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개막을 맞았던 8개 구단 감독 중 그대로 지휘봉을 잡고 있는 사령탑은 삼성 류중일, 롯데 양승호, 한화 한대화, 넥센 김시진 감독으로 4명에 불과하다. 격변의 한 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사령탑 교체가 연쇄적으로 일어났고, 이에 따라 파리 목숨으로 불리는 코치의 이동도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어떤 코치는 기약 없이 프로야구판을 떠났고, 어떤 코치는 친구 따라 강남 가듯 감독 따라 팀을 옮기기도 했다.
현역 시절, 스타플레이어로 수억 원의 연봉을 받던 한 베테랑 선수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주변에서 욕을 할지라도, 속된 말로 벽에 X칠 할 때까지 선수를 하는 게 좋다. 나중에 코치를 하더라도 가능한 한 늦게 시작하겠다.”
늦게 하면 할수록 좋은 직업
선수는 나이가 들고 실력이 모자라 2군으로 밀려나는 일이 있더라도 구단 눈치를 보거나 누구에게 줄을 댈 이유가 없다. 연봉도 물론 많다. 하지만 코치는 박봉에다 여러 외부 환경에 따라 휘둘릴 수밖에 없다. “코치 생활을 가능한 한 늦게 시작하겠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능력 있는 선수대부분에게 코치는 ‘늦게 하면 할수록 좋은 직업’이다.
8월 SK가 김성근 감독을 경질하자 그를 따르며 속칭 ‘김성근 사단’으로 불리던 이홍범, 박상열, 이광길 코치와 몇몇 일본인 코치가 줄줄이 사퇴서를 제출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10월에는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이 KIA 사령탑을 맡으면서 전임 조범현 감독과 ‘조범현의 사람들’로 불리던 황병일, 최태원, 장재중 코치가 동시에 옷을 벗었다. 이 중 최태원 코치는 LG로 자리를 옮겼다.
6월 두산 감독직에서 자진사퇴한 뒤 ‘제9구단’ NC 다이노스 사령탑에 오른 김경문 감독은 일찌감치 물밑작업을 해놓고 시즌이 끝나자마자 박승호, 김광림, 강인권 등 과거 두산에서 인연을 맺었던 코치를 불러들였다. 김진욱 코치가 두산 사령탑으로 승격하면서 ‘차세대 감독감’으로 평가받던 김태형 코치는 두산을 떠나 SK에 새 둥지를 틀었고, 포스트시즌 동안 이적 소문이 파다했던 한문연 SK 코치는 한국시리즈를 마친 뒤 결국 NC로 옮겼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올해는 유독 코치 이동이 많았다. 일련의 사령탑 이동에 따른 연쇄 반응이다. 타격, 투수, 수비, 배터리 등 전문화한 코치들의 움직임이 감독 교체와 맞물리는 것은 감독이 코치의 생사여탈권을 쥔 한국 프로야구 현실과 맞닿아 있다. 감독은 자기 입맛에 맞고 뜻이 통하는 코치를 옆에 두고 싶어 하고, 그것이 선수 지도 능력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1군 엔트리에 포함되는 코치 수는 구단별 8명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구단의 재정 능력, 감독의 재량권 여부에 따라 1·2군을 합한 각 구단 코치 수는 제법 차이가 난다. 올 시즌 개막 시점을 기준으로 8개 구단 중 가장 많은 코치를 고용한 구단은 SK였다. SK는 이만수 수석코치(현 감독대행)를 비롯해 총 20명의 코치를 뒀다. 13명 코치를 둔 넥센과는 7명이나 차이가 났다.
똑같은 코치라도 연차에 따라, 지명도에 따라 연봉도 천차만별이다. 대개 초보코치의 연봉은 4500만 원 안팎이다. 선수 때 수억 원의 연봉을 받다 은퇴하고 코치가 돼도 이 수준이다. 계약기간은 대개 1년. 그러나 예외도 있다. 경력 10년 이상 된 코치 중에는 1억 원 넘게 받는 ‘고액연봉 코치’도 제법 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롯데를 떠나 LG로 팀을 옮긴 김무관 코치가 대표적이다. 김 코치는 6년간 롯데 유니폼을 입고 이대호라는 ‘대한민국 4번 타자’를 탄생시켰으며, 2009년부터 롯데가 3년 연속 팀 타율 1위를 기록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감독들, 감독급 코치 키우기 꺼려
또한 타격 이론에 탁월할 뿐 아니라 개개인의 장단점을 파악해 성장시키는 ‘맞춤형 지도’로 선수들의 잠재력을 꽃피웠다. 롯데를 떠난 것은 양승호 감독과 사이가 멀어져서가 아니다. 양 감독도 여전히 그를 필요로 하고, 구단도 만류했지만 그는 LG행을 선택했다. LG에서 일반 코치와 달리 다년 계약에 연봉 대폭 인상 등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계약금도 따로 챙겨줬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컴퓨터 같은 분”이라며 김 코치를 흠모하고 따랐던 이대호가 “프로는 좋은 대우를 해주는 곳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며 “아쉽지만 손뼉 치며 보내 드리는 게 내가 할 도리”라고 말한 것도 그래서다.
코치는 대부분 감독 운명에 따라 움직이는 ‘종속변수’지만, 예전 A코치는 감독의 훈련 스타일에 반발해 스스로 야인의 길을 선택하기도 했다. 타격 이론에 정통해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키운 A코치는 선수의 절대 훈련량을 강조하는 감독의 지도 방침에 반론을 제기한 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며 사표를 내 던졌다.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불렸던 김성근 전 SK 감독은 올해 20명 코치 중 5명을 일본인으로 채웠다. 2007년 SK 지휘봉을 잡기 전, 일본 지바롯데에서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기도 했던 김 전 감독은 다양한 인맥을 동원해 일본인 코치들을 주요 보직에 앉혔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에서 현역 생활을 마감한 선동열 KIA 감독도 내년 시즌 일본인 코치들을 고용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선 감독은 삼성 시절에도 몇몇 일본인 코치를 기용했다. 조범현 전 KIA 감독도 일본인 코치를 곁에 뒀다.
이와 달리 김경문 NC 감독은 두산 시절부터 토종 멤버로만 코칭스태프를 구성했고, 김시진 넥센 감독과 양승호 롯데 감독도 단 한명의 일본인 코치 없이 올 한 시즌을 보냈다. 일본인 코치 고용 문제는 보는 이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평가가 엇갈린다. 일본인 코치가 새로운 지도방법 전수 등 객관적인 장점을 지닌다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감독 성향에 따른 일본인 코치 기용은 한국인 코치의 밥그릇을 빼앗을 뿐이란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국내 프로야구계에는 ‘코치 중에 감독감이 별로 없다’는 말이 나돈다. 이번 시즌이 끝난 뒤 김기태 LG 감독과 김진욱 두산 감독이 코치에서 승격해 새롭게 지휘봉을 잡았지만, 8개 구단 전체적으로 봤을 때 차후 감독 지휘봉을 잡을 만한 인물이 별로 없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이는 현직 감독들이 자신의 존재를 위협할 ‘새끼 호랑이’를 키우는 것을 꺼려하는 풍토에서 기인한다.
한편에선 일본인 코치 고용도 이와 같은 시선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한때 모 구단 지휘봉을 잡았던 한 감독은 새 구단에서 자기 입지가 견고해지자 프랜차이즈 출신 코치를 일제히 정리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감독들이 언젠가 자기 입지를 위협할 ‘감독급 코치’를 키우기 꺼려하는 것은 후계자의 등장을 못마땅해하는 권력의 속성과 비슷하다.
현역 시절, 스타플레이어로 수억 원의 연봉을 받던 한 베테랑 선수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주변에서 욕을 할지라도, 속된 말로 벽에 X칠 할 때까지 선수를 하는 게 좋다. 나중에 코치를 하더라도 가능한 한 늦게 시작하겠다.”
늦게 하면 할수록 좋은 직업
선수는 나이가 들고 실력이 모자라 2군으로 밀려나는 일이 있더라도 구단 눈치를 보거나 누구에게 줄을 댈 이유가 없다. 연봉도 물론 많다. 하지만 코치는 박봉에다 여러 외부 환경에 따라 휘둘릴 수밖에 없다. “코치 생활을 가능한 한 늦게 시작하겠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능력 있는 선수대부분에게 코치는 ‘늦게 하면 할수록 좋은 직업’이다.
8월 SK가 김성근 감독을 경질하자 그를 따르며 속칭 ‘김성근 사단’으로 불리던 이홍범, 박상열, 이광길 코치와 몇몇 일본인 코치가 줄줄이 사퇴서를 제출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10월에는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이 KIA 사령탑을 맡으면서 전임 조범현 감독과 ‘조범현의 사람들’로 불리던 황병일, 최태원, 장재중 코치가 동시에 옷을 벗었다. 이 중 최태원 코치는 LG로 자리를 옮겼다.
6월 두산 감독직에서 자진사퇴한 뒤 ‘제9구단’ NC 다이노스 사령탑에 오른 김경문 감독은 일찌감치 물밑작업을 해놓고 시즌이 끝나자마자 박승호, 김광림, 강인권 등 과거 두산에서 인연을 맺었던 코치를 불러들였다. 김진욱 코치가 두산 사령탑으로 승격하면서 ‘차세대 감독감’으로 평가받던 김태형 코치는 두산을 떠나 SK에 새 둥지를 틀었고, 포스트시즌 동안 이적 소문이 파다했던 한문연 SK 코치는 한국시리즈를 마친 뒤 결국 NC로 옮겼다.
SK 수석코치를 지낸 이만수 SK 감독.
1군 엔트리에 포함되는 코치 수는 구단별 8명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구단의 재정 능력, 감독의 재량권 여부에 따라 1·2군을 합한 각 구단 코치 수는 제법 차이가 난다. 올 시즌 개막 시점을 기준으로 8개 구단 중 가장 많은 코치를 고용한 구단은 SK였다. SK는 이만수 수석코치(현 감독대행)를 비롯해 총 20명의 코치를 뒀다. 13명 코치를 둔 넥센과는 7명이나 차이가 났다.
똑같은 코치라도 연차에 따라, 지명도에 따라 연봉도 천차만별이다. 대개 초보코치의 연봉은 4500만 원 안팎이다. 선수 때 수억 원의 연봉을 받다 은퇴하고 코치가 돼도 이 수준이다. 계약기간은 대개 1년. 그러나 예외도 있다. 경력 10년 이상 된 코치 중에는 1억 원 넘게 받는 ‘고액연봉 코치’도 제법 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롯데를 떠나 LG로 팀을 옮긴 김무관 코치가 대표적이다. 김 코치는 6년간 롯데 유니폼을 입고 이대호라는 ‘대한민국 4번 타자’를 탄생시켰으며, 2009년부터 롯데가 3년 연속 팀 타율 1위를 기록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감독들, 감독급 코치 키우기 꺼려
또한 타격 이론에 탁월할 뿐 아니라 개개인의 장단점을 파악해 성장시키는 ‘맞춤형 지도’로 선수들의 잠재력을 꽃피웠다. 롯데를 떠난 것은 양승호 감독과 사이가 멀어져서가 아니다. 양 감독도 여전히 그를 필요로 하고, 구단도 만류했지만 그는 LG행을 선택했다. LG에서 일반 코치와 달리 다년 계약에 연봉 대폭 인상 등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계약금도 따로 챙겨줬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컴퓨터 같은 분”이라며 김 코치를 흠모하고 따랐던 이대호가 “프로는 좋은 대우를 해주는 곳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며 “아쉽지만 손뼉 치며 보내 드리는 게 내가 할 도리”라고 말한 것도 그래서다.
코치는 대부분 감독 운명에 따라 움직이는 ‘종속변수’지만, 예전 A코치는 감독의 훈련 스타일에 반발해 스스로 야인의 길을 선택하기도 했다. 타격 이론에 정통해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키운 A코치는 선수의 절대 훈련량을 강조하는 감독의 지도 방침에 반론을 제기한 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며 사표를 내 던졌다.
김무관 코치(왼쪽)는 올 시즌을 끝으로 롯데에서 LG로 자리를 옮겼다.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한 김진욱(가운데) 두산 감독과 김기태 LG 감독.
이와 달리 김경문 NC 감독은 두산 시절부터 토종 멤버로만 코칭스태프를 구성했고, 김시진 넥센 감독과 양승호 롯데 감독도 단 한명의 일본인 코치 없이 올 한 시즌을 보냈다. 일본인 코치 고용 문제는 보는 이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평가가 엇갈린다. 일본인 코치가 새로운 지도방법 전수 등 객관적인 장점을 지닌다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감독 성향에 따른 일본인 코치 기용은 한국인 코치의 밥그릇을 빼앗을 뿐이란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국내 프로야구계에는 ‘코치 중에 감독감이 별로 없다’는 말이 나돈다. 이번 시즌이 끝난 뒤 김기태 LG 감독과 김진욱 두산 감독이 코치에서 승격해 새롭게 지휘봉을 잡았지만, 8개 구단 전체적으로 봤을 때 차후 감독 지휘봉을 잡을 만한 인물이 별로 없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이는 현직 감독들이 자신의 존재를 위협할 ‘새끼 호랑이’를 키우는 것을 꺼려하는 풍토에서 기인한다.
한편에선 일본인 코치 고용도 이와 같은 시선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한때 모 구단 지휘봉을 잡았던 한 감독은 새 구단에서 자기 입지가 견고해지자 프랜차이즈 출신 코치를 일제히 정리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감독들이 언젠가 자기 입지를 위협할 ‘감독급 코치’를 키우기 꺼려하는 것은 후계자의 등장을 못마땅해하는 권력의 속성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