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소회의실에는 무거운 정적이 덮였다. 대통령이 주재한 임시회의다. 임시회의에는 대통령실장과 해당 수석비서관이 참석하지만 비서관들이 동석하기 때문에 참석 인원이 적어도 20여 명 된다. 오늘은 인사 관계 회의여서 국정기획수석, 정무수석, 민정수석에다 기획조정비서관 박영준, 인사비서관 김명식까지 참석했다. 이명박은 방금 청와대 비서관 인사 서류를 반려했다. 승인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분위기가 굳어져 있다. 봉하마을에 내려가 노무현을 만난 후로 일주일 만에 광우병 시위는 막을 내렸다. 시청 앞은 깨끗이 정비되었고 유모차를 끌고 나왔던 주부들도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청와대는 숨 쉴 틈이 없다. 이번에는 인사다.
“시중에선 내 인사를 고소영이라고 한다던데.”
이명박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
“고대, 소망교회, 영남인들만의 인사라는 거요. 거참, 이름을 잘도 지어내.”
그러고는 이명박이 쓴웃음을 지었지만 아무도 따라 웃지 않았다. 그렇다. 인사는 인사권자의 고유 권한이지만 이명박 정권의 첫 인사 때부터 말이 많았다. 그리고 오늘 이명박의 입에서 처음으로 ‘고소영’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이명박의 말이 이어졌다.
“전임 대통령을 만났을 때 말인데.”
그 순간 모두 숨을 죽였다. 노무현을 말하는 것이다. 이번의 광우병 사태는 그야말로 기습적인 노무현 방문으로 해결되었다. 반(反)정부 세력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노빠’들도 노무현이 이명박을 싸고돌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항간에는 이명박과 노무현 사이에 ‘밀약’이 있다는 소문까지 횡행하고 있다. 그래서 모두 긴장한 채 이명박의 입을 주시했다.
“노 대통령이 말하더군.”
이명박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5년이 눈 깜박하는 사이에 갔다고 말이요.”
주위를 둘러본 이명박의 말이 이어졌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아, 이 사람 외롭구나. 5년 동안 진이 다 빠졌구나. 내가 일으켜줘야겠다. 이런 생각도 들고….”
“….”
“그 짧은 5년 동안 알량한 권력 다툼이 일어난다든지, 시기, 중상모략 또는 호가호위….”
말을 멈춘 이명박이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지요. 난 노 대통령을 보고 크게 깨우쳤어. 난 외롭더라도 견딜 거요. 충신을 만들어 임기 후에 외롭지 않겠다는 짓도 안 할 것이고, 그저 5년 동안 국민이 원하는 정치를 하다가 갈 테니까.”
상체를 편 이명박이 눈을 치켜떴다.
“나하고 뜻을 같이 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안 돼. 내가 가려내기 전에 미리 나가야 될 거요.”
# “그거, 언론용이야.”
민정수석실 행정관 이문수가 말했다. 이문수는 서울시청, 대선캠프, 인수위원회를 거친 성골(聖骨) 측에 든다. 비록 행정관급이지만 같은 상에서 밥 먹은 동지들 중에 수석비서관, 장관급이 수두룩한 것이다. 그래서 온갖 모임에 다 불려 간다. 오늘은 경제수석실 행정관 둘하고 삼청동의 한정식집에서 술을 마시는 중이다. 이문수가 지그시 30대 후반의 행정관 둘을 바라보았다. 자신보다 10년쯤은 연하다.
“다 처음에는 그렇게 조이는 거야. 어쩔 수 없다고.”
지금 이문수는 이명박의 고소영 인사 퇴치 방침에 대한 해설을 해주는 중이다. 경제수석실 행정관들은 각각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에서 차출된 멤버라 이명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술잔을 쥔 이문수가 말을 이었다.
“내가 보스를 서울시청에서 모시고 있을 때도 그랬어. 그래야만 군기가 잡혀.”
“그럼 조금 있으면 풀릴까요?”
하나가 묻자 이문수는 빙긋 웃었다.
“당근이지. 그리고 보스는 자기 사람이다 싶으면 절대 안 잘라. 그걸 알면 돼.”
“오늘 선배님한테서 많이 배웁니다.”
다른 하나가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물었다.
“그런데 선배님이 부탁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는데, 무슨….”
“기업은행에다 전화 한 통 해주소.”
대뜸 말한 이문수가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내밀었다.
“기업은행 거래선인 내 친지인데, 담보도 충분해. 그러니까 담보 대출하는 데 편의 좀 봐달라는 거지.”
그러고는 둘을 번갈아 보았다.
“물론 아우님들한테도 인사를 할 거야.”
“아아, 예.”
쪽지를 받은 하나가 힐끗 동료와 시선을 부딪치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잘 알겠습니다. 담보만 확실하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야.”
기분이 좋아진 이문수가 한 모금에 술을 삼켰다. 그러고는 붉어진 얼굴로 말을 잇는다.
“시발, 미꾸라지도 한철이여. 죽을 고생을 하고 청와대 땅 밟았는데 보스도 우리 심정 알고 있을 거라고.”
# “잘못하다가는 개판되겠어.”
아침식사를 하면서 이명박이 말하자 김 여사가 시선을 들었다. 뜬금없이 무슨 말을 하느냐는 표정이다. 한 모금 된장국을 삼킨 이명박이 말을 이었다.
“인사 말이야, 인사.”
“인사가 어쨌다고 그래요?”
바깥일은 상관하지 않는 게 버릇이 된 터라 김 여사는 오직 그렇게만 묻는다. 그러자 잠자코 씹던 것을 삼킨 이명박이 말했다.
“고소영이 맞는 것 같아.”
“탤런트 말예요? 걔 예쁘던데.”
“장난 말고.”
눈을 치켜뜬 이명박이 다시 밥을 떠 입에 넣었다. 이명박이 씹는 동안 김 여사가 말했다.
“이번에 봉하마을 내려간 것, 잘했다는 말이 많더군요. 당신이 달라졌다고도 하고.”
“쥐박이가 죽을 때가 돼서 그런다고 하는 놈도 있던데.”
“애들이 장난하는 거죠.”
정색한 김 여사가 말을 잇는다.
“절대로 그런 말에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자 수저를 내려놓은 이명박이 웃었다.
“당신이 더 신경 쓰는 것 같구먼 그래.”
이명박이 웃음 띤 얼굴로 일어섰다.
“당신하고 이야기하는 동안 마음을 정했어.”
김 여사가 시선을 주었지만 이명박은 말을 잇지 않았다. 그것이 둘의 스타일이다. 속 편하게 말하되 깊은 이야기는 않는 것, 그러면 영감이 떠오를 때가 있다.
# “소망교회는 10명도 안 됩니다.”
인사비서관 김명식이 말했다.
“해당자 부인이 소망교회에 다니는 경우가 대여섯 명 있었습니다만, 통계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이명박이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집무실 안에는 대통령실장 유우익과 기획조정비서관 박영준, 그리고 김명식까지 넷이 둘러앉았다. 지금 김명식은 청와대와 정부 부처, 공공기관 고위직의 고소영 분포도를 조사해온 것이다. 김명식이 말을 이었다.
“현재까지 고려대와 영남 비율도 전(前) 정권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이명박이 통계를 보았다. 영남이 36% 내외, 고대는 8% 내외다. 그때 박영준이 말했다.
“고대는 오히려 정권 출범 당시 23명의 차관급 인사에서 1명뿐이라 고대학살자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박영준도 고대 출신인 것이다. 이명박의 시선을 받은 박영준이 말을 잇는다.
“비판을 위한 비판입니다. 전(前) 정권도 인사위, 캠프 출신으로 싹쓸이하다시피 요직을 독식해놓고는 저희만 비판하는 것입니다.”
박영준이 정권 초기의 인사 실무를 맡았던 것이다. 박영준은 정권 창출의 일등 공신이며 이명박의 심복이다. 이명박과는 영남, 고대, 서울시, 한나라당, 대선캠프, 인수위까지 같은 배를 타고 온 유일무이한 충복이며, 더구나 이상득의 보좌관 출신이다. 이런 인연으로 얽힌 인물은 박영준뿐이다.
“그렇군.”
마침내 이명박이 이 사이로 말하고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 박 비서관이 억울한 점이 많겠어.”
“아닙니다.”
당황한 박영준의 얼굴이 상기되었고 목소리가 떨렸다. 시선을 내린 박영준이 겨우 말을 잇는다.
“저는 대통령님께서만 인정해주신다면 다 감내할 수 있습니다.”
# “다 박영준 그놈의 농간이라고.”
정두언이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그놈이 국정 농간의 주범이야.”
국회 의원회관의 정두언 의원실 안이다. 방 안에는 인수위에서 함께 일했던 이해봉, 장기순이 찾아와 있는데 둘 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실업자인 것이다. 그 많은 공공기관의 감사 자리도 받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둘이 정두언과 친했다는 이유로 박영준이 밀어낸 것이다. 박영준과 가까운 놈들은 다 한자리씩 차지했으니까. 정두언이 이 사이로 말을 잇는다.
“박영준 이놈, 호가호위하다가 결국 주군을 해칠 놈이야.”
그때 노크도 하지 않고 보좌관이 들어서는 바람에 정두언이 머리를 들었다. 보좌관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져 있다.
“의원님, 청와대에서….”
“왜?”
놀란 정두언이 갈라진 목소리로 묻자 보좌관이 책상 위의 전화기를 들면서 말했다.
“대통령님이십니다.”
저도 모르게 일어선 정두언이 전화기를 받아 들었고 이해봉과 장기순이 덩달아 일어섰다. 전화기를 귀에 붙인 정두언이 말했다.
“예, 정두언입니다.”
“저, 의전비서관 김창범입니다. 의원님.”
“아아, 예.”
“대통령님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더니 곧 이명박의 목소리가 수화구를 울렸다.
“정 의원?”
“예, 대통령님.”
정두언의 목소리가 떨렸다. 만감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그때 이명박이 말했다.
“인마, 남부끄럽다. 박영준이 놔둬라, 알았나?”
“예, 대통령님.”
“위로해줘라, 알았나?”
“예, 대통령님.”
대답은 했지만 정두언은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었다. 그때 대통령이 말을 잇는다.
“내가 한번 부를게, 곧 만나자.”
“예, 대통령님.”
그러고 보면 대답만 네 번하고 끝난 통화였지만 전화가 끊기고 나자 정두언은 지친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 방으로 들어선 이문수는 이쪽을 바라보고 앉은 사내와 시선이 마주쳤다. 이문수가 마당발이지만, 이 사내가 최근에 민정수석실 비서관으로 채용되었다는 것밖에는 모른다. 그러나 어깨를 편 이문수가 사내 앞으로 다가가 묻는다.
“한영국 비서관이십니까?”
“예, 어서 오세요.”
40대 중반쯤의 사내가 빙긋 웃기까지 하니 이문수는 앞쪽 의자에 앉았다. 이곳은 수석실 옆방인데 문패도 없다. 그저 한영국 비서관실이라고만 했다. 그때 한영국이 부드러운 얼굴로 이문수를 보았다.
“무슨 일로 뵙자고 했는지 모르시지요?”
“아, 예.”
이문수는 심호흡을 했다. 물론 온갖 예상을 했다. 갑자기 민정수석실에서 호출이 오면 긴장하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민정수석 이종찬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고 기획조정관 박영준, 인사비서관 김명식도 다 친한 사이다. 그때 한영국이 말했다.
“감사에 걸리셨습니다. 사직서 쓰시고 오늘 중으로 자리 비우시지요.”
# 그 시간에 이명박은 집무실에서 이상득을 맞는다.
“어서 오십시오.”
대통령실장 유우익의 안내를 받고 들어선 이상득이 풀석 웃었다. 집무실 안에는 국정기획수석 곽승준과 정무수석 박재완까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내가 외국 국가원수 대접을 받는구먼.”
“그럴 자격이 있으십니다.”
하고 유우익이 화답하자 이상득은 정색하고 머리를 젓는다.
“싫어. 오늘 한 번으로 끝낼 테여.”
소파로 안내한 이명박이 이상득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자신도 앞쪽에 앉는다. 따라서 유우익과 곽승준, 박재완도 옆쪽으로 비껴 앉았다. 상석 두 자리만 빼고 모두 비껴 앉은 것이다. 직원이 들어와 각자의 앞에 인삼차 잔을 놓고 돌아갔다. 그때 찻잔을 든 이상득이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방이 좀 허전하지? 병풍이라도 갖다놓는 게 낫지 않을까?”
“아, 예.”
이명박이 따라서 방 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그렇구먼요.”
머리를 끄덕인 이상득이 차를 한 모금 삼켰다.
“그려, 자네 맘을 이해하네.”
그러자 이명박이 상체를 세웠고 셋은 숨을 죽였다. 이상득이 말을 잇는다.
“대통령으로 나를 만나려는 마음을 말여.”
“형님.”
“오면서 생각했다. 자, 동생인 대통령이 집무실로 불렀는데 내가 내놓을 것이 뭔가 하고 말이다.”
“형님.”
이명박의 얼굴이 상기되었고 목소리가 떨렸다. 이상득은 이명박의 멘토였다. 형님처럼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명박은 이상득이란 형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때 이상득이 말했다.
“화무십일홍이다. 나도 언젠가는 그만둘 몸. 이 방을 나가면 정계 은퇴 선언을 하겠다. 동생한테 부담을 덜어줘야지.”
“형님.”
마침내 이명박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다시 이상득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지. 박영준이도 사퇴하게 하고 내 지역구에서 출마하게 하면 되겠다.”
그러더니 지그시 웃었다.
“정두언이하고 두 놈이 국회에서 박 터지게 싸우게 하면 볼만하겠다.”
“시중에선 내 인사를 고소영이라고 한다던데.”
이명박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
“고대, 소망교회, 영남인들만의 인사라는 거요. 거참, 이름을 잘도 지어내.”
그러고는 이명박이 쓴웃음을 지었지만 아무도 따라 웃지 않았다. 그렇다. 인사는 인사권자의 고유 권한이지만 이명박 정권의 첫 인사 때부터 말이 많았다. 그리고 오늘 이명박의 입에서 처음으로 ‘고소영’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이명박의 말이 이어졌다.
“전임 대통령을 만났을 때 말인데.”
그 순간 모두 숨을 죽였다. 노무현을 말하는 것이다. 이번의 광우병 사태는 그야말로 기습적인 노무현 방문으로 해결되었다. 반(反)정부 세력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노빠’들도 노무현이 이명박을 싸고돌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항간에는 이명박과 노무현 사이에 ‘밀약’이 있다는 소문까지 횡행하고 있다. 그래서 모두 긴장한 채 이명박의 입을 주시했다.
“노 대통령이 말하더군.”
이명박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5년이 눈 깜박하는 사이에 갔다고 말이요.”
주위를 둘러본 이명박의 말이 이어졌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아, 이 사람 외롭구나. 5년 동안 진이 다 빠졌구나. 내가 일으켜줘야겠다. 이런 생각도 들고….”
“….”
“그 짧은 5년 동안 알량한 권력 다툼이 일어난다든지, 시기, 중상모략 또는 호가호위….”
말을 멈춘 이명박이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지요. 난 노 대통령을 보고 크게 깨우쳤어. 난 외롭더라도 견딜 거요. 충신을 만들어 임기 후에 외롭지 않겠다는 짓도 안 할 것이고, 그저 5년 동안 국민이 원하는 정치를 하다가 갈 테니까.”
상체를 편 이명박이 눈을 치켜떴다.
“나하고 뜻을 같이 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안 돼. 내가 가려내기 전에 미리 나가야 될 거요.”
# “그거, 언론용이야.”
민정수석실 행정관 이문수가 말했다. 이문수는 서울시청, 대선캠프, 인수위원회를 거친 성골(聖骨) 측에 든다. 비록 행정관급이지만 같은 상에서 밥 먹은 동지들 중에 수석비서관, 장관급이 수두룩한 것이다. 그래서 온갖 모임에 다 불려 간다. 오늘은 경제수석실 행정관 둘하고 삼청동의 한정식집에서 술을 마시는 중이다. 이문수가 지그시 30대 후반의 행정관 둘을 바라보았다. 자신보다 10년쯤은 연하다.
“다 처음에는 그렇게 조이는 거야. 어쩔 수 없다고.”
지금 이문수는 이명박의 고소영 인사 퇴치 방침에 대한 해설을 해주는 중이다. 경제수석실 행정관들은 각각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에서 차출된 멤버라 이명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술잔을 쥔 이문수가 말을 이었다.
“내가 보스를 서울시청에서 모시고 있을 때도 그랬어. 그래야만 군기가 잡혀.”
“그럼 조금 있으면 풀릴까요?”
하나가 묻자 이문수는 빙긋 웃었다.
“당근이지. 그리고 보스는 자기 사람이다 싶으면 절대 안 잘라. 그걸 알면 돼.”
“오늘 선배님한테서 많이 배웁니다.”
다른 하나가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물었다.
“그런데 선배님이 부탁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는데, 무슨….”
“기업은행에다 전화 한 통 해주소.”
대뜸 말한 이문수가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내밀었다.
“기업은행 거래선인 내 친지인데, 담보도 충분해. 그러니까 담보 대출하는 데 편의 좀 봐달라는 거지.”
그러고는 둘을 번갈아 보았다.
“물론 아우님들한테도 인사를 할 거야.”
“아아, 예.”
쪽지를 받은 하나가 힐끗 동료와 시선을 부딪치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잘 알겠습니다. 담보만 확실하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야.”
기분이 좋아진 이문수가 한 모금에 술을 삼켰다. 그러고는 붉어진 얼굴로 말을 잇는다.
“시발, 미꾸라지도 한철이여. 죽을 고생을 하고 청와대 땅 밟았는데 보스도 우리 심정 알고 있을 거라고.”
# “잘못하다가는 개판되겠어.”
아침식사를 하면서 이명박이 말하자 김 여사가 시선을 들었다. 뜬금없이 무슨 말을 하느냐는 표정이다. 한 모금 된장국을 삼킨 이명박이 말을 이었다.
“인사 말이야, 인사.”
“인사가 어쨌다고 그래요?”
바깥일은 상관하지 않는 게 버릇이 된 터라 김 여사는 오직 그렇게만 묻는다. 그러자 잠자코 씹던 것을 삼킨 이명박이 말했다.
“고소영이 맞는 것 같아.”
“탤런트 말예요? 걔 예쁘던데.”
“장난 말고.”
눈을 치켜뜬 이명박이 다시 밥을 떠 입에 넣었다. 이명박이 씹는 동안 김 여사가 말했다.
“이번에 봉하마을 내려간 것, 잘했다는 말이 많더군요. 당신이 달라졌다고도 하고.”
“쥐박이가 죽을 때가 돼서 그런다고 하는 놈도 있던데.”
“애들이 장난하는 거죠.”
정색한 김 여사가 말을 잇는다.
“절대로 그런 말에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자 수저를 내려놓은 이명박이 웃었다.
“당신이 더 신경 쓰는 것 같구먼 그래.”
이명박이 웃음 띤 얼굴로 일어섰다.
“당신하고 이야기하는 동안 마음을 정했어.”
김 여사가 시선을 주었지만 이명박은 말을 잇지 않았다. 그것이 둘의 스타일이다. 속 편하게 말하되 깊은 이야기는 않는 것, 그러면 영감이 떠오를 때가 있다.
# “소망교회는 10명도 안 됩니다.”
인사비서관 김명식이 말했다.
“해당자 부인이 소망교회에 다니는 경우가 대여섯 명 있었습니다만, 통계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이명박이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집무실 안에는 대통령실장 유우익과 기획조정비서관 박영준, 그리고 김명식까지 넷이 둘러앉았다. 지금 김명식은 청와대와 정부 부처, 공공기관 고위직의 고소영 분포도를 조사해온 것이다. 김명식이 말을 이었다.
“현재까지 고려대와 영남 비율도 전(前) 정권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이명박이 통계를 보았다. 영남이 36% 내외, 고대는 8% 내외다. 그때 박영준이 말했다.
“고대는 오히려 정권 출범 당시 23명의 차관급 인사에서 1명뿐이라 고대학살자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박영준도 고대 출신인 것이다. 이명박의 시선을 받은 박영준이 말을 잇는다.
“비판을 위한 비판입니다. 전(前) 정권도 인사위, 캠프 출신으로 싹쓸이하다시피 요직을 독식해놓고는 저희만 비판하는 것입니다.”
박영준이 정권 초기의 인사 실무를 맡았던 것이다. 박영준은 정권 창출의 일등 공신이며 이명박의 심복이다. 이명박과는 영남, 고대, 서울시, 한나라당, 대선캠프, 인수위까지 같은 배를 타고 온 유일무이한 충복이며, 더구나 이상득의 보좌관 출신이다. 이런 인연으로 얽힌 인물은 박영준뿐이다.
“그렇군.”
마침내 이명박이 이 사이로 말하고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 박 비서관이 억울한 점이 많겠어.”
“아닙니다.”
당황한 박영준의 얼굴이 상기되었고 목소리가 떨렸다. 시선을 내린 박영준이 겨우 말을 잇는다.
“저는 대통령님께서만 인정해주신다면 다 감내할 수 있습니다.”
# “다 박영준 그놈의 농간이라고.”
정두언이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그놈이 국정 농간의 주범이야.”
국회 의원회관의 정두언 의원실 안이다. 방 안에는 인수위에서 함께 일했던 이해봉, 장기순이 찾아와 있는데 둘 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실업자인 것이다. 그 많은 공공기관의 감사 자리도 받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둘이 정두언과 친했다는 이유로 박영준이 밀어낸 것이다. 박영준과 가까운 놈들은 다 한자리씩 차지했으니까. 정두언이 이 사이로 말을 잇는다.
“박영준 이놈, 호가호위하다가 결국 주군을 해칠 놈이야.”
그때 노크도 하지 않고 보좌관이 들어서는 바람에 정두언이 머리를 들었다. 보좌관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져 있다.
“의원님, 청와대에서….”
“왜?”
놀란 정두언이 갈라진 목소리로 묻자 보좌관이 책상 위의 전화기를 들면서 말했다.
“대통령님이십니다.”
저도 모르게 일어선 정두언이 전화기를 받아 들었고 이해봉과 장기순이 덩달아 일어섰다. 전화기를 귀에 붙인 정두언이 말했다.
“예, 정두언입니다.”
“저, 의전비서관 김창범입니다. 의원님.”
“아아, 예.”
“대통령님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더니 곧 이명박의 목소리가 수화구를 울렸다.
“정 의원?”
“예, 대통령님.”
정두언의 목소리가 떨렸다. 만감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그때 이명박이 말했다.
“인마, 남부끄럽다. 박영준이 놔둬라, 알았나?”
“예, 대통령님.”
“위로해줘라, 알았나?”
“예, 대통령님.”
대답은 했지만 정두언은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었다. 그때 대통령이 말을 잇는다.
“내가 한번 부를게, 곧 만나자.”
“예, 대통령님.”
그러고 보면 대답만 네 번하고 끝난 통화였지만 전화가 끊기고 나자 정두언은 지친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 방으로 들어선 이문수는 이쪽을 바라보고 앉은 사내와 시선이 마주쳤다. 이문수가 마당발이지만, 이 사내가 최근에 민정수석실 비서관으로 채용되었다는 것밖에는 모른다. 그러나 어깨를 편 이문수가 사내 앞으로 다가가 묻는다.
“한영국 비서관이십니까?”
“예, 어서 오세요.”
40대 중반쯤의 사내가 빙긋 웃기까지 하니 이문수는 앞쪽 의자에 앉았다. 이곳은 수석실 옆방인데 문패도 없다. 그저 한영국 비서관실이라고만 했다. 그때 한영국이 부드러운 얼굴로 이문수를 보았다.
“무슨 일로 뵙자고 했는지 모르시지요?”
“아, 예.”
이문수는 심호흡을 했다. 물론 온갖 예상을 했다. 갑자기 민정수석실에서 호출이 오면 긴장하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민정수석 이종찬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고 기획조정관 박영준, 인사비서관 김명식도 다 친한 사이다. 그때 한영국이 말했다.
“감사에 걸리셨습니다. 사직서 쓰시고 오늘 중으로 자리 비우시지요.”
# 그 시간에 이명박은 집무실에서 이상득을 맞는다.
“어서 오십시오.”
대통령실장 유우익의 안내를 받고 들어선 이상득이 풀석 웃었다. 집무실 안에는 국정기획수석 곽승준과 정무수석 박재완까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내가 외국 국가원수 대접을 받는구먼.”
“그럴 자격이 있으십니다.”
하고 유우익이 화답하자 이상득은 정색하고 머리를 젓는다.
“싫어. 오늘 한 번으로 끝낼 테여.”
소파로 안내한 이명박이 이상득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자신도 앞쪽에 앉는다. 따라서 유우익과 곽승준, 박재완도 옆쪽으로 비껴 앉았다. 상석 두 자리만 빼고 모두 비껴 앉은 것이다. 직원이 들어와 각자의 앞에 인삼차 잔을 놓고 돌아갔다. 그때 찻잔을 든 이상득이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방이 좀 허전하지? 병풍이라도 갖다놓는 게 낫지 않을까?”
“아, 예.”
이명박이 따라서 방 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그렇구먼요.”
머리를 끄덕인 이상득이 차를 한 모금 삼켰다.
“그려, 자네 맘을 이해하네.”
그러자 이명박이 상체를 세웠고 셋은 숨을 죽였다. 이상득이 말을 잇는다.
“대통령으로 나를 만나려는 마음을 말여.”
“형님.”
“오면서 생각했다. 자, 동생인 대통령이 집무실로 불렀는데 내가 내놓을 것이 뭔가 하고 말이다.”
“형님.”
이명박의 얼굴이 상기되었고 목소리가 떨렸다. 이상득은 이명박의 멘토였다. 형님처럼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명박은 이상득이란 형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때 이상득이 말했다.
“화무십일홍이다. 나도 언젠가는 그만둘 몸. 이 방을 나가면 정계 은퇴 선언을 하겠다. 동생한테 부담을 덜어줘야지.”
“형님.”
마침내 이명박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다시 이상득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지. 박영준이도 사퇴하게 하고 내 지역구에서 출마하게 하면 되겠다.”
그러더니 지그시 웃었다.
“정두언이하고 두 놈이 국회에서 박 터지게 싸우게 하면 볼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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