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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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간 여행 ‘웜홀’이 뭐기에…

영화 ‘인터스텔라’ 물리 이론적으로 가능…실제로 관측된 적 없어

  • 박성찬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s.park@skku.edu

    입력2014-12-01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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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간 여행 ‘웜홀’이 뭐기에…

    영화 ‘인터스텔라’는 전직 미 항공우주국 소속 우주비행사였던 쿠퍼의 모습을 통해 과학과 모험 못지않게 가족애를 강조한다.

    필자는 물리학 연구가 지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적 호기심이 충분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물리학에 흥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실제로 알게 되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 주인공이 최고 여배우라면 더욱 그렇다. 배우 앤 해서웨이는 2010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끈 이론’과 쿼크 입자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진심인 듯하다. 그것도 대단히.

    “저는 입자물리학에 흥미가 있어요. 어떻게 시간과 공간이 우주에 존재하게 됐는지 생각하는 걸 좋아하죠. 그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도요. 저는 쉴 때면 늘 물리학 교과서에 머리를 묻곤 한답니다. 원자 수준, 그리고 아원자 수준의 원소들이 어떻게 모든 걸 만들어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멋져요. 당신과 나, 건물, 우리의 영혼과 마음까지도 말입니다. 제가 LA(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저는 에너지와 진동에도 관심이 있어요. 보세요, 아주 제대로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배우고 있다고요! 아인슈타인에 대해 정말 많이 읽었답니다. 저는 이론을 좋아해요. 끈 이론도 이해하고 싶죠. 저에게 쿼크에 대해 설명해줄 분 어디 없나요?”

    지난해 언젠가 물리학자 킵 손이 참여하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 영화가 나오면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킵 손은 동료 학자 마이클 모리스와 함께 성간 여행(‘인터스텔라’ 여행)과 관련해 가장 그럴 듯한 물리학적 웜홀 시나리오를 제시한 블랙홀 물리학 전문가다. 필자가 고차원 블랙홀에 대해 연구할 때 크게 도움받은 바 있는 ‘후프 가설(Hoop Conjecture)’의 제시자이기도 하다.

    물리학적 계산과 압도적 비주얼

    후프 가설에 따르면 블랙홀은 질량이 충분히 작은 공간에 모이면 생성된다. 그 공간은 질량 값이 주어졌을 때 그로부터 계산해낼 수 있는 길이를 반지름으로 하는 후프(훌라후프의 그 후프)로 둘러싸일 만큼 작다. 블랙홀 주변은 중력이 무척 강해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한다.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계면을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부른다.



    이 이론을 세운 킵 손이 참여한 영화가 올가을 우리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영화 ‘인터스텔라’다. 이 작품 주인공으로 쉴 때면 물리학을 공부한다는 앤 해서웨이보다 적합한 사람이 또 있을까. 영화 ‘인터스텔라’가 특별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상영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든 압도적 비주얼 효과일 것이다. 필자 생각에 이 특별함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 영상이 실제 물리학적 계산 결과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물리학자 킵 손이 여기에 기여했다.

    우주선 ‘인듀어런스호’ 목적지에는 태양 질량의 100만 배에 이르는 초거대 블랙홀 ‘가르강튀아’가 있다. 태양에서 지구까지 거리에 달하는 이 초거대 블랙홀은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회전하며 주변 시공간을 매우 흥미롭게 뒤틀어놓았다. 회전하는 블랙홀 주변의 가스와 먼지들은 토성 고리처럼 원반 모양으로 자리 잡고, 태양 표면 온도에 해당하는 높은 온도로 밝게 빛난다.

    하지만 토성 고리 일부가 자신의 몸체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과 달리, 가르강튀아는 가려져 있을 것 같은 뒷부분도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이 발생시킨 ‘중력 렌즈 효과’ 덕에 다 보인다. 마치 피카소 그림처럼 얼굴 뒷면도 앞쪽에서 보이는 가르강튀아의 장관이 압도적이다. 개인적으론 그 장관을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영화 표 값이 아깝지 않았다.

    영화 곳곳에는 이처럼 물리학적 내용들이 녹아 있다. 가르강튀아의 경계면, 즉 ‘사건의 지평선’에 매우 근접한 한 행성에 도착한 주인공 일행에게 엄청난 파도가 밀려드는 대목도 그렇다. 지구에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것은 달이 바닷물을 끌어당기는 인력 때문인 것처럼 영화 속 행성에 이는 파도 역시 가르강튀아의 인력 덕분에 일어난 현상이다.

    ‘사건의 지평선’ 부근의 강력한 중력장은 시간을 더디 가게 만든다. 주인공 일행이 행성에서 머문 몇 시간의 짧은 ‘주관 시간’ 동안 블랙홀에서 멀리 떨어진 인듀어런스호에서는 긴 세월이 흐른다. 시공간은 휘어져 있으며 시간은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이 아니라 시간을 재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흘러간다. 이는 모두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성간 여행 ‘웜홀’이 뭐기에…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새로운 행성을 찾아 인류를 구원할 사명을 띠고 우주로 나서는 과학자 아멜리아와 전직 우주비행사 쿠퍼,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우주비행선 인듀어런스호(왼쪽부터).

    ‘양자 중력 이론’의 힌트

    부산하게 성간 여행을 하는 인듀어런스호 탐사자 일행의 이야기가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축이라면, 또 하나의 축은 지구에서 열심히 ‘양자역학과 중력 이론의 결합 방정식’을 풀려고 노력하는 탐사 대원 가족들 이야기다. 이 방정식만 풀면 중력을 다스릴 기술을 얻게 되고, 이를 이용해 심각한 환경 문제로 죽어가는 지구를 탈출해 새로운 터전을 열 수 있다. 그러나 최고 물리학자에게도 이 문제는 매우 어렵고 실마리를 찾기 힘들다. 스치듯 지나가는 장면에서 칠판에 빼곡히 적힌 수식은 실제로 10차원 중력 이론과 블랙홀에 관한 방정식들이었다. 아마 전문가들은 미소를 띠며 봤으리라.

    블랙홀에 관한 방정식을 푸는 작업이 인류 운명을 좌우한다는 설정 또한 무척 재미있다. 이는 물리학과 과학의 가치를 한껏 치켜세우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내용이 영화에 포함되는 데는 킵 손의 입김이 물론 크게 작용했겠지만,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이를 받아들여 스토리를 끌어갔다는 사실이 더 흥미롭다. 물리학이 자연 섭리를 가장 깊은 수준에서 이해하고, 인류 지성의 지평선을 확장하는 구실을 할 수 있음을 한 번 짚고 넘어간 느낌이랄까.

    영화는 주인공 아멜리아(앤 해서웨이 분)가 탄 우주선을 목적지로 보내기 위해 블랙홀에 빠져 들어간 탐사대원 쿠퍼(매슈 매코너헤이 분) 이야기로 이어진다. 쿠퍼가 블랙홀로 들어간 덕에 아멜리아는 큰 속도를 얻어 행성 밖으로 탈출할 수 있다. 연료를 모두 써버린 로켓에서 연료통을 분리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속도를 얻는 원리와 같다. 쿠퍼는 블랙홀 내부에서 시적(詩的)으로 그려진 5차원 공간을 통해 지구에 남겨진 딸에게 ‘양자 중력 이론의 힌트’를 전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인과율(因果律)을 넘어선 방법을 적용한다.

    물리학적 디테일엔 만족 못 해

    이 장면에도 물리학이 녹아 있다. 회전하는 블랙홀을 적절한 경로로 지나치는 물체는 블랙홀의 ‘회전 에너지’ 일부를 가지고 나올 수 있다는 설정이다. 빛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지만 회전하는 블랙홀 공간에선 에너지를 끄집어낼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물리학에선 ‘초발광(super-radiance)’이라고 부른다. ‘여분 차원(extra dimension)’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쿠퍼 딸의 통신에 등장하는 것도 반갑다.

    그렇다면 영화에서처럼 웜홀을 통한 성간 여행이 실제 가능할까. 웜홀은 이론적으로 알려졌을 뿐 실제 관측된 적은 없다. 킵 손의 연구에 따르면 특별한 에너지를 가정해야만 여행이 가능한 형태의 웜홀이 존재할 수 있다. 불행히도 이 특별한 에너지에 대한 가정이 이미 정립된 물리학적 법칙을 만족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간 여행이 가능한 형태의 웜홀은 이론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성간 여행이 가능한 웜홀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증명된 적이 없다. 분명한 점은 이 명제가 언젠가는 말끔히 해결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양자역학과 중력 이론의 결합을 통해서 말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물리학적 모티프는 대단히 훌륭하지만 엄밀한 수준에서 물리학적 디테일을 모두 만족하진 못했다. 예를 들자면 파도는 너무 높고, 시간 지연은 과장됐다. 그러나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영화를 보러가는 행위가 물리학자들이 모여서 하는 연구그룹 미팅이 아닐 바에 말이다. 물리학자인 필자가 보기에도 ‘인터스텔라’는 대단히 잘 만든 영화다.

    성간 여행 ‘웜홀’이 뭐기에…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웜홀을 통과한 탐험대는 블랙홀의 영향으로 시간이 매우 더디게 흐르는 바다행성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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