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전경.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일반 국민에게 요금폭탄이 있어선 안 되고, 산업용 전기요금은 현실화할 것이며, 새로운 수요관리 시장을 열 것”이라는 큰 원칙을 밝혔다. 그러자 이번엔 산업계가 산업용 전기요금에 대한 오해가 있다며 불만의 소리를 터뜨린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무역협회 등 17개 경제단체는 9월 29일 공동성명을 내고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을 당분간 자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동안 값싼 전기요금 혜택을 누려온 것으로 인식되던 산업계는 주택용과 산업용 ㎾h당 전기요금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동안의 인상폭만 보더라도 주택용보다 산업용이 훨씬 크다는 점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2년 말 현재 한국전력(한전)이 결산용으로 발표한 용도별 전기요금은 주택용 123.7원, 산업용 92.8원이다. 이처럼 kWh당 단순 금액을 비교할 경우에는 주택용이 산업용보다 비싼 게 사실이다.
송전선로와 공장 잇는 송전탑 직접 세워
하지만 산업계는 실질 원가를 감안하면 오히려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택용보다 비싸다고 설명한다. 전기요금은 사용 전압, 시간에 따라 원가와 요금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 기업들은 한전이 건설한 송전선로에서 고압 전기를 끌어다 쓰기 때문에 한전의 송전선로와 공장을 잇는 송전탑은 기업이 직접 세워야 한다. 탑과 선로 대지 보상비와 유지비도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kWh당 ‘원가’는 판매단가 93원보다 낮다는 얘기다.
반면 저압(220V) 전기를 쓰는 주택은 고압에서 저압으로 줄이는 손실분과 820만 개에 달하는 전신주 등 송배전 비용만 부담하므로 원가가 판매단가인 124원보다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 산업계 주장이다. 한편 사용량에 따라 요금이 가중되는 누진제가 주택용에만 적용되고 있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산업계는 ‘게시별 요금제’ ‘기본요금 피크연동제’를 들어 반발했다. 계절별, 시간별로 요금을 차등 부과하고, 1년 중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한 때를 기준으로 기본요금을 산정해 연간 부과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일종의 징벌적 형태라는 것.
산업계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원가보다 싸다는 주장도 부당하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2011년 12월 전기요금 인상분을 반영해 당시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원가회수율은 주택용 전기 86.4%, 산업용 전기 94.4%였다.
그러나 산업용 전기요금이 2012년 8월과 올해 1월 각각 6.0%, 4.4% 인상된 것을 반영하면 산업용 전기의 원가회수율은 104.5%에 이르러 원가 이상으로 판매되는 상황이고, 주택용 전기는 90.5%로 원가보다 싸게 판매되는 셈이다.
또한 한전이 주장하는 원가도 일반적인 개념과는 다르다고 기업들은 지적한다. 한전이 전기요금 원가회수율을 계산할 때 사용하는 원가에는 생산 및 판매에 들어가는 순수비 외에 일반 기업 원가에서 제외되는 ‘법인세’와 ‘적정 투자보수’가 포함된다. 향후 투자에 들어갈 자금을 확보하고, 세금까지 낼 수 있는 수준을 원가로 보는 것이다. 한전이 말하는 원가회수율이 90% 수준만 돼도 일반적 개념의 흑자가 가능하다고 기업들은 소리를 높인다.
충남 당진시 송악면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작업자들이 열연공장의 생산공정을 지켜보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외국에 비해 싸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이에 대해 산업계는 국가마다 물가 수준, 원자력·석탄·LNG 등 발전연료 구성과 원료 자급도, 전력산업 경쟁체제 도입 여부 등에 따라 발전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국가 간 전기요금을 절대치로 비교할 수 없다고 반발한다.
오히려 국가 간 전기요금을 비교할 때 보조지표로 사용하는 주택용 대비 산업용 전기요금 비율로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가장 비싸다는 것이다. 한국의 주택용과 산업용 전기요금을 각각 100과 100이라고 했을 때 일본은 주택용과 산업용 전기요금이 100과 94, 독일은 100과 59, 미국은 100과 75로 나타난다.
또 국제에너지기구(IEA) 2012년 3분기 발표에 따르면 “구매력평가환율을 적용해 OECD 회원국의 전기요금을 비교한 결과, 한국 산업용 전기요금의 경우 OECD 평균을 약간 밑도는 수준”이라며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 주요 경쟁국보다 비싸다”고 덧붙였다. 한편 주택용이 산업용 전기요금을 보전해주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최근 급격한 산업용 중심의 차별적 전기요금 인상으로 2009년 이후에는 산업용이 주택용, 농사용, 교육용 등 다른 용도의 전기에 연간 1조 원 이상을 보조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2013년 추가 인상까지 고려하면 이 보조금은 연간 약 1조1400억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최근 전력 공급설비 고장으로 전력난이 가중되면서 산업용 전기가 그 주범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서도 산업계는 억울하다는 견해다. 그들은 전력난이 정부의 에너지가격 정책 실패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은 경유가 전기보다 많이 비싸 전력난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1990년 후반 정부는 수송용 경유세제 인상을 진행하면서 유류 전용을 막기 위한 명분으로 비(非)수송용 경유에 대한 세제도 연동해 인상했다. 그 결과 유류가격이 지속적으로 인상돼 원료(경유)보다 제품(전기)이 싸진 가격 역전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격 역전현상으로 연료용 전기 소비량이 2001년 28.8TWh에서 2010년 85.6TWh로 3배 증가(56.8TWh 증가, 원자력 6기에 해당)했다. 같은 기간 산업용 전기요금을 42.5% 인상했음에도 연료용 전기 소비량이 3배 늘었다는 사실은 비싼 대체재가격 탓에 전기요금 인상이 전기 수요 억제에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분석도 제시했다. 반면 동력 등 다른 에너지로 대체할 수 없는 원료용 전력 수요는 정체 혹은 감소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전력 소비가 전기요금보다 제조업 경기에 좌우된다는 점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산업용 전기요금과 대체에너지(경유) 가격의 불균형 문제를 이유로 전체 산업용 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논리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산업계는 역설했다. 이어 경제단체들은 공동 건의문을 통해 “산업용 전기요금 추가 인상 시 기업 경영실적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며 “특히 제조 원가 가운데 전기요금 비중이 높고 영업이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소기업에 직격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