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의 핵심인 방송정보통신 분야 핵심 벤처기업으로 첫 방문한 서울 서초동 알티캐스트사에서 스마트 셋톱 박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한국 인터넷의 폭발적 성장은 외환위기라는 아주 예외적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라 그런지 전성기를 지나자마자 활기찬 분위기가 급속히 가라앉으면서 파티가 끝났다. 수많은 잡음 속에서 회사들이 사라지거나 다른 업체에 흡수됐고, 살아남은 업체도 그저 그런 사이트로 전락해 힘겹게 연명했다. 결국 자생할 수 있었던 몇몇 업체를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 도태되고 말았다.
수익성 없는 모델과 저질 자본의 만남
되돌아보면 2000년 이후에도 인터넷 혁명을 우리나라가 주도할 수 있었다.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는 실리콘밸리처럼 우리도 인터넷 강국 지위를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후 오랜 시간 한국은 인터넷 침체기를 거쳐야 했다. 최근 정보기술(IT) 환경이 모바일 위주로 바뀌면서 제2 벤처창업 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도 이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이런 시점에서 10여 년 전 벤처 붐을 되돌아봄으로써 또다시 거품처럼 허망하게 꺼져버리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보자.
당시 인터넷 사업은 대부분 공짜 서비스로 방문자를 모으고 웹 페이지에 광고를 붙여 수익을 내는 모델을 갖고 있었다. 잊고 있던 동창을 인터넷에서 만날 수 있게 해준 아이러브스쿨 같은 서비스가 대표적 사례다. 컴퓨터만 있으면 공짜로 전화를 쓸 수 있게 해줌으로써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어모은 다이얼패드도 있었다. 광고와 인터넷의 결합을 노골적으로 비즈니스 모델로 내세운 골드뱅크도 빼놓을 수 없다.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콘셉트는 사람을 졸지에 광고를 클릭하는 기계로 만들어버렸고, 인터넷 사용자들이 광적으로 매달려 회사 가치가 비상식적으로 높아지기도 했다.
진입 장벽이 없어서 사이트를 열기도 쉬운 데다 컴퓨터 한두 대와 프로그램 개발자만 있으면 큰 자금 없이도 누구나 성공을 꿈꿀 수 있었다. 그럴 듯한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한 사업계획서만으로도 수십억 원을 투자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이트가 인기를 끌수록 운영비는 상승한 반면 수익은 보잘것없었고, 흑자로 돌아서게 만들 방안도 찾을 수 없었다. 실리콘밸리의 경우 그나마 사업모델을 점검하고 가능성이 있는 곳에 장기 투자를 했지만, 한국의 인터넷 벤처에 투자한 자본은 애초부터 질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회사의 성장 가능성보다 이슈를 만들어 분위기를 띄운 다음 수십 배 이상의 차익을 실현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이 때문에 회사 지분을 비싼 값에 넘기려고 없는 실적을 만들어내고, 분식회계를 일삼았으며, 거짓 정보로 시세를 조작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벤처에 투자한 투기세력은 자기들끼리 지분을 돌리면서 수백 배까지 호가가 뛰도록 함으로써 벤처 투자는 금세 폭탄을 돌리는 놀음판이 돼갔다.
테헤란밸리의 벤처 창업자들 또한 이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주가 상승 덕에 서류상으로는 이미 수백억 원대 부자가 돼버린 그들은 성공의 단맛에 취해 성실한 사업가의 모습을 잃었다. 그들은 회사를 운영해 수익을 내는 데 노력하기보다 투기세력과 결탁해 주식가격을 높이려 대외 홍보와 회사 이미지 만들기에 더 관심을 기울이느라 정작 회사는 엉망으로 운영했다. 위기관리 능력도 없고 도덕성도 결여된 탓에 죄의식도 없이 실적 조작, 횡령과 배임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표 참조).
그 후 오랜 세월을 거치며 투자자와 기업이 다양한 경험을 축적했기 때문에 이젠 그런 식으로 벤처를 운영하는 건 불가능하다. 검증되지 않은 사업엔 단 한 푼도 투자하지 않는다. 투자 이후엔 경영지도뿐 아니라 지속적인 회계감사도 뒤따른다. 투자자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점은 창업자의 인간성과 경영 마인드다. 제2 벤처창업 붐을 성공시키려면 투자 유치와 상장을 목표로 한 비즈니스는 아예 생각도 말아야 한다.
포털은 원래 인터넷 관문으로, 다른 사이트로 갈 수 있는 나침반 구실을 한다. 하지만 관문을 장악한 포털은 수익을 내려고 관문 구실을 왜곡하기 시작했다. 검색어 광고로 안정적인 수익을 달성하자 이 시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이제 포털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검색을 통해 포털이 제시하는 광고를 보거나 포털 내부 콘텐츠로 이동할 뿐 외부로는 거의 나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각종 전문 사이트와 커뮤니티 사이트 등 포털 외부 사이트가 어려움을 겪는다. 포털이 검색 트래픽을 포털 내부 서비스에 우선적으로 몰아주는 바람에 전문 사이트를 방문하는 사용자가 점점 줄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포털의 검색 결과 페이지에 광고를 노출해 수익을 얻으려고 포털에 콘텐츠를 거의 무료로 공급하던 콘텐츠 제공자들은 광고 수익과 콘텐츠를 다 빼앗기는 이중 피해를 입었다.
원본 존중과 광고 제한 필요
한때 대한민국 벤처의 중심지이자 정보기술(IT) 산업의 메카로 떠올랐던 서울 강남 테헤란밸리.
인터넷 벤처와 중소 사이트의 성공을 위해선 포털 검색에서 원본 존중과 광고 제한이 필요하다. 포털의 검색 공정성 회복을 통해 원본 사이트를 검색에서 우대해 좋은 콘텐츠를 가진 사이트가 검색 혜택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에 더해 검색 결과에서 광고를 먼저 노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된장’ 같은 포털의 키워드 검색 결과에 된장 관련 광고를 노출하면 된장을 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이 광고를 클릭할 것이다. 이 때문에 된장에 관한 좋은 콘텐츠를 가진 사이트로 넘어온 사용자는 이 사이트의 광고를 보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즉, 콘텐츠는 중소 사이트가 제공하지만 이를 통한 수익은 포털이 다 가져가는 것이다.
원본 존중과 광고 제한을 통해 좋은 콘텐츠를 가진 원본 사이트가 검색 결과 제일 앞에 나오게 함으로써 검색 트래픽 유입이 가능하게 하고, 포털의 광고 제한을 통해 원본 사이트의 광고 클릭률을 높여야 한다. 포털은 이런 사이트의 광고 면을 통합 관리함으로써 양질의 콘텐츠를 가진 사이트와 수익을 분배하면 상생이 가능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 인터넷은 실명제와 사이버 명예훼손죄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고, 권력자가 검색 사이트에 압력을 행사해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삭제하는 등 검색 공정성도 훼손해왔다. 이런 민주주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은 인터넷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불렀다.
2003년 당시 정보통신부는 사이버 범죄와 명예훼손 사건을 빌미로 정부기관에 글을 쓸 때 실명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가끔씩 인터넷에서 익명성에 의한 피해가 발생했는데 그때마다 그것을 핑계로 인터넷 실명제를 들고나왔고, 끈질기게 시도한 끝에 결국 세계 최초로 인터넷 실명제를 법으로 제정했다. 인터넷에서 발생하는 명예훼손 같은 일부 극단적 현상을 핑계로 불가피성을 주장하지만, 심각한 비방과 욕설은 인터넷 프로토콜(IP) 정보 등의 증거를 토대로 수사하면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터넷 실명제는 과도한 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사이버 명예훼손죄로 자신에게 불리한 글이 인터넷에 게시됐을 때 법적 조치 이전에 그 사이트 관리자에게 글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정보삭제요청권이 남발됐다. 이 조항은 특히 기업체에 유리한데, 그들은 인터넷을 감시하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자사에 불리한 글이 올라오면 즉각 삭제해줄 것을 요구했고 포털은 별다른 이의 없이 그 글을 읽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업체 비리나 문제 있는 제품에 대한 고발 글이 더는 인터넷에 남을 수 없게 됐다.
검색 업체는 좀 더 심한 압력을 받았는데, 정치인이 자기 이익을 위해 검색 결과를 조작하거나 연관 검색어와 실시간 급등 검색어에서 특정 단어를 제외해줄 것을 요구하곤 했다. 포털은 이런 압력에 저항할 의지를 별로 갖고 있지 않았으며 되레 적극적으로 그들 편에서 여론을 조작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특정 정치집단에 불리한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포털은 여론도 조작했다.
다행히 지난해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판결을 받아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되찾을 수 있게 됐다. 포털은 사용자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자 검색 조작 의혹을 해소하려고 사이트 운영에 대해 외부기관의 검증을 받기로 했고, 사용자들의 검색 통계를 서비스로 만들어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검색에서 원본을 우선시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등 여러 문제점을 개선하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글로벌한 환경이기 때문에 한국식의 닫힌 서비스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 트위터가 한국의 싸이월드를 제친 것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표현의 자유 보장 등 국제 수준의 공정성을 보장해야 하고 불합리한 지역적 차별도 없어야 한다. 이제라도 정책 관계자들은 공인인증서와 액티브엑스 문제 등 인터넷 사이트의 발전을 저해하는 한국식 제도를 걷어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 포커스 맞춰야
한때 한국 인터넷 업체들은 국내에서 창의적이고 독특한 서비스 모델을 성공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 진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한국적인 서비스 형태와 경험 부족, 잘못된 현지화 정책으로 실패했다. 글로벌을 지향하던 한국 인터넷 사이트들은 2000년대 후반 급속도로 그 동력을 상실했다. 다음의 일본 진출 실패와 라이코스 매각에 이어 싸이월드까지 일본에서 철수함으로써 한국 인터넷 기업의 해외 진출은 일부 게임을 제외하곤 네이버의 게임과 검색 시장 진출뿐이었다. 하지만 네이버조차 외국에서의 검색 시장 공략은 철저히 실패했다. 그 후 오랫동안 한국 인터넷 기업은 외국으로 진출하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행히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카카오톡과 네이버의 라인이 국제적 성공을 거두면서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석권하고 콘텐츠 유통망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보이고 있다. 이들은 과거 실패를 교훈 삼아 글로벌한 기준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과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을 통해 세계적인 서비스로 성장하려고 노력 중이다. 마찬가지로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벤처들도 초기부터 글로벌한 시장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지금 세계를 석권하는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들은 대부분 젊은 창업자들이 차고에서 시작한 벤처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