지는 필라델피아 도심에서 30여km 떨어진 큰 언덕(웨일스어로 브린모어)에 자리 잡고 있다. 단아하고 운치 있는 석조 건물들이 울창한 나무가 우거진 언덕에 펼쳐져 있어 캠퍼스에 진입하는 순간 동화의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세인트존스 칼리지와 같은 리버럴 아트 칼리지이지만 여자대학이라는 게 특징이다.

    이 대학은 미 동부 사립 명문 여대 7곳(7 Sisters Colleges) 중 하나로 예술교육을 중시한다. 특히 문예창작과 읽기 프로그램이 특성화 교육으로 운영된다.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에게 강의를 의뢰해 창작방법론을 익혀 독창적인 글쓰기와 읽기를 습득하도록 도모한다. 한국의 문예창작학과 시스템과 유사한데, 한국이 독립적인 학과로 자리 잡고 있는 데 비해 미국은 브린모어의 특성화 교육 프로그램이나 대학원 문예창작 전공 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 이들 대학 기관에는 세계적인 작가들이 출강하거나 교수로 재직 중인데, 문예창작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곳은 브린모어 칼리지와 보스턴대, 프린스턴대, 뉴욕대, 컬럼비아대, 오리건대 등이다.

    미국 서부 대학의 재발견

    리드 칼리지·UC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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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과 건축물이 아름다운 리드 칼리지.

    현재 세계 젊은이에게 가장 ‘힙한’ 곳은 미 서부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다. ‘힙하다’는 표현은 21세기에 등장했다. ‘세련되고 현대적이다’라는 뜻의 영어식 은어다. 포틀랜드는 만년설로 덮인 후드 산 아래 컬럼비아 강과 윌라매트 강이 흐르는 친환경 도시로, 35세 젊은 미국인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 1위를 자랑한다. 도시 전체가 청정하며 북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에 와 있는 듯 고풍스럽다. 텃밭에 채소를 재배해 직접 요리하는 새로운 세대를 로컬푸드족이라고 부르는데, 포틀랜드는 21세기 살벌한 속도 전쟁에서 간소하고 건강하며 여유로운 삶을 원하는 이들의 지향처다. 소박한 듯 세련된 삶을 실천하는 이들 로컬푸드족이 온라인 에코 생활잡지 ‘킨포크’를 발행해 전 세계 젊은이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여기에 포틀랜드의 가치를 한층 더 유기적으로 부각하는 것은 세계 스포츠웨어 신화를 창출한 나이키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자기만의 소박하면서도 주체적인 생활 방식, 그리고 친환경과 자연이라는 도시 이미지가 오늘의 포틀랜드를 한층 더 품격 높게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이곳 대학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해볼 수 있다.

    포틀랜드에는 도심과 교외에 대학 3곳이 있다. 도심의 포틀랜드 주립대, 교외의 포틀랜드대와 리드 칼리지(Reed College)가 그것이다. 이들 중 감동적인 곳은 리드 칼리지였다. 이곳은 애나폴리스의 세인트존스 칼리지처럼 리버럴 아트 칼리지다. 특징은 인문학과 과학을 동시에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이다. 미국 신흥 명문을 가리키는 ‘뉴 아이비(New Ivies)’의 반열에 올라 있으며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공부를 시키는 곳으로도 명성이 높다.

    고전 토론…와인 제조…이 대학 특별한 매력 있다

    리드 칼리지 내부에 붙은 안내문(왼쪽)과 하우저 도서관 전경.

    신입생들은 무조건 그리스·로마의 고전과 순수 인문학을 필수과목으로 이수해야 한다. 이러한 인문학 숭배의 교풍은 21세기 새로운 삶의 혁명을 일으킨 현대 영웅 스티브 잡스를 통해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잡스는 이 대학 철학과에서 1년간 수학하면서 인문학적 소양과 아이디어를 습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가 첨단 정보기술(IT)에 인간 마음을 읽는 스토리를 접목한 아이폰의 탄생이다.

    리드 칼리지는 대학 캠퍼스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조경과 건축물이 아름답게 배치돼 있다. 학생들은 MIT나 하버드대에서 만난 학생들과는 어딘지 다른, 인문학 정신이 깃든 진지하면서도 창의적인 인상을 갖고 있었다. 이 대학은 강의와 실험, 소수 그룹의 독서 및 실습 위주 수업으로 유명하다.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10명이며, 전공 외에도 학생들의 독자적인 연구 활동이 활발하다. 이러한 전통에 힘입어 미국 리버럴 아트 칼리지 박사 학위 배출 3위이며 졸업생 중 30%는 연구자, 25%는 사업가, 나머지는 법조인과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리드 칼리지가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도시 환경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면, UC데비이스(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캠퍼스)는 캘리포니아 주 데이비스의 그것과 깊은 관련을 보인다. UC데이비스는 샌프란시스코 교외의 명문 UC버클리나 LA(로스앤젤레스) 도심의 UCLA, USC에 비해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인구 5만 명 정도의 소도시 데이비스에 위치한 UC데이비스에서 필자가 주목한 점은 농대와 연구 및 실습 시설이다. 이곳은 현재 세계적인 농업 특성화 대학과 연구소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식품영양학과 양조학, 축산학, 수의대가 명성이 높은데, 이곳 양조학과의 경우 유럽의 전통적 와인 제조에 견줄 만큼 뛰어난 품질의 술을 제조할 수 있는 교수진과 시설을 갖추고 있다.

    시애틀부터 LA까지 보름에 걸쳐 열차, 버스, 기차, 자동차를 이용해 돌아보면서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태양빛과 사막 환경을 옥토로 전환한 놀라운 힘의 요체가 UC데이비스임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 쓸모없는 황무지와 사막에 포도와 올리브, 벼와 장미가 자라도록 탈바꿈시킨 원동력이 UC데비이스 내에 있는 농업과 과학 연구 시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UC데이비스는 미국 국립대 순위 7위이며, 농업 분야 연구비 지출은 1위다. 세계적인 포도주 생산지인 나파밸리, 소노마밸리와 연계해 와인생산과(양조학), 포도재배학과가 개설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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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대학의 다양성

    UCL·ENS·에콜보자르·볼로냐

    고전 토론…와인 제조…이 대학 특별한 매력 있다

    영국 런던 옥스퍼드 스트리트(위)와 옥스퍼드대.

    미국 대학이 대부분 유럽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대서양을 건넌 이들에게 목회를 하거나 목사를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것과 달리, 유럽 대학들은 중세에서 출발해 오랜 세기에 걸쳐 형성됐다. 이탈리아 볼로냐대,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현재는 파리1대부터 13대까지 분리 및 재배치),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등이 그곳이다. 중요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대학을 찾아가는데, 유럽 대학은 아주 느리게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하곤 한다.

    런던의 경우는 도심에 있는 런던대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주위를 산책 삼아 하루 여행을 하곤 한다. 특히 UCL이 있는 블룸즈버리에서는 20세기 영국의 문학예술을 이끌었던 버지니아 울프, E. M. 포스터, 케인스 등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던 블룸즈버리 그룹의 분위기를 엿봤다. 미국 대학의 캠퍼스 형태와 달리 런던, 파리, 볼로냐, 로마, 아테네 대학들은 대학 자체가 도심의 중요한 건축물로, 역사와 전통의 현장이다.

    프랑스를 예를 들면, 20세기 중반까지 유럽 대학 사회에서 선봉장 구실을 하면서 무상교육을 확립한 교육 선진국이다. 현재 프랑스 교육의 특징은 국립 일반대와 엘리트 교육 과정인 그랑제콜, 그리고 다양한 사립 에콜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랑스는 시민혁명의 나라로 누구나 교육받을 권리를 표방한 무상교육의 천국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통적으로 엘리트를 존중하고 엘리트를 양성하는 데 뚜렷한 원칙과 사명감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우수한 학생들을 따로 시험으로 선발해 엘리트 교육을 시키는데, 고등사범학교(ENS·Ecole Normal Superieure), 이공과대학(Ecole Polytechnique), 국립행정학교(ENA·Ecole National D’administration) 등이 그것이다. 고등사범학교 출신으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있다.

    프랑스에선 특수고급학교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세계 최고의 패션, 향수, 그림, 영화, 사진의 메카답게 그에 준하는 집중 교육을 담당한다. 대표적으로 2곳을 소개하자면 누벨소르본(직역하면 신(新)소르본)이라 부르는 파리3대와 8대는 문학, 철학, 연극, 영화 분야에서 정평이 나 있고, 피에르와 마리 퀴리 대학이라 부르는 파리6대는 수학과 공학 분야에서 프랑스 1위 명문이다.

    에콜보자르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국립미술대이고, 에스모드와 스튜디오 베르소는 프랑스의 특화 산업인 패션학교이며, 베르사유의 ISIPCA 역시 프랑스의 특화산업인 향수학교로 대학원 이상의 연구기관이다. 이처럼 국립과 사립, 그리고 엘리트 교육으로 구분된 프랑스의 대학체제는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대학평가제도와는 다른 범주라고 할 수 있다.

    고전 토론…와인 제조…이 대학 특별한 매력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대(왼쪽)와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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