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출신인 폴 버호벤(79) 감독은 ‘원초적 본능’(1992)과 ‘쇼걸’(1995)을 발표하며 할리우드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2000년대 들어 거의 잊힌 노장이던 그가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엘르’(Elle·그녀)를 발표하며 ‘노장은 죽지 않는다’는 속설을 실감케 했다.
‘엘르’는 버호벤이 주로 다룬 여성의 정체성에 관한 드라마다. 폭력적 섹스, 엽기적 살인, 도발적 노출 등 버호벤 영화 특유의 범죄적 소재가 중요하게 이용된다. 그런데 과거와 다른 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더욱 비관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영화 속 거의 모든 사람은 병들어 있고, 이들의 관계도 병들어 있으며, 현실은 내부에서부터 썩어 있다.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하는 주인공 미셸은 게임회사 대표다. 출판사를 운영하다 문화산업의 새로운 총아인 게임업으로 재빠르게 말을 갈아탔다. 미셸은 파리 근교 전원주택에 살며 풍족한 삶을 누린다. 겉으로는 그의 주변 세상도 크고 예쁜 집처럼 평화롭고 안정돼 보인다. 한낮에 복면 괴한이 침입해 그를 폭행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알고 보니 미셸과 주변 인물 가운데 ‘정상적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아들은 여전히 아기처럼 굴면서 미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어머니는 돈만 노릴 것 같은 손자뻘의 젊은 애인을 만나고, 전남편은 아들 또래의 젊은 여성을 가족 파티에 데려온다. 청년이 노(장)년의 돈에 기생하거나, 노(장)년이 돈을 이용해 청년의 육체를 탐하는 관계가 여기선 ‘정상’으로 보일 정도다.
미셸도 비정상이긴 마찬가지다. 그는 망원경으로 이웃집 남자를 보며 자위를 하고, 회사 동료의 남편과 은밀한 관계를 갖는다. 가장 위험한 것은 자신을 폭행한 남자와 관계다. 그와 나누는 사도마조히즘적 섹스는 쾌락인지, 범법자를 처벌하기 위한 책략인지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 채 지속된다. 게다가 그 처벌이 남자를 향한 것인지, 혹은 원죄의식을 갖고 있는 자신을 향한 것인지도 모호하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가운데 ‘마조히즘의 경제적 문제’에 따르면 마조히즘의 심리적 기제는 속죄에 대한 열망에 있다. 죄를 씻기 위한 처벌의 성적 의식이 마조히즘이라는 것이다. 미셸과 그 남자의 관계가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것은 이들의 죄의식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인 셈이다.
‘엘르’는 죄의식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나열하지 않는다. 그 대신 주요 인물이 윤리적으로 떳떳한 발판을 점점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통념적 잣대를 갖다대면, 무언가(특히 돈과 쾌락)를 얻으면서 죄의식을 자극하는 부분을 감수해야 하는 삶의 조건이 강조돼 있다. 버호벤은 그런 삶의 조건이 디스토피아라고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