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총리가 대통령이 되고 대통령이 총리가 되는 전대미문의 ‘권력 맞교대’가 이뤄질 전망이다. 9월 24일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전당대회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에게 차기 대선후보 자리를 제의했다. 푸틴 총리는 이를 흔쾌히 수락하면서 대선에서 승리하면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총리로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권력 맞교대는 이미 5년 전에 맺었던 밀약에 따른 것이다.
2000년부터 대통령을 지냈던 푸틴은 2007년부터 헌법의 ‘대통령 3연임 불가’ 규정을 준수하면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당시 푸틴의 강력한 지지그룹이던 ‘실로비키(Siloviki)’는 푸틴이 현행 헌법에 따라 잠시 총리로 ‘외도’한 뒤 다시 합법적으로 대통령직에 복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러시아어로 ‘제복을 입은 남자’를 뜻하는 실로비키는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후신인 연방보안국(FSB)을 비롯한 정보기관과 군 출신 정치인을 말한다. 이들은 KGB 출신이자 FSB 국장을 지낸 푸틴이 대통령이 된 이후 러시아의 주요 권력 기관을 장악했다.
총리 ‘외도’ 하며 연임 개헌안 통과
실로비키의 계획에 찬성한 푸틴은 자신의 후임 대통령으로 누구를 낙점할까 고심하다가 당시 42세의 제1부총리였던 메드베데프를 선택했다. 그를 후계자로 정한 것은 실로비키보다 젊은 테크노크라트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메드베데프는 푸틴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자,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법학과 12년 후배이기도 하다. 푸틴이 199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시 대외관계위원장으로 재임할 때 전문위원으로 일하면서 인연을 맺기 시작한 메드베데프는 이후 푸틴을 측근에서 충직하게 보좌해왔다. 내각 행정실 부실장, 대통령 선거대책본부장, 크렘린궁 행정부실장과 실장, 제1부총리 등을 역임한 그는 권력욕이 없을 뿐 아니라 실로비키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푸틴은 국가를 위해 자신이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해야 한다며 대통령직을 잠시 맡아줄 것을 메드베데프에게 요청했고, 메드베데프는 이를 기꺼이 수락했다. 메드베데프는 대통령이 된 후 푸틴에 대한 충성을 과시하려고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리고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도록 하는 개헌안을 의회에 제출해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번에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푸틴을 대선후보로 추천하면서 “푸틴과 나는 장기 전략에 따라 권력 맞교대에 합의한 바 있다”고 당시의 밀약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또 9월 30일 러시아 방송사들과의 회견에서도 “나와 푸틴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적 야망이 아니라 국가의 장래”라면서 “국가 발전 전략에서 견해가 같은 우리는 누가 어떻게 할지를 합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3월 14일 대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푸틴이 차기 대통령이 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푸틴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지지도는 60~70%대에 달하고, 대권에 도전할 마땅한 야당 후보도 없다. 올해 59세인 푸틴은 그동안 총리로 재임하면서 웃통을 벗은 근육질 몸매를 과시하는가 하면, 시베리아 호랑이를 사냥하고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등 남성미를 자랑했다. 러시아 여성이 ‘마초맨’(강한 남자)을 좋아한다는 점을 노린 고도의 전략이었다. 또한 그는 이미 노조와 청년·여성단체, 퇴역군인단체 등이 참여하는 정치사회단체 ‘전 러시아 국민전선’을 만들어 물밑에서 사실상 대선운동을 펼쳐왔다.
유라시아 경제연합 창설 야망
푸틴이 차기 대통령이 된 후 연임한다면 72세가 되는 2024년까지 대통령으로 일할 수 있다. 이 경우 제정러시아 시대를 제외하고는 옛 소련 공산당 일당 독재시절의 최고통치자였던 역대 서기장 중에서도 푸틴보다 오래 자리를 유지한 인물은 24년을 통치한 이오시프 스탈린(재임 1929~53년)밖에 없다. 그다음은 18년간 자리를 지킨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재임 1964~82년)다. 이 때문에 러시아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브레즈네프의 초상화에 푸틴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 떠돈다.
장기집권의 문을 연 푸틴이 앞으로 추진할 국가 발전 전략은 무엇일까. 푸틴은 항상 집무실에 표트르 대제의 커다란 초상화를 걸어 놓고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키워온 것으로 유명하다. 17세기 말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서 낙후한 변방에 불과하던 러시아를 열강 반열에 올려놓은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차르(황제)로 꼽히는 인물이다. 해군을 창설해 발트해와 흑해 등 대양으로의 출구를 확보했고, 청나라와는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해 시베리아와 극동으로 진출했다. 푸틴의 야심은 바로 ‘제2의 표트르 대제’가 되는 것이다.
푸틴은 그동안 옛 소련의 붕괴를 ‘20세기 최대의 재앙’이라고 언급하곤 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도 옛 소련의 영향력 회복을 국정의 최대 과제로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미 그는 2020년까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3만 달러로 끌어올려 러시아를 세계 5위 경제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한 바 있다. 향후 푸틴 행정부는 이를 위해 석유나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 산업과 원자력, 정보·통신, 우주, 의료 등을 5대 핵심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며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략 가운데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옛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와 유라시아 경제연합을 창설하겠다는 구상이다. 푸틴은 2013년까지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을 하나로 묶어 경제공동체를 구축하고 공통화폐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유라시아경제연합을 창설할 경우 러시아로서는 옛 소련의 영향력을 일정 부분 회복할 수 있다.
푸틴은 이와 함께 동시베리아와 극동지역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자원의 보고(寶庫)지만 20%만 개발했을 뿐 나머지는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상태인 이 지역을 제대로 개발할 경우, 앞으로 러시아 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디딤돌 구실을 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푸틴은 이를 위해 석유와 천연가스를 지렛대 삼아 중국, 일본, 한국과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복안을 그린다. 최근 국내에서 주요 이슈로 떠오른 남북한 관통 가스파이프라인 건설에 러시아 측이 적극 나서는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
푸틴은 내년 11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 지역에서 대대적인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한 이 지역의 군사력을 대폭 강화해 미국, 중국, 일본과 대등한 위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속셈도 감추지 않는다. 이미 러시아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과 2018년 월드컵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21세기의 차르’가 되려는 푸틴의 거침없는 행보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할지 주목된다.
2000년부터 대통령을 지냈던 푸틴은 2007년부터 헌법의 ‘대통령 3연임 불가’ 규정을 준수하면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당시 푸틴의 강력한 지지그룹이던 ‘실로비키(Siloviki)’는 푸틴이 현행 헌법에 따라 잠시 총리로 ‘외도’한 뒤 다시 합법적으로 대통령직에 복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러시아어로 ‘제복을 입은 남자’를 뜻하는 실로비키는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후신인 연방보안국(FSB)을 비롯한 정보기관과 군 출신 정치인을 말한다. 이들은 KGB 출신이자 FSB 국장을 지낸 푸틴이 대통령이 된 이후 러시아의 주요 권력 기관을 장악했다.
총리 ‘외도’ 하며 연임 개헌안 통과
실로비키의 계획에 찬성한 푸틴은 자신의 후임 대통령으로 누구를 낙점할까 고심하다가 당시 42세의 제1부총리였던 메드베데프를 선택했다. 그를 후계자로 정한 것은 실로비키보다 젊은 테크노크라트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메드베데프는 푸틴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자,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법학과 12년 후배이기도 하다. 푸틴이 199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시 대외관계위원장으로 재임할 때 전문위원으로 일하면서 인연을 맺기 시작한 메드베데프는 이후 푸틴을 측근에서 충직하게 보좌해왔다. 내각 행정실 부실장, 대통령 선거대책본부장, 크렘린궁 행정부실장과 실장, 제1부총리 등을 역임한 그는 권력욕이 없을 뿐 아니라 실로비키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푸틴은 국가를 위해 자신이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해야 한다며 대통령직을 잠시 맡아줄 것을 메드베데프에게 요청했고, 메드베데프는 이를 기꺼이 수락했다. 메드베데프는 대통령이 된 후 푸틴에 대한 충성을 과시하려고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리고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도록 하는 개헌안을 의회에 제출해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번에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푸틴을 대선후보로 추천하면서 “푸틴과 나는 장기 전략에 따라 권력 맞교대에 합의한 바 있다”고 당시의 밀약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또 9월 30일 러시아 방송사들과의 회견에서도 “나와 푸틴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적 야망이 아니라 국가의 장래”라면서 “국가 발전 전략에서 견해가 같은 우리는 누가 어떻게 할지를 합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3월 14일 대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푸틴이 차기 대통령이 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푸틴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지지도는 60~70%대에 달하고, 대권에 도전할 마땅한 야당 후보도 없다. 올해 59세인 푸틴은 그동안 총리로 재임하면서 웃통을 벗은 근육질 몸매를 과시하는가 하면, 시베리아 호랑이를 사냥하고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등 남성미를 자랑했다. 러시아 여성이 ‘마초맨’(강한 남자)을 좋아한다는 점을 노린 고도의 전략이었다. 또한 그는 이미 노조와 청년·여성단체, 퇴역군인단체 등이 참여하는 정치사회단체 ‘전 러시아 국민전선’을 만들어 물밑에서 사실상 대선운동을 펼쳐왔다.
유라시아 경제연합 창설 야망
푸틴이 차기 대통령이 된 후 연임한다면 72세가 되는 2024년까지 대통령으로 일할 수 있다. 이 경우 제정러시아 시대를 제외하고는 옛 소련 공산당 일당 독재시절의 최고통치자였던 역대 서기장 중에서도 푸틴보다 오래 자리를 유지한 인물은 24년을 통치한 이오시프 스탈린(재임 1929~53년)밖에 없다. 그다음은 18년간 자리를 지킨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재임 1964~82년)다. 이 때문에 러시아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브레즈네프의 초상화에 푸틴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 떠돈다.
장기집권의 문을 연 푸틴이 앞으로 추진할 국가 발전 전략은 무엇일까. 푸틴은 항상 집무실에 표트르 대제의 커다란 초상화를 걸어 놓고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키워온 것으로 유명하다. 17세기 말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서 낙후한 변방에 불과하던 러시아를 열강 반열에 올려놓은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차르(황제)로 꼽히는 인물이다. 해군을 창설해 발트해와 흑해 등 대양으로의 출구를 확보했고, 청나라와는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해 시베리아와 극동으로 진출했다. 푸틴의 야심은 바로 ‘제2의 표트르 대제’가 되는 것이다.
푸틴은 그동안 옛 소련의 붕괴를 ‘20세기 최대의 재앙’이라고 언급하곤 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도 옛 소련의 영향력 회복을 국정의 최대 과제로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미 그는 2020년까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3만 달러로 끌어올려 러시아를 세계 5위 경제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한 바 있다. 향후 푸틴 행정부는 이를 위해 석유나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 산업과 원자력, 정보·통신, 우주, 의료 등을 5대 핵심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며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략 가운데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옛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와 유라시아 경제연합을 창설하겠다는 구상이다. 푸틴은 2013년까지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을 하나로 묶어 경제공동체를 구축하고 공통화폐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유라시아경제연합을 창설할 경우 러시아로서는 옛 소련의 영향력을 일정 부분 회복할 수 있다.
푸틴은 이와 함께 동시베리아와 극동지역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자원의 보고(寶庫)지만 20%만 개발했을 뿐 나머지는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상태인 이 지역을 제대로 개발할 경우, 앞으로 러시아 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디딤돌 구실을 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푸틴은 이를 위해 석유와 천연가스를 지렛대 삼아 중국, 일본, 한국과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복안을 그린다. 최근 국내에서 주요 이슈로 떠오른 남북한 관통 가스파이프라인 건설에 러시아 측이 적극 나서는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
푸틴은 내년 11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 지역에서 대대적인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한 이 지역의 군사력을 대폭 강화해 미국, 중국, 일본과 대등한 위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속셈도 감추지 않는다. 이미 러시아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과 2018년 월드컵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21세기의 차르’가 되려는 푸틴의 거침없는 행보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