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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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마디 @오메가

제13화 과속 스캔들

  • 입력2013-08-26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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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방의 오토바이는 방향을 바꿨다. 수일의 이야기보다 생각 정리가 먼저라는 판단에서였다.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속도를 높이며 생각의 엔진에 시동을 걸었지만 불이 붙지 않았다. 뻐꾸기와 개개비 생각만 맴돌 뿐이었다.

    뻐꾸기는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는다. 개개비 둥지에 알만 낳을 뿐이다. 뻐꾸기는 스스로 알을 품지 않는다. 개개비가 대신 품게 할 뿐이다. 철방은 뻐꾸기 알을 품은 개개비가 된 기분이었다.

    철방의 오토바이는 이천, 여주, 문막을 지났다. 원주에서 춘천 쪽 중앙고속도로로 방향을 틀었다. 정리할 일이 있으면 달리는 철방의 순환경로였다. 중앙고속도로에 접어들자 마음이 안정되는 듯했다. 속도를 늦추자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마치 비웃음처럼 들렸다. 철방은 분이 치밀어 오토바이 속도를 한도까지 끌어올렸다.

    뻐꾸기는 스스로 새끼를 키우지 않는다. 개개비로 하여금 키우게 하고, 뻐꾸기 새끼는 자라면서 개개비 새끼들을 모조리 둥지 아래로 밀쳐버리고 떠나지. 남은 거라곤 빈 둥지. 떠나간 새끼를 찾아 빈 둥지를 헤매는 개개비…. 그러다 개개비 어미마저 떠나고 만다.

    개개비 어미가 된 꿈 제작 사업?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철방은 한껏 소리를 내질렀다. 굉음이 고속도로에 울려 퍼졌다. 홍천강 휴게소가 보였다. 철방은 오토바이를 세우고 휴게소 끝자락의 홍천강으로 향했다.



    손가락 길이만한 작은 새가 연분홍빛 능소화 주변을 맴돈다. 부리가 길어 마치 벌새 같았다. 동물의 세계에서 본 벌새처럼 그 새는 파르르 날개를 떨고 있었다.

    벌새, 꿀이 주식이다. 꿀을 따는 동안 1초에 80회의 날갯짓으로 제자리 비행을 한다. 다른 새들과 달리 전후, 좌우, 상하 날지 못하는 방향이 없다. 그 작은 새가.

    철방은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앞만 보고 달린 자신이 부끄러웠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듯 달려온 것뿐이었다. 행운을 잡았지만 속도만 높일 줄 알았지 곡예비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과속 스캔들, 바로 그거였다.

    자세히 보니 그 새는 다이빙으로 강물에 뛰어들었다. 먹이 사냥 성공! 물고기 한 마리가 부리에서 파닥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철방의 오토바이는 경춘고속도로를 지나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이제야 수일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철방은 그날 나타나지 않았다. 불같은 모습으로 닥칠 줄 알았는데 하루가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불안한 쪽은 수일이었다. 수일은 결심한 듯 그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상대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수일 씨, 정말 잘 생각하셨어요.”

    수일의 의사를 들어보지도 않고 상대는 너스레를 떨었다.

    “아, 보라 씨에게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수일 씨 결심만 남은 상태예요.”

    “보라요?”

    수일은 발을 빼겠다던 보라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감청 사건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어제였다. 상대는 또 다른 함정을 준비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군요. 정리해서 알려드리지요.”

    “우리가 원하는 걸 아셨지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수일은 담배를 피워 물고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데 철방이 들어오며 말했다.

    “왜 말하지 않았냐? 상대는 우리 둥지에서 제 새끼가 부화하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을 뿐이야.”

    “보라가 왜 타깃이 된 거지?”

    “철방아, 부끄럽지만 그건….”

    듣고 보니 상대는 전 방위적으로 포위망을 구축해놓고 있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첫 거래를 텄다. 로열티를 지불하고 좀비 잡는 좀비를 사갔다. M·A(인수합병) 가능성 때문에 조사했다고 둘러대면 이쪽이 궁지에 몰릴 수 있다. 철방은 수일의 사무실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솔직해지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판수는 구경만 할 수 없었다. 해킹 경유지가 알파 투 오메가였다는 점도 걸렸지만, 위기에 처한 철방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작심한 듯 자동차를 몰고 번돌의 사무실을 찾았다.

    “와줘서 고맙다, 친구야.”

    번돌은 판수를 반갑게 맞았다. 판수는 철방의 주변 사람 모두가 피해자라는 사실도 덧붙였다. 번돌은 컴퓨터에서 해킹 지도를 열었다. 철방과 판수가 명화감상 인터넷 사이트 지도를 만들 듯 주요 해킹 사건을 지도로 만들어 모니터한 파일이었다.

    번돌은 철방의 꿈 제작 공작소 인터넷 사이트를 클릭하여 해킹 지도를 만들어보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입을 열었다.

    “철방이 회사는 문제가 없는데!”

    “주변 탐색을 해봐.”

    번돌은 다시 컴퓨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의 입에서 미소가 흘러나왔다.

    “유아원의 음란물 사건 때문에 와이프가 우울해 있거든. 철방 사건과 한통속이구나. 근데 보안 사업을 하는 이 사이트가 문제야.”

    “보안 사업?”

    판수는 급하게 철방을 찾았다. 철방은 받지 않았다. 사무실 문을 나서려는데 번돌은 판수의 손을 놓지 않았다. 다른 손으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번돌은 판수를 향해 피식 웃었다.

    “기다려! 반가운 사람이 올 거야.”

    “반가운 사람?”

    판수는 방미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번돌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기 오네.”

    방미가 아들 오한방과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갈 곳이 있다고 해서 오라고 했다. 장애인 생활시설을 방문하고 싶다나.”

    아홉 마디 @오메가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보라는 처음에는 거절했다. 부끄러워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철방이 ‘네가 나서야 사건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고 하는 데는 도리가 없었다. 번돌을 만나라고 했다.

    “옛날 그 번돌?”

    “그 형, 지금 사이버 경찰이거든.”

    “그래?”

    “적당한 선에서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니들이 감청한 그 경찰관과도 통할 테니 말이야.”

    내키지는 않았지만 보라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철방이 일러준 장소로 나갔다. 번돌은 매서운 눈으로 보라를 쳐다보았다. 번돌은 껌 뱉듯 한마디를 뱉었다.

    “아직도야? 그 경찰관이 누구라고?”

    번돌은 휴대전화를 들고 나가더니 한참 만에 들어왔다. 시간과 장소는 번돌이 정해 보라에게 통보해주었다. 그래서 개성공단 장여옥의 파트너, 그 경찰관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필승과 함께.

    먼저 와서 기다리던 경찰관은 필승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다. 사진에서 본 그 모습이었다. 필승 뒤에 보라가 걸어오고 있었다. 필승은 경찰관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남필승이라고 합니다. 아, 이쪽은 진보라예요.”

    “남필승? 장 대표 회사에서 일하는…. 그리고 진보라라고 했어요? 이름은 좋은데 성과 함께 부르면 뉘앙스가 묘한데?”

    “네. 죄송합니다.”

    경찰관은 씽긋 웃으며 휴대전화에서 사진 한 장을 클릭했다. 앞에 앉은 보라와 몇 번을 대조해 보고는 의미 있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둘은 어떤 사이요?”

    “그냥 친구입니다.”

    “친구? 친구도 여러 종류인데?”

    “정말 친구예요.”

    경찰관은 둘을 번갈아 쳐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죄송합니다. 미행도 했고, 감청도 했습니다.”

    “둘의 장난이라는 걸 알고 고민 중이었는데, 조사해보니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더구먼. 눈감아주기는 그렇고…. 자백을 했으니 여하튼 알았어요.”

    경찰관은 그 말은 접어두고 개성공단의 장래에 대해서만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돌아가는 필승의 어깨를 두드렸다.

    “남군, 할 말이 있으니 조용히 한 번 찾아와.”

    필승과 보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경찰관이 중얼거렸다.

    “같이 다니면 오해를 살 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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