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개월간 정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무상급식 논란이 일단 막을 내렸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막판에 시장직을 거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끝내 투표율 33.3%의 벽을 넘지 못한 채 패배했다.
오 시장은 2004년 총선에서 초선의원으로 현재의 정치자금법 개정을 주도한 뒤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승부수를 던져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투표율이 25.7%에 그쳐 개표 자체가 무산되면서 오 시장의 두 번째 정치적 승부수는 좌절됐다. 그렇다면 주민투표를 밀어붙인 오 시장은 정치적으로 무엇을 얻고 잃었을까.
최대 피해자인 동시에 최대 수혜자
아이러니하게도 오 시장은 이번 주민투표의 최대 피해자인 동시에 최대 수혜자가 될 수도 있다. 정치 영역에선 겉보기에 패배했더라도 실질적으론 승리고, 승리한 것처럼 보여도 속내는 패배한 역설이 항상 있었다.
단기적으로 보면 오 시장은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당장은 주민투표를 신임투표와 연계해 정책투표의 본질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이외에도 한나라당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당과 한마디 상의 없이 주민투표를 밀어붙여 결과적으로 당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신임투표와 연계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 부담까지 안겼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결과적으로 오 시장의 당내 입지는 당분간 좁아질 수밖에 없다. 대선 불출마 선언까지 했기 때문에 향후 의미 있는 정치 행보도 하기 어렵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이상 2017년 대선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다. 대중 정치인이 국민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면 그만큼 인지도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야당에 복지 주도권을 넘겨줬다는 책임론에도 휩싸였다. 물론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는 무상복지 논쟁의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향후 우리 사회는 글로벌 경제의 침체와 성장 없는 고용으로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복지 이슈는 내년 총선과 대선의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한국형 복지체제’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에서의 패배로 여당은 더는 복지 이슈를 주도하기 어려워졌다. 오히려 야권의 보편적 복지론에 끌려다닐 개연성이 크다. 문제는 이런 취약성을 돌파하려고 한나라당은 더더욱 좌클릭 행보를 펼칠 테고, 이것이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공격받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좌클릭을 하면 할수록 정통 보수의 반발이 거세질 것이고, 이로 인해 보수의 분열과 분화가 가시화할 수 있다. 오 시장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런 보수 분열의 중심에 서게 될 가능성이 있다.
무관심한 박근혜 전 대표는 막대한 손해
오 시장의 패배는 당장 수도권 소장파 의원들과의 반목 및 대립을 낳을 것이다. 이들은 공공연하게 ‘주민투표에서 이겨도 문제고, 져도 문제’라는 인식하에 주민투표와 거리를 뒀다.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서울지역 48석 중 40석(83.3%)을 석권했다. 그중 24명(60%)이 초선이었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서울지역에서 32명(66.7%)이 당선하면서 압승했다. 하지만 2008년 총선에 이들 중 22명이 재출마했지만, 3명(13.7%)만 당선했다. 이런 비슷한 상황이 내년 총선에서 벌어지면 낙선한 의원들은 오 시장에게 패배 책임을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 . 2004년 총선 국면에서 탄핵을 주도해 한나라당 참패를 초래했던 최병렬 대표가 선거 이후 수도권의 젊은 원외 지구당위원장들로부터 집중 성토됐던 것과 유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차차기 대선을 향해 나아가야 할 오 시장에게 이런 상황이 현실화하면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이런 비난과 정치적 타격에도 중·장기적으로 볼 때 오 시장은 일정 정도의 정치적 이득도 챙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번 패배로 자신이 보수임을 확실히 보여줬다. 이 때문에 그는 향후 보수 아이콘으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정책과학연구원과 서울신문이 7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과거에도 보수의 주장을 지지했고 지금도 지지한다’는 ‘보수 절대 지지층’이 21.4%였다. 우리 사회의 최근 이념적 지형은 ‘진보 30%, 중도 40%, 보수 30%’ 형태를 띤다.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 투표율이 25.7%라는 것은 오 시장이 핵심 보수층의 결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오 시장은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싸움도, 이데올로기의 대립도 아닌 대한민국의 복지 방향을 시민이 직접 결정하는 투표”라면서 “공짜복지는 우리 아이들과 후손에게 세금폭탄으로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이념적 대립으로 비치는 것을 피했지만 현실은 오 시장을 중심으로 진보와 보수가 충돌하는 정치 지형이 형성됐다.
따라서 향후 선거에서 진보와 보수 간 가치담론 논쟁이 벌어지면 오 시장은 좋든 싫든 그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에 전략적 미숙함을 보여줬다. 내년 총선 및 대선 정국에 엄청난 타격과 후폭풍을 불러올 것이 뻔한 서울시 주민투표에 지나치게 방관자적인 모습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주장하는 ‘재정 건전성 기반 맞춤형 복지’는 엄밀하게 따지면 오 시장이 주장한 ‘선별적 복지’와 맥을 같이한다. 선별적 복지의 일환인 단계적 무상급식이 서울시민으로부터 외면받았는데, 어떻게 박 전 대표가 내년 대선에서 야당의 보편적 복지에 맞설 수 있겠는가. 최근 박 전 대표는 “자립 및 자활이 우리가 해야 할 복지”라고 강조했다.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복지 논쟁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식의 소극적이고 상황 변동적인 접근으로는 국민의 관심과 감동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복지 포퓰리즘’에 저항한 일
이번 ‘주민투표 전투’로 오 시장은 과거의 유약한 이미지에서 결단력 있는 지도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오 시장은 자신이 시정(市政)을 펴는 데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서울시의회가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현실에서 야당과 적당히 타협하는 대신, 주민투표를 통해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향후 한국 정치를 이끌어갈 지도자로서의 큰 자산을 만들었다. 흥미로운 비유를 한다면 ‘보수의 노무현’ 이미지를 만들었다 하겠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칙 있는 승리’가 가장 좋은 것이고 ‘원칙 있는 패배’가 그다음이라 했다. 가장 나쁜 것이 ‘원칙 없는 승리’라 했다. 이런 믿음 속에서 망국적 지역주의를 타파하려고 패배가 뻔히 보이는 부산에 지속적으로 출마해 장렬하게 패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히 버렸던 것이 궁극적으로 대통령이 되는 밀알이 됐다.
오 시장도 마찬가지다. 시장직을 과감히 버리면서 ‘복지 포퓰리즘’에 저항한 것이 지금 당장은 인정받지 못했지만, 상황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세계 각처에서 과잉 복지로 위기를 겪는 나라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오 시장에 대한 향수도 짙어지고 지지율도 함께 상승할 것이다. 물론 이런 중·장기적인 정치 이득은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예리한 역사의식과 철학, 강한 도덕성, 사회적 약자 및 서민에 대한 배려가 함께 살아 숨 쉬어야 그 빛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것이 오 시장이 짊어지고 가야 할 업보다.
오 시장은 2004년 총선에서 초선의원으로 현재의 정치자금법 개정을 주도한 뒤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승부수를 던져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투표율이 25.7%에 그쳐 개표 자체가 무산되면서 오 시장의 두 번째 정치적 승부수는 좌절됐다. 그렇다면 주민투표를 밀어붙인 오 시장은 정치적으로 무엇을 얻고 잃었을까.
최대 피해자인 동시에 최대 수혜자
아이러니하게도 오 시장은 이번 주민투표의 최대 피해자인 동시에 최대 수혜자가 될 수도 있다. 정치 영역에선 겉보기에 패배했더라도 실질적으론 승리고, 승리한 것처럼 보여도 속내는 패배한 역설이 항상 있었다.
단기적으로 보면 오 시장은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당장은 주민투표를 신임투표와 연계해 정책투표의 본질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이외에도 한나라당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당과 한마디 상의 없이 주민투표를 밀어붙여 결과적으로 당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신임투표와 연계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 부담까지 안겼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결과적으로 오 시장의 당내 입지는 당분간 좁아질 수밖에 없다. 대선 불출마 선언까지 했기 때문에 향후 의미 있는 정치 행보도 하기 어렵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이상 2017년 대선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다. 대중 정치인이 국민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면 그만큼 인지도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야당에 복지 주도권을 넘겨줬다는 책임론에도 휩싸였다. 물론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는 무상복지 논쟁의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향후 우리 사회는 글로벌 경제의 침체와 성장 없는 고용으로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복지 이슈는 내년 총선과 대선의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한국형 복지체제’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에서의 패배로 여당은 더는 복지 이슈를 주도하기 어려워졌다. 오히려 야권의 보편적 복지론에 끌려다닐 개연성이 크다. 문제는 이런 취약성을 돌파하려고 한나라당은 더더욱 좌클릭 행보를 펼칠 테고, 이것이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공격받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좌클릭을 하면 할수록 정통 보수의 반발이 거세질 것이고, 이로 인해 보수의 분열과 분화가 가시화할 수 있다. 오 시장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런 보수 분열의 중심에 서게 될 가능성이 있다.
무관심한 박근혜 전 대표는 막대한 손해
오 시장의 패배는 당장 수도권 소장파 의원들과의 반목 및 대립을 낳을 것이다. 이들은 공공연하게 ‘주민투표에서 이겨도 문제고, 져도 문제’라는 인식하에 주민투표와 거리를 뒀다.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서울지역 48석 중 40석(83.3%)을 석권했다. 그중 24명(60%)이 초선이었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서울지역에서 32명(66.7%)이 당선하면서 압승했다. 하지만 2008년 총선에 이들 중 22명이 재출마했지만, 3명(13.7%)만 당선했다. 이런 비슷한 상황이 내년 총선에서 벌어지면 낙선한 의원들은 오 시장에게 패배 책임을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 . 2004년 총선 국면에서 탄핵을 주도해 한나라당 참패를 초래했던 최병렬 대표가 선거 이후 수도권의 젊은 원외 지구당위원장들로부터 집중 성토됐던 것과 유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차차기 대선을 향해 나아가야 할 오 시장에게 이런 상황이 현실화하면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이런 비난과 정치적 타격에도 중·장기적으로 볼 때 오 시장은 일정 정도의 정치적 이득도 챙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번 패배로 자신이 보수임을 확실히 보여줬다. 이 때문에 그는 향후 보수 아이콘으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정책과학연구원과 서울신문이 7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과거에도 보수의 주장을 지지했고 지금도 지지한다’는 ‘보수 절대 지지층’이 21.4%였다. 우리 사회의 최근 이념적 지형은 ‘진보 30%, 중도 40%, 보수 30%’ 형태를 띤다.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 투표율이 25.7%라는 것은 오 시장이 핵심 보수층의 결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오 시장은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싸움도, 이데올로기의 대립도 아닌 대한민국의 복지 방향을 시민이 직접 결정하는 투표”라면서 “공짜복지는 우리 아이들과 후손에게 세금폭탄으로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이념적 대립으로 비치는 것을 피했지만 현실은 오 시장을 중심으로 진보와 보수가 충돌하는 정치 지형이 형성됐다.
따라서 향후 선거에서 진보와 보수 간 가치담론 논쟁이 벌어지면 오 시장은 좋든 싫든 그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에 전략적 미숙함을 보여줬다. 내년 총선 및 대선 정국에 엄청난 타격과 후폭풍을 불러올 것이 뻔한 서울시 주민투표에 지나치게 방관자적인 모습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주장하는 ‘재정 건전성 기반 맞춤형 복지’는 엄밀하게 따지면 오 시장이 주장한 ‘선별적 복지’와 맥을 같이한다. 선별적 복지의 일환인 단계적 무상급식이 서울시민으로부터 외면받았는데, 어떻게 박 전 대표가 내년 대선에서 야당의 보편적 복지에 맞설 수 있겠는가. 최근 박 전 대표는 “자립 및 자활이 우리가 해야 할 복지”라고 강조했다.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복지 논쟁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식의 소극적이고 상황 변동적인 접근으로는 국민의 관심과 감동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8월 21일 주민투표와 관련해 시장직을 걸겠다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동안 감정이 북받친 오 시장은 몇 번이고 눈시울을 닦았다(오른쪽).
이번 ‘주민투표 전투’로 오 시장은 과거의 유약한 이미지에서 결단력 있는 지도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오 시장은 자신이 시정(市政)을 펴는 데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서울시의회가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현실에서 야당과 적당히 타협하는 대신, 주민투표를 통해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향후 한국 정치를 이끌어갈 지도자로서의 큰 자산을 만들었다. 흥미로운 비유를 한다면 ‘보수의 노무현’ 이미지를 만들었다 하겠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칙 있는 승리’가 가장 좋은 것이고 ‘원칙 있는 패배’가 그다음이라 했다. 가장 나쁜 것이 ‘원칙 없는 승리’라 했다. 이런 믿음 속에서 망국적 지역주의를 타파하려고 패배가 뻔히 보이는 부산에 지속적으로 출마해 장렬하게 패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히 버렸던 것이 궁극적으로 대통령이 되는 밀알이 됐다.
오 시장도 마찬가지다. 시장직을 과감히 버리면서 ‘복지 포퓰리즘’에 저항한 것이 지금 당장은 인정받지 못했지만, 상황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세계 각처에서 과잉 복지로 위기를 겪는 나라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오 시장에 대한 향수도 짙어지고 지지율도 함께 상승할 것이다. 물론 이런 중·장기적인 정치 이득은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예리한 역사의식과 철학, 강한 도덕성, 사회적 약자 및 서민에 대한 배려가 함께 살아 숨 쉬어야 그 빛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것이 오 시장이 짊어지고 가야 할 업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