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9

..

“인간의 환경파괴 이대론 안 됩니다”

국제만화예술축제 참가한 ‘천재 일러스트레이터’ 오노 준이치

  • 이지은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2-01-02 10:5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간의 환경파괴 이대론 안 됩니다”
    “충격이었어요. 자연에 대해 인간이 얼마나 오만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됐죠. 모든 것은 돌고 도는데…. 원전사고가 작은 콩에서부터 새와 동물, 그리고 인간에게까지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면 정말 걱정됩니다.”

    동일본 대지진과 그로 인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일본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천재 일러스트레이터로 꼽히는 오노 준이치(小野純一·22) 씨가 2012년 4월 1일까지 경기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제2회 국제만화예술축제에 출품한 신작 ‘생명의 씨앗’ 시리즈도 생명의 연속성을 강조하면서 환경 파괴의 심각성과 인간의 오만을 꼬집는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콩과 새입니다. 새가 콩을 입에 물고 하늘을 날아 도시로 가죠. 그곳에서 씨앗을 심는 겁니다. 새는 다시 콩을 입에 물고 또 다른 도시로 날아갑니다. 그러면 마천루가 빽빽이 들어선 뉴욕도, 죽음의 땅으로 바뀐 후쿠시마도 푸른 녹지가 가득한 생명의 공간이 되지 않겠어요? 콩은 곧 ‘생명의 씨앗’인 셈이죠.”

    그는 제2회 국제만화예술축제의 초청을 받아 2011년 12월 19일 방한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날이다. 그는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어쩌나 걱정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한국인들은 너무 태평해 더 놀랐다”며 웃었다.

    그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2005년 관광으로 왔고, 두 번째는 2006년 서울 인사동 관훈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 때문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 열여섯 살. 10대 외국인 작가가 한국에서 단체전도 아닌, 개인전을 연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보면 이는 그다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여섯 살 때 미국 뉴욕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본 후 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크레용이나 펜 하나를 들고 닥치는 대로, 내키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이후 여덟 살 때 일본에서 첫 개인전을, 열 살 때 뉴욕에서 첫 전시를 열었고 열두 살 때 백악관에 초청돼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을 만났다. 이때부터 일본 언론에서는 그를 ‘천재 일러스트레이터’로 추켜세웠지만, 그는 “천재라고 부르지 마라. 그냥 그림 그리는 준이치일 뿐”이라며 수줍어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의 그림에선 ‘일본색’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뉴욕 마천루, 로마 콜로세움, 프랑스 개선문 등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그는 “외국 여행을 가면 그리고 싶은 게 많아진다”고 말했다.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에는 ‘인사동 오후 2시’ ‘용’ 등 한국에 대한 느낌을 담은 작품을 여러 점 선보였다. 특히 한 번에 쓱쓱 그려 완성했다는 ‘인사동 오후 2시’는 인사동 거리에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벤치에 앉아 쉬는 중년 남성, 유모차를 끌고 가는 어머니 등 다채로운 인간 군상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건강하고 활기찬 사람들의 모습에 무척 감명 받았어요. 일본인과 비교하면 한국인은 자존심도 세고 추진력도 강한 것 같아요. 첫 개인전 때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놀랐고, 적극적으로 지지해줘 더 놀랐어요.”

    그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세계적 의류 회사인 르꼬끄 스포르티브의 디자인 파트너로도 활동했다. 그의 작품이 그려진 티셔츠가 한국에서도 판매됐다. 그는 “한국에서 인기가 굉장히 많았다. 명동에서 ‘짝퉁’이 나왔을 정도”라며 환하게 웃었다.

    “한국인의 열정적인 모습이 저랑 참 잘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오사카 출신인데, 오사카 사람들이 한국인과 많이 비슷하거든요. 김치와 갈비 등 음식도 맛있고요. 앞으로 한국에서 더 많이 활동할 계획입니다. 전시를 여는 것은 물론, 기회가 되면 한국 기업과 컬래버레이션도 하고 싶습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