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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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한 雪中梅, 품격 있는 향기

매화(매실나무)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3-01-21 0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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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고한 雪中梅, 품격 있는 향기
    사람들은 참 잘 적응하는구나 싶습니다. 이어지던 모진 추위 끝에 날씨가 좀 풀리니 모두 따뜻해졌다고들 하네요. 예전 같으면 추운 날씨인데도 말입니다. 그새 추위에 익숙해졌나 봅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서 날이 좀 따뜻한 것 같으니 이내 이런저런 꽃구경 생각이 나네요. 이즈음 떠오르는 여러 꽃 가운데 오래도록 사랑받는 꽃은 매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중에서도 이른 봄에 꽃이 피어 눈 속에서도 볼 수 있다는 설중매(雪中梅) 말입니다. 잔설 속에서 매화가 꽃봉오리를 열고 아주 은은하면서도 품격 있는 향기를 보낸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하지만 그런 욕심은 내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곧 다시 닥쳐올 추위에 꽃잎이 상할까 염려해서입니다.

    그런데 꽃 이야기를 하느라 매화라고 했지만, 정확한 식물학적 이름은 매실나무입니다. 사실 매화라 부를까, 매실나무라 부를까 고민이긴 합니다. 같은 나무인데도 이른 봄꽃을 피우면 매화가 되고 여름에 열매를 맺으면 매실나무가 되니까요. 열매 값어치를 생각하면 매실나무라 불러야 하고, 깊이 우러나는 단아한 꽃송이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매화라 불러야 제격입니다. 기준으로 삼은 식물도감에 매실나무라고 기록돼 있으니 공식적으로는 이를 따르려 하지만, 꽃에 마음을 빼앗겨 매화 혹은 매실나무로 오락가락하는 것을 과히 허물치 않았으면 합니다.

    설마 매화와 매실나무가 같은 나무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요? 매화는 나무지만 흔히 꽃이라고 생각하기 쉬워 꽃과 나무란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꽃이란 나무든 풀이든 고등 식물에겐 모두 있는 기관이지요.

    오늘은 꽃에 마음을 두고 이야기하겠습니다. 매화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군자의 고결함을 지녔다고 하여 사군자로 추앙받는 건 누구나 알 것입니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을 보면 옛 선비들이 매화를 귀하게 여긴 이유는 첫째 함부로 번성하지 않는 희소함 때문이고, 둘째 나무의 늙은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며, 셋째 살찌지 않고 마른 모습 때문이며, 넷째 꽃봉오리가 벌어지지 않고 오므라져 있는 자태 때문이라고 합니다. 매서운 추위를 뚫고 꽃을 피워내는 그 의연한 기상과 단아한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을 것 같습니다. 물질은 너무 풍성하고 정신과 행동은 절제되지 않는 오늘날 가장 적절한 의미를 가진 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화 자태와 비견할 또 하나의 매력은 그 향기에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매화 향기가 ‘귀로 듣는 향기’라고 합니다.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마음을 가다듬은 고요한 분위기에서 비로소 진정한 향기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매화를 따서 빚은 술은 매화주, 매실을 넣어 만든 술은 매실주입니다. 흰죽이 다 쑤어질 무렵 깨끗이 씻은 꽃잎을 넣은 매화죽이나 말려뒀다가 끓여 마시는 매화차는 향기를 아는 이들이 즐기는 음식과 차이지요.



    매화 꽃 모양은 다양합니다. 꽃을 보자고 만든 품종들은 빛깔에 따라 흰 매화, 홍매화로 가르고 꽃잎 수가 많으면 만첩매가 되며 가지가 늘어지면 수양매가 되지요. 그러나 특히 꽃을 즐기는 이들은 그 어느 품종보다 흰색의 홑겹꽃이 일찍 꽃을 피우고 향기가 짙다 하여 귀히 여기는데, 그중에서도 자색이 들어 있지 않은 녹두 빛 꽃받침잎을 가진 ‘청악소판’이란 품종을 가장 높이 치기도 합니다.

    꽃이 지고 난 후 익어가는 매실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따뜻한 매실차 한 잔을 마시며 오래 묵은 가지에서 피어날 매화를 기다려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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