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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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피 두 명이 만드는 새로운 전통

가무악 프로젝트 ‘소리개’ 첫 번째 공연

  • 김유림 rim@donga.com

    입력2011-11-21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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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피 두 명이 만드는 새로운 전통
    솔개는 날 수 있는 동물 가운데 가장 오래 산다. 유치환이 시 ‘소리개’에서 묘사했듯 “동물성의 땅의 집념을 떠나서, 모든 애념과 인연의 번쇄함을 떠나서” 날아다니던 솔개는 40세에 생애 첫 위기를 겪는다. 솔개의 날카로운 발톱은 무뎌지고, 부리는 길게 자라 구부러진다. 깃털이 무거워져 날아오르기조차 힘들다.

    이때 솔개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든지, 아니면 고통스러운 ‘갱생’ 과정을 거치든지…. 다시 살아나기로 결심한 솔개는 깊은 산에 둥지를 튼다. 절벽 바위를 쪼아 부리를 깨뜨리고, 날카로워진 부리로 발톱 하나하나를 뽑는다. 새로운 발톱이 돋아난 후에는 날개의 깃털을 뽑는다. 6개월 남짓, 이렇게 고통스러운 갱생의 길을 거치면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해 30년쯤 더 산다.

    한국 전통음악이 솔개처럼 절체절명의 기로에 섰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오랜 역사에도 정체성을 찾을 수 없고, 관객의 외면을 받은 지 오래됐다는 것. 이 시점에 사물놀이를 하는 이영광 대불대 전통연희과 교수와 신영희 선생을 사사한 서명희 명창이 가무악 프로젝트 ‘소리개’(솔개의 방언)를 만들었다. 도태하지 않으려고 제 뼈를 깎는 솔개처럼, 한국 전통음악의 부활을 위해 칼을 갈겠다는 각오다.

    ‘소리개’의 첫 공연은 한국 전통음악의 화합을 주제로 한다. 공연 제목인 ‘아곡(我哭)은 여곡(汝哭)헐제, 여곡(汝曲)은 아곡(我曲)허니’는 판소리 춘향가에서 월매의 대목을 땄다. 월매는 옥에 갇히는 춘향에게 “(내가 죽으면) 내 곡을 네가 해야 하는데 네 곡을 내가 하니 (훗날) 내 곡은 누가 해주나”라고 말하며 운다. ‘울 곡(哭)’자를 ‘곡 곡(曲)’자로 바꾼 변형이 재미있다. 연출을 맡은 최범순 극단 오리사냥 대표는 “이번 공연은 전통 타악과 한국 소리의 절개(節槪)가 만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피 두 명이 만드는 새로운 전통
    공연 내내 타악과 판소리, 장구와 가야금이 어우러진다. 가장 기대되는 퍼포먼스는 타악곡 ‘플레이 더 크로스(부제 : 넘논다)’. 퍼포먼스 ‘난타’의 악기로 유명한 탱크드럼과 금속 타악기 탐탐에 장구, 북, 꽹과리 같은 전통 악기가 더해졌다. 서양식 2박에 한국 특유의 3박을 얹어 묘한 긴장감을 준다. 사물놀이 몰개 대표로 한국 사물놀이의 미래를 짊어진 이영광 교수의 넓은 시야와 탁월한 감각, 재기 발랄한 시도가 돋보인다.



    이영광 교수가 설장구를 치고 서명희 명창이 가야금을 타는 ‘Eclipse (월식)’ 역시 기대를 모은다. 경쾌하고 긴박한 설장구 선율 위에 청명한 가야금이 수놓아진다. 그 오묘한 조합은 마치 지구와 태양, 달이 한 선상에 있듯 포개지다가 서로를 가리고, 또다시 빛을 내는 듯한 느낌이다. 한국 전통음악의 ‘젊은 피’ 두 명이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전통’을 기대한다. 11월 24~25일, 서울 남산국악당, 문의 02-2278-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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