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인사혁신처장 취임식에서 이근면 신임 처장이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인사검증 기준이 더 깐깐해진 탓이 아니다. 검증 기준은 노무현 정부 때보다 낮아졌다고 평가받는 이명박 정부 때보다도 더 느슨해졌다. 후보자 가운데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병역 면제 또는 혜택, 세금 탈루, 전관예우 등에 하나 이상 관련되지 않은 인물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와 관련한 ‘표현’도 풍부해졌다. ‘수첩인사’가 대표적이지만 이 밖에도 보은인사, 오기인사, 사기인사, 인사난맥, 인사참사 등 헤아리기조차 힘들 지경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아지자 청와대는 인사검증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고, 결국 청와대 인사수석실을 만들었다. 총리실 산하에 인사혁신처까지 신설했다.
인사혁신처 수장 인사 오히려 논란
바뀐 인사검증시스템을 가동한 첫 인사는 11월 18일 정부조직 개편에 따른 후속 인사였다. 그런데 신설된 인사혁신처 수장으로 ‘삼성맨’ 이근면 처장이 임명되면서 인사 논란을 잠재워야 할 인사혁신처장이 오히려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국민안전처 장관에는 박인용 전 해군대장을, 차관에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이성호 전 안전행정부 차관을 기용한 것과 5대 사정기관 가운데 하나인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에 TK(대구·경북) 출신의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을 내정한 것도 말이 많다. 최근 방산 비리로 논란의 중심에 선 방위사업청장에는 박 대통령과 서강대 동기인 장명진 전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을 임명해 여전히 수첩인사, 보은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 가운데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은 국민안전처 장관과 공정거래위원장. 12월 4일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박인용 장관 후보의 위장 전입, 해군아파트 부당 입주, 군 복무 중 석사학위 취득, 소득신고 누락 의혹이 벌써부터 일고 있다.
인사청문회 대상은 아니지만 이번에 함께 인사가 이뤄진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도 부실 검증 논란에 휩싸였다. 숙명여대 교수 시절 쓴 책에서 ‘북한의 핵무기 소유는 약소국이 추구할 수밖에 없는 비장의 무기’라고 지적한 ‘북핵 옹호’ 사실이 알려지자 새누리당 김종훈, 이노근, 하태경 의원은 “김상률 수석을 추천한 인사를 공개하라”는 논평을 내고 김 수석 사퇴를 촉구했다. 청와대가 김상률 수석 천거와 검증 과정 재점검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아직 추가 설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인사검증시스템이 다시 논란에 휩싸이면서 박 대통령의 인사 기준과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이 재차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누가 이런 인물을 천거했으며 청와대 인사수석실과 민정수석실, 그리고 인사위원회는 무엇을 했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새누리당으로부터 ‘종북(從北)’으로 지목당한 김상률 수석 기용과 관련해서는 새누리당 내에서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분위기다. 통합진보당 해산을 추진해온 청와대나 정부의 기존 방침과 상반되기 때문이다.
인사검증시스템을 개선했음에도 ‘효과’가 없다면 누군가가 이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대희, 문창극 두 총리 후보자가 연속 낙마한 인사 대참사까지 경험한 상황에서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 시선은 박 대통령과 측근 그룹으로 향한다. 박 대통령은 누구의 말을 들어 인사를 하는 것일까. 수첩에만 의존해 인사를 하는 것일까. 새누리당 의원들이 김상률 수석 천거 내용을 공개하라고 나선 것도 인사검증시스템이 투명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국민대통합 탕평인사 할까
장명진 신임 방위사업청장이 11월 19일 서울 용산구 방위사업청에서 열린 ‘제8대 방위사업청장 취임식’에 참석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집권 중반기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국정 추진에 가속도가 붙으려면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 더욱이 일부 장관의 경우 정책 실패에 따른 책임론도 불거진 상황이다. 청와대는 아직 개각을 부인하고 있지만 개각 수요가 엄연히 존재하다 보니, 연말연시 개각설은 여전하다.
시선은 다시 박 대통령이 연말연시에 개각을 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할지에 쏠린다. 경제 활성화와 관련해서는 당분간 최경환 경제부총리 중심으로 끌고 갈 공산이 커 보인다. 7월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임명된 만큼 경제부처 개각은 없을 것으로 봐야 한다. 적폐와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 차원에서 국민안전처와 인사혁신처를 신설한 것은 물론 방산 비리와 관련해 방위사업청장도 최근 교체를 마쳤다. 이렇게 보면, 현재로선 외교안보 라인의 교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총리 역시 총리실 산하에 국민안전처와 인사혁신처를 신설한 만큼 새 인물을 물색할 공산이 크다. 정홍원 총리 역시 세월호 참사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구조적으로 총리 권한이 비대해진 상황이라 책임총리급을 임명한다면 사실상 이원집정부제(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를 절충한 제도)에 가까운 국정운영도 가능하다. 이 경우 박 대통령은 외교와 통일 문제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인사 패턴을 보면 책임총리보다 정홍원 총리와 비슷한 ‘관리형 총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2인자를 허락하지 않고, 만기친람(萬機親覽) 스타일도 하루아침에 달라질 리 없다. 공무원 출신의 여당 고위인사가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다.
국민대통합을 지향한 탕평인사에 대한 요구가 야당은 물론 여당에도 없지 않지만, 갑자기 그런 방향으로 전환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친박(친박근혜)계 또는 TK 출신 대기자가 넘쳐난다. 임기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대기자들 요구는 더 거세질 것이다.
그동안 이뤄진 박 대통령의 인사를 역으로 추론해보면 그 나름 목표 지향적이다. 자신의 배경, 곧 군(軍) 출신 아버지, 고향 TK, 대구·경북 대표 기업 삼성, 대학 동기라는 울타리를 지향한다는 평가다. 그러나 그 울타리 안에서 개인적인 안락함은 느낄지 모르겠지만 전국의 유능한 인재를 천거하고 선발하는 데는 장막으로 작용한다.
박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세월호 참사 직후를 제외하면 50%를 기준으로 등락폭이 크지 않다. 부정평가를 하는 국민들의 이유도 임기 초에 비해 큰 변화가 없다. 소통이 부족하고, 공약 실천이 미흡하며, 입장 변경이 많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걸었던 국민대통합과 경제민주화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이는 집권 3년 차를 맞는 박 대통령이 새겨야 할 인사기준이기도 하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후보자, 정재찬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후보자,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왼쪽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