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난데없이 이스라엘 붐이 일었다. 벤처 강국인 이스라엘을 분석한 번역서가 출발점이었다. 청와대는 이스라엘 경제 성장의 비밀을 분석한 ‘창업국가’를 정부기관에 600권이나 뿌리며 일독을 권했다. 언론은 앞다퉈 이스라엘 벤처를 조명하고 나섰다. 책과 언론에서 그린 이스라엘은 천하무적이었다. 2000년 디아스포라를 거쳐 다시 뭉친 그들은 열정적이고 명민한 동시에 창의적이었다. 이스라엘에서 날아든 메시지를 우리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비슷한 배경과 환경을 가진 이스라엘이 우리를 한참 앞질렀다. 이유를 따져보고 배우자.”
이 때문에 이스라엘 출장은 호감을 전제로 시작했다. 그곳에서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꼬박 일주일을 머물렀다. 30년 전 돌아온 미국계 유대인, 시온주의 집안의 러시아계 유대인, 조부가 히브리대 초대 총장을 지낸 유대 청년, 10년간 그곳에서 산 한국인….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입체적으로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가까이에서 본 이스라엘은 기자의 생각과 대체로 비슷했고, 어느 정도는 차이가 났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 보였다. 오늘날 그들의 힘은 지난 2000년간 겹겹이 휘감아 돈 시간에 빚지고 있다는 것.
이스라엘은 건국 50년 만에 세계 브레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인구 700만 명의 자그마한 신생 국가에 세계 벤처펀드의 30% 이상이 몰렸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났을까. 취재 중 만난 사람들은 ‘절박함’을 첫째 이유로 꼽았다.
“우리는 싸우면서 논밭을 일구고, 국가 시스템도 정비해야 했다.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모든 일을 해내야만 했다. 이런 절박함 위에서 용기, 창의력, 민첩함이 꽃피웠다. 그리고 이는 벤처 강국의 밑거름이 됐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성공한 이유를 “유대인은 똑똑하니까”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인은 이 꼬리표를 다양하게 해석하는데, 공통적인 이유로 후츠파 정신, 융합 지능, 종교를 기반으로 한 가정교육을 꼽는다.
#안정보다 도전 지향 후츠파 정신
도착 첫날 분위기를 익힐 겸 텔아브비 시내로 갔다. 산홋빛 원피스가 걸린 쇼윈도를 군복 차림의 청년이 유심히 들여다봤다. 가게로 다가가 그 옆에 나란히 섰다. 듬직한 뒷모습과 달리 옆선은 섬세하고 고왔다. 여군이었다. 텔아비브 곳곳에서 워커와 국방색 군복을 걸친 앳된 여군을 만날 수 있었다.
이스라엘 고등학생들에게 입시만큼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입대다. 이스라엘에서는 고등학교를 마치면 남녀 모두 군대에 간다. 복무 기간은 남성 3년, 여성 2년이다. 대학은 제대 후 진학하는 게 보통이다. 이들도 우리처럼 군대 가기를 꺼릴까. 미국계 유대인 스티브 그레이(Steve Gray) 씨는 “그렇지 않다”라고 잘라 말했다.
“우리에게 군 복무는 당연한 선택이다. 전쟁이 최근까지 터졌는데 어쩌겠느냐. 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입대를 원하면 적당한 부대에 배치받는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군대는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한다.”
이스라엘은 독특한 군사 문화로 유명하다. 일반 부대나 엘리트 부대 할 것 없이 개인에게 큰 책임을 부여한다. 단순 반복 업무가 아닌 판단, 결정, 실행 단계를 거치는 일을 하니 리더십도 기를 수 있다. 8200부대나 탈피오드 같은 엘리트 부대의 경우, 최고의 과학기술 교육을 받으면서 실전 감각도 익힌다. 또 20년간 1년에 일주일씩 예비군 교육을 받는데, 이때 만든 네트워킹은 벤처 등 사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음은 정보기술(IT) 보안업체 체크포인트(Check Point)의 아시아지역 부사장 이치 웨인렙(Itche Weinreb) 씨의 설명.
“이스라엘 군대는 계급 중심이 아니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다. 극한의 상황에서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고 지휘명령을 내린다. 이렇게 해서 단련된 후츠파 정신은 벤처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후츠파 정신은 안정보다 도전을 지향하고, 실패가 두려워 몸을 사리기보다 성공을 다짐하는 태도를 뜻한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이를 부끄러이 여기지 않는다.”
#이질적 학문 통합 ‘융합 지능’ 발달
피부가 검지만 흑인은 아니었다. 흑인치고 코가 오뚝하고 눈이 움푹 팼다. 이들은 에디오피아계 유대인이다. 이스라엘은 대표적인 다민족 국가. 70여 개국 출신의 이민 유대인이 모여 산다. 족보는 따지기 힘들 만큼 복잡하다. 유럽, 러시아, 미국, 아프리카 등으로 흩어져 사는 동안 온갖 혈통이 다 섞였다. 이들은 ‘이란계 유대인은 짠돌이’ ‘루마니아계 유대인은 거짓말쟁이’라고 농담 삼아 투덜대면서도 유대인이라는 공감대로 정이 돈독하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융합에 능하다. 상반된 의견을 조율하고, 이질적인 학문을 통합하며, 이종(異種)의 기술을 교배한다. 융합은 최근 학계와 산업계를 관통하는 최고의 화두. 혁신은 인문학과 공학, 물리와 의료 등 ‘섞는 것’에서 싹트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기초과학을 이끄는 명문 바이츠만 과학연구소 물리학과 아모스 브레스킨(Amos Breskin) 교수는 “오랜 기간 다른 문화에서 살다 보니 이스라엘인은 통합적 사고가 발달한 것 같다. 이것이 창조와 혁신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금요일 저녁이면 집집이 식탁에 모여 앉는다. 음식도 평소보다 맛깔스럽다. 안식일을 맞아 가족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국교는 유대교다. 정통파 종교인은 20%지만, 이스라엘인 모두가 이 문화를 따른다. 주한 이스라엘문화원 정호진 이사는 “벤처 강국의 원동력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로 가정교육”이라고 설명했다.
#유대감 확인 탈무드와 가정교육
“가정이 안정적이면 학교 교육은 자연히 바로 선다. 우리나라는 가정교육이 문제다. 핵가족화한 이후 아이 하나 키우며 전전긍긍한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의 개성은 몰살당한다. 문화적으로 가정이 안정적일 수 있을 만한 시스템이 없는 탓이다.
이스라엘은 반대다. 안식일이 가정을 지탱하는 근간이다. 부모가 심적으로 안정돼 있으니 아이가 조금 모자라도 서두르지 않는다. 제도도 우리와 다르다. 대학 서열이 없고, 성적이 떨어지면 예비학교에 입학할 수 있어 입시전쟁도 없다.”
학교 교육도 일찍이 후츠파 정신을 고양한다. 초등학교에서는 객관식 문제 대신 구술로 평가한다. 또 대화식 교육이 주를 이루고, 질문을 독려한다. 엉뚱한 질문을 해도 무안 주는 일은 절대 없다. 좋은 질문을 하면 “노벨상감”이라는 과장된 칭찬으로 자신감을 북돋운다. 실제 취재하면서도 그런 경험을 했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따라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은 정호진 이사의 설명.
“유교의 장점을 되살려야 한다. 지나치게 경직돼선 안 되겠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런 가운데 부모가 중심을 잡을 수 있고, 이공계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이 가능하다. 물론 제도도 뒷받침돼야 한다. 평준화는 교육의 기본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일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출장은 호감을 전제로 시작했다. 그곳에서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꼬박 일주일을 머물렀다. 30년 전 돌아온 미국계 유대인, 시온주의 집안의 러시아계 유대인, 조부가 히브리대 초대 총장을 지낸 유대 청년, 10년간 그곳에서 산 한국인….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입체적으로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가까이에서 본 이스라엘은 기자의 생각과 대체로 비슷했고, 어느 정도는 차이가 났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 보였다. 오늘날 그들의 힘은 지난 2000년간 겹겹이 휘감아 돈 시간에 빚지고 있다는 것.
이스라엘은 건국 50년 만에 세계 브레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인구 700만 명의 자그마한 신생 국가에 세계 벤처펀드의 30% 이상이 몰렸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났을까. 취재 중 만난 사람들은 ‘절박함’을 첫째 이유로 꼽았다.
“우리는 싸우면서 논밭을 일구고, 국가 시스템도 정비해야 했다.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모든 일을 해내야만 했다. 이런 절박함 위에서 용기, 창의력, 민첩함이 꽃피웠다. 그리고 이는 벤처 강국의 밑거름이 됐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성공한 이유를 “유대인은 똑똑하니까”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인은 이 꼬리표를 다양하게 해석하는데, 공통적인 이유로 후츠파 정신, 융합 지능, 종교를 기반으로 한 가정교육을 꼽는다.
#안정보다 도전 지향 후츠파 정신
도착 첫날 분위기를 익힐 겸 텔아브비 시내로 갔다. 산홋빛 원피스가 걸린 쇼윈도를 군복 차림의 청년이 유심히 들여다봤다. 가게로 다가가 그 옆에 나란히 섰다. 듬직한 뒷모습과 달리 옆선은 섬세하고 고왔다. 여군이었다. 텔아비브 곳곳에서 워커와 국방색 군복을 걸친 앳된 여군을 만날 수 있었다.
이스라엘 고등학생들에게 입시만큼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입대다. 이스라엘에서는 고등학교를 마치면 남녀 모두 군대에 간다. 복무 기간은 남성 3년, 여성 2년이다. 대학은 제대 후 진학하는 게 보통이다. 이들도 우리처럼 군대 가기를 꺼릴까. 미국계 유대인 스티브 그레이(Steve Gray) 씨는 “그렇지 않다”라고 잘라 말했다.
“우리에게 군 복무는 당연한 선택이다. 전쟁이 최근까지 터졌는데 어쩌겠느냐. 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입대를 원하면 적당한 부대에 배치받는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군대는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한다.”
이스라엘은 독특한 군사 문화로 유명하다. 일반 부대나 엘리트 부대 할 것 없이 개인에게 큰 책임을 부여한다. 단순 반복 업무가 아닌 판단, 결정, 실행 단계를 거치는 일을 하니 리더십도 기를 수 있다. 8200부대나 탈피오드 같은 엘리트 부대의 경우, 최고의 과학기술 교육을 받으면서 실전 감각도 익힌다. 또 20년간 1년에 일주일씩 예비군 교육을 받는데, 이때 만든 네트워킹은 벤처 등 사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음은 정보기술(IT) 보안업체 체크포인트(Check Point)의 아시아지역 부사장 이치 웨인렙(Itche Weinreb) 씨의 설명.
“이스라엘 군대는 계급 중심이 아니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다. 극한의 상황에서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고 지휘명령을 내린다. 이렇게 해서 단련된 후츠파 정신은 벤처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후츠파 정신은 안정보다 도전을 지향하고, 실패가 두려워 몸을 사리기보다 성공을 다짐하는 태도를 뜻한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이를 부끄러이 여기지 않는다.”
#이질적 학문 통합 ‘융합 지능’ 발달
검은색 유대복에 턱수염을 기르고 모자를 쓴 정통파 유대인들.
이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융합에 능하다. 상반된 의견을 조율하고, 이질적인 학문을 통합하며, 이종(異種)의 기술을 교배한다. 융합은 최근 학계와 산업계를 관통하는 최고의 화두. 혁신은 인문학과 공학, 물리와 의료 등 ‘섞는 것’에서 싹트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기초과학을 이끄는 명문 바이츠만 과학연구소 물리학과 아모스 브레스킨(Amos Breskin) 교수는 “오랜 기간 다른 문화에서 살다 보니 이스라엘인은 통합적 사고가 발달한 것 같다. 이것이 창조와 혁신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금요일 저녁이면 집집이 식탁에 모여 앉는다. 음식도 평소보다 맛깔스럽다. 안식일을 맞아 가족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국교는 유대교다. 정통파 종교인은 20%지만, 이스라엘인 모두가 이 문화를 따른다. 주한 이스라엘문화원 정호진 이사는 “벤처 강국의 원동력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로 가정교육”이라고 설명했다.
#유대감 확인 탈무드와 가정교육
“가정이 안정적이면 학교 교육은 자연히 바로 선다. 우리나라는 가정교육이 문제다. 핵가족화한 이후 아이 하나 키우며 전전긍긍한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의 개성은 몰살당한다. 문화적으로 가정이 안정적일 수 있을 만한 시스템이 없는 탓이다.
이스라엘은 반대다. 안식일이 가정을 지탱하는 근간이다. 부모가 심적으로 안정돼 있으니 아이가 조금 모자라도 서두르지 않는다. 제도도 우리와 다르다. 대학 서열이 없고, 성적이 떨어지면 예비학교에 입학할 수 있어 입시전쟁도 없다.”
학교 교육도 일찍이 후츠파 정신을 고양한다. 초등학교에서는 객관식 문제 대신 구술로 평가한다. 또 대화식 교육이 주를 이루고, 질문을 독려한다. 엉뚱한 질문을 해도 무안 주는 일은 절대 없다. 좋은 질문을 하면 “노벨상감”이라는 과장된 칭찬으로 자신감을 북돋운다. 실제 취재하면서도 그런 경험을 했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따라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은 정호진 이사의 설명.
“유교의 장점을 되살려야 한다. 지나치게 경직돼선 안 되겠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런 가운데 부모가 중심을 잡을 수 있고, 이공계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이 가능하다. 물론 제도도 뒷받침돼야 한다. 평준화는 교육의 기본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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