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기체의 초상’, 홀바인, 1532년, 목판에 유채, 96×85, 베를린 국립미술관 소장.
사랑만 먹고사는 고통스러운 생활을 원하는 여자는 세상에 없다. 사랑은 가슴에 숨겨둘 수 있지만 가난은 숨길 수 없는 법. 여자에게 가난하고 잘생긴 남자는 침실용이지 홍보용이 아니다. 여자는 잘생겼지만 가난하고 지질한 애인보다 못생겨도 명품 핸드백을 자주 사줄 수 있는 부자를 더 원한다. 명품 핸드백이 자기 인생을 돋보이게 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유한 상인을 그린 작품이 한스 홀바인 2세(1497∼1543)의 ‘게오르크 기체의 초상’이다. 양탄자가 깔린 사무실 탁자 앞에 게오르크 기체가 앉아 있다. 탁자 위에는 베네치아산 유리와 북 모양의 탁상시계, 깃펜, 봉인 달린 양피지, 인장, 동전, 가위, 금, 저울, 열쇠, 장부 등 실용품이 가득하다. 이 물건은 투명한 거래가 생명인 젊은 상인의 직업적 특성과 성향을 나타낸다. 특히 시계는 신용, 유리병은 투명한 거래를 상징한다.
탁자 위 꽃병에 담긴 카네이션과 로즈메리, 우슬초, 노란색 겨자 꽃다발은 사랑과 정절, 순수와 겸손을 상징하는 소품들이다. 피었다가 곧 시들고 말 꽃은 삶을 경솔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가르침을 준다.
상인이 들고 있는 편지봉투에는 그의 이름과 상호, 주소, 날짜가 적혔다. 머리 위 쪽지에는 그림 속 주인공을 설명하는 라틴어가 적혔다. ‘이 그림은 게오르크 기체의 얼굴과 외형 모습이다. 눈빛과 뺨이 생생하지 않은가. 서기 1532년 그의 나이 34세.’
이 작품의 진가는 전통적 원근법을 무시한 파격적인 구성에 있다. 얼핏 보면 부유한 상인이 머무는 사무실을 깔끔하게 묘사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융단을 덮은 탁자의 상단을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았고 벽돌도 직각이 아니다. 그림 왼쪽 상단에 걸린 금 저울도 평형을 이루지 않는다. 사실적으로 묘사한 듯하지만 미묘한 변화를 준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모든 물질은 부서지기 쉽고 헛되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차원이다.
여자가 남자를 처음 보는 순간 위아래로 스캔하는 이유는 오로지 남자의 부유함을 측정하기 위해서다. 여자가 자신을 바라본다고 자신이 미남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여자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도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한다. 남자가 지닌 물건들을 통해 연봉을 가늠하는 것이다. 특히 남자가 지닌 물건 중에서도 자동차가 부유함을 판단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다. 사회적으로도 자동차 배기량이 클수록 부유한 사람으로 간주한다. 미인을 얻고 싶다면 자동차 배기량을 업그레이드하라. 남자가 침대용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외모보다 자동차에 더 신경 써야 한다.
(왼쪽)‘차 안에서’, 리히텐슈타인, 1963년, 캔버스에 마그나와 유채, 172×203, 영국 스코티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오른쪽)‘매춘부들과 함께 있는 기둥서방’, 딕스, 1922년, 캔버스에 유채, 70×55, 개인 소장.
남자 입꼬리가 약간 올라간 것은 여자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음을 의미하며, 여자가 앞만 바라보는 모습은 자만심의 표현이다. 차창 줄무늬는 만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표현기법으로, 리히텐슈타인은 달리는 차를 묘사하려고 그것을 시각적 이미지로 차용했다. 원색을 사용한 것은 만화 이미지를 극대화하려는 의도이며, 붉은색 자동차는 남자의 성적 욕망을 상징한다.
높은 연봉을 나타내는 남자의 소유물이 때로는 여자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기꾼일수록 수입자동차니 명품 옷, 시계를 선호하는데, 여자가 그런 물건으로 남자를 판단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기의 기본은 뻥으로 시작해 뻥으로 끝나는 법.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사기칠 수 없고, 사기꾼에 속는 순간 여자의 인생은 어두워진다.
사기꾼에게 인생을 저당잡힌 여자를 그린 작품이 오토 딕스(1891∼1969)의 ‘매춘부들과 함께 있는 기둥서방’이다. 중절모를 쓰고 와이셔츠에 노란색 넥타이, 조끼까지 갖춰 입은 남자가 뒤에 서 있는 여자들을 바라본다. 여자들은 남자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앞만 바라본다.
배경의 붉은색 담장은 여자들이 매춘부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그들은 거리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다. 초라한 옷과 목걸이, 검은색 리본 또한 여자들의 직업을 나타낸다. 흰색 셔츠와 노란색 넥타이, 그리고 행커치프까지 한껏 차려입은 모습은 남자가 옷차림에 신경 쓰는 멋쟁이임을 나타내며, 시선이 매춘부에게 향한 것은 그가 기둥서방이라는 의미다. 여자들의 초라한 옷차림이 기둥서방의 세련된 옷차림과 대조를 이룬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진실은 항상 꼭꼭 숨어 있듯, 백만장자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들은 일단 길거리를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러니 평범한 여자는 결코 백만장자를 만날 수 없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