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이후 남녘을 겨냥한 북한의 도발 위협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통일을 향한 시곗바늘은 오늘도 돌아간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어느 때보다 경색된 상태지만,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는 통일의 꿈이 익어간다. 최근 분단과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잇따르는 가운데 특히 극장가에서는 올해 유독 많은 작품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지구상 최후의 분단국인 한국의 대중문화는 영화나 TV 드라마 등을 통해 분단의 상처와 6·25전쟁의 비극을 다양한 시각과 정서로 기록해왔다. 정치 상황과 시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중문화가 분단과 6·25전쟁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다. 당시 한국 영화는 북한과 치열하게 체제경쟁을 벌이는 한국 사회의 우월성을 증명해 보이는 데 집중했다. 참전용사의 영웅적 활약상을 그린 작품이나 북한 체제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쟁 드라마는 1970년대 다소 침체기를 겪다가 1980년대에 다시 활기를 찾았다. 1983년 TV로 이산가족 찾기를 생중계하고, 85년 남북 이산가족이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가진 이후 비극적 가족사를 다룬 작품이 대거 등장했다. 영화 ‘길소뜸’이 대표적인 예다.
1980년대 말 이후엔 좌익에 가담했던 이들까지도 희생자로 보는 작품이 쏟아졌다. ‘서울의 봄’ 이후의 시대 분위기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 예로 드라마 ‘지리산’ ‘여명의 눈동자’, 영화 ‘남부군’ ‘태백산맥’을 꼽을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6·25전쟁과 분단을 다룬 영화들이 북한(동포)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담았다. 통일 지향적 시각도 명확히 했다.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는 영상기술 측면에서도 한국 영화의 기념비적 성취로 남은 작품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나 ‘웰컴 투 동막골’은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개인을 보여줌으로써 전쟁 없는 유토피아를 꿈꿨다.
중국 벽 넘은 현정화, 이분희
5월 3일 개봉한 영화 ‘코리아’ 역시 분단을 다룬 한국 영화의 흐름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 영화는 남북 스포츠사상 처음 결성한 단일팀이 국가명 ‘코리아’, 국가 ‘아리랑’, 국기 ‘한반도기’를 내걸고 출전한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이하 지바 대회) 여자단체전에서 중국을 누르고 우승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했다. 하지원이 현정화, 배두나가 당시 북측 대표선수 이분희를 맡았다. 현정화와 이분희는 여자단체전 결승에 복식조로 출전해 중국과 맞붙어 처음이자 마지막인 코리아의 역사적 우승을 이끌어냈다.
영화는 지바 대회 이전에 현정화와 이분희, 즉 세계 탁구계의 라이벌이자 남북 대결의 상징인 두 선수가 한 대회에서 맞닥뜨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당시 현정화는 지금으로 치면 김연아를 능가하는 국민적 스타였다. 현정화는 이분희를 이기고 결승에 오르지만 중국 선수에게 져 2위에 머문다. 여기에 ‘코리아’의 메시지가 있다. 혼자서는 넘지 못한 거대한 산을 남북이 힘을 합쳐 넘었다는 것이다.
1991년 2월 판문점에서 열린 제4차 남북체육회담에서 탁구 남북단일팀 결성을 전격 합의한다. 제41회 지바 대회를 2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선수들은 “몇 년간 손발을 맞춰도 중국을 못 이기는데 두 달 연습해서 우승하겠느냐”고 항변하지만 정치 논리를 앞세운 남북 정부는 단일팀 결성을 밀어붙인다.
남북 선수들이 일본에서 합숙을 시작하자 우려했던 일이 하나둘씩 불거진다. 자유롭고 물질적으로도 여유 있는 남측 선수들은 북측 선수들을 무시하기 일쑤고, 심지어 체제나 지도자(김일성)를 우스갯거리로 삼아 상대를 자극하기도 한다. 남측 남자선수가 첫 대면에서 친해보자는 뜻에서 던진 농담을 북측 선수들이 모욕적인 성희롱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결국 양측 남자선수들이 주먹다짐을 벌이고, 그 후로도 아슬아슬한 신경전이 이어진다.
그러나 함께 땀 흘리고 뒹굴며 공동 목표를 향해 단련해가면서 양측 선수들은 서로에 대한 경계를 풀고 젊은이 특유의 우정을 쌓는다. 남북 선수 사이에 연애사건도 생기고 양측 남자선수들끼리 일탈을 감행하기도 한다. 이윽고 대회가 시작되고 단일팀은 힘겹게 결승에 오른다.
하지만 중국과의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북한 당국이 돌연 단일팀 해체와 선수단 철수를 결정한다. 남측 선수들 때문에 북측 선수들의 사상이 해이해지면서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행동이 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것이다.
“70∼80%는 사실에 근거”
당시 단일팀 중 현정화, 이분희, 유순복(한예리 분)은 실명으로 등장하고, 그 외의 선수들은 가명으로 설정됐다. 남북 선수 간 충돌과 연애사건, 그리고 북 당국의 선수단 철수 결정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이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현정화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은 “70~80%는 사실에 근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 끓는 청춘남녀가 모였던 만큼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고, 남측 선수들이 듣고 있던 워크맨(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을 북측 선수들에게 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경기 장면이나 스코어는 그대로 재현했다. 다만 여러 대회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적절히 섞어 재구성했으며, 일부 과장하거나 극적으로 지어 넣은 내용도 있다.
1991년 남북단일팀의 우승과 기약 없는 선수단 해체, 그로 인한 이별이 남북한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듯이, 영화도 상영시간 내내 웃음과 눈물을 자아낸다. 하지원과 배두나를 비롯한 주연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영화 완성도도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무엇보다 남북 현실과 맞닿은 소재가 공감을 불러온다.
‘코리아’에 이어 ‘베를린’ ‘미스터 K’ ‘용의자’ ‘적’ ‘디데이’ ‘간첩’ 등 분단을 소재로 한 여러 편의 영화가 내년까지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다. 분단은 아픈 현실이지만 한편으론 액션과 첩보, 코미디, 휴먼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 영화에 상상력과 이야기를 제공하는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의 인구가 6·25전쟁 세대의 인구를 앞지르면서 사회 주류로 나섬에 따라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 역시 이데올로기에서 현실로, 현실에서 판타지로 진화한다. 리얼리즘과 휴머니즘, 유토피아니즘(이상주의)을 망라한 한국 영화 최후의 판타지는 통일이다. ‘코리아’가 또 하나의 증거다.
지구상 최후의 분단국인 한국의 대중문화는 영화나 TV 드라마 등을 통해 분단의 상처와 6·25전쟁의 비극을 다양한 시각과 정서로 기록해왔다. 정치 상황과 시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중문화가 분단과 6·25전쟁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다. 당시 한국 영화는 북한과 치열하게 체제경쟁을 벌이는 한국 사회의 우월성을 증명해 보이는 데 집중했다. 참전용사의 영웅적 활약상을 그린 작품이나 북한 체제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쟁 드라마는 1970년대 다소 침체기를 겪다가 1980년대에 다시 활기를 찾았다. 1983년 TV로 이산가족 찾기를 생중계하고, 85년 남북 이산가족이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가진 이후 비극적 가족사를 다룬 작품이 대거 등장했다. 영화 ‘길소뜸’이 대표적인 예다.
1980년대 말 이후엔 좌익에 가담했던 이들까지도 희생자로 보는 작품이 쏟아졌다. ‘서울의 봄’ 이후의 시대 분위기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 예로 드라마 ‘지리산’ ‘여명의 눈동자’, 영화 ‘남부군’ ‘태백산맥’을 꼽을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6·25전쟁과 분단을 다룬 영화들이 북한(동포)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담았다. 통일 지향적 시각도 명확히 했다.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는 영상기술 측면에서도 한국 영화의 기념비적 성취로 남은 작품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나 ‘웰컴 투 동막골’은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개인을 보여줌으로써 전쟁 없는 유토피아를 꿈꿨다.
중국 벽 넘은 현정화, 이분희
5월 3일 개봉한 영화 ‘코리아’ 역시 분단을 다룬 한국 영화의 흐름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 영화는 남북 스포츠사상 처음 결성한 단일팀이 국가명 ‘코리아’, 국가 ‘아리랑’, 국기 ‘한반도기’를 내걸고 출전한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이하 지바 대회) 여자단체전에서 중국을 누르고 우승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했다. 하지원이 현정화, 배두나가 당시 북측 대표선수 이분희를 맡았다. 현정화와 이분희는 여자단체전 결승에 복식조로 출전해 중국과 맞붙어 처음이자 마지막인 코리아의 역사적 우승을 이끌어냈다.
영화는 지바 대회 이전에 현정화와 이분희, 즉 세계 탁구계의 라이벌이자 남북 대결의 상징인 두 선수가 한 대회에서 맞닥뜨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당시 현정화는 지금으로 치면 김연아를 능가하는 국민적 스타였다. 현정화는 이분희를 이기고 결승에 오르지만 중국 선수에게 져 2위에 머문다. 여기에 ‘코리아’의 메시지가 있다. 혼자서는 넘지 못한 거대한 산을 남북이 힘을 합쳐 넘었다는 것이다.
1991년 2월 판문점에서 열린 제4차 남북체육회담에서 탁구 남북단일팀 결성을 전격 합의한다. 제41회 지바 대회를 2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선수들은 “몇 년간 손발을 맞춰도 중국을 못 이기는데 두 달 연습해서 우승하겠느냐”고 항변하지만 정치 논리를 앞세운 남북 정부는 단일팀 결성을 밀어붙인다.
남북 선수들이 일본에서 합숙을 시작하자 우려했던 일이 하나둘씩 불거진다. 자유롭고 물질적으로도 여유 있는 남측 선수들은 북측 선수들을 무시하기 일쑤고, 심지어 체제나 지도자(김일성)를 우스갯거리로 삼아 상대를 자극하기도 한다. 남측 남자선수가 첫 대면에서 친해보자는 뜻에서 던진 농담을 북측 선수들이 모욕적인 성희롱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결국 양측 남자선수들이 주먹다짐을 벌이고, 그 후로도 아슬아슬한 신경전이 이어진다.
그러나 함께 땀 흘리고 뒹굴며 공동 목표를 향해 단련해가면서 양측 선수들은 서로에 대한 경계를 풀고 젊은이 특유의 우정을 쌓는다. 남북 선수 사이에 연애사건도 생기고 양측 남자선수들끼리 일탈을 감행하기도 한다. 이윽고 대회가 시작되고 단일팀은 힘겹게 결승에 오른다.
하지만 중국과의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북한 당국이 돌연 단일팀 해체와 선수단 철수를 결정한다. 남측 선수들 때문에 북측 선수들의 사상이 해이해지면서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행동이 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것이다.
“70∼80%는 사실에 근거”
당시 단일팀 중 현정화, 이분희, 유순복(한예리 분)은 실명으로 등장하고, 그 외의 선수들은 가명으로 설정됐다. 남북 선수 간 충돌과 연애사건, 그리고 북 당국의 선수단 철수 결정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이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현정화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은 “70~80%는 사실에 근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 끓는 청춘남녀가 모였던 만큼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고, 남측 선수들이 듣고 있던 워크맨(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을 북측 선수들에게 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경기 장면이나 스코어는 그대로 재현했다. 다만 여러 대회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적절히 섞어 재구성했으며, 일부 과장하거나 극적으로 지어 넣은 내용도 있다.
1991년 남북단일팀의 우승과 기약 없는 선수단 해체, 그로 인한 이별이 남북한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듯이, 영화도 상영시간 내내 웃음과 눈물을 자아낸다. 하지원과 배두나를 비롯한 주연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영화 완성도도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무엇보다 남북 현실과 맞닿은 소재가 공감을 불러온다.
‘코리아’에 이어 ‘베를린’ ‘미스터 K’ ‘용의자’ ‘적’ ‘디데이’ ‘간첩’ 등 분단을 소재로 한 여러 편의 영화가 내년까지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다. 분단은 아픈 현실이지만 한편으론 액션과 첩보, 코미디, 휴먼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 영화에 상상력과 이야기를 제공하는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의 인구가 6·25전쟁 세대의 인구를 앞지르면서 사회 주류로 나섬에 따라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 역시 이데올로기에서 현실로, 현실에서 판타지로 진화한다. 리얼리즘과 휴머니즘, 유토피아니즘(이상주의)을 망라한 한국 영화 최후의 판타지는 통일이다. ‘코리아’가 또 하나의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