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이갑수(56) 씨는 매달 한 번 제주도행 비행기에 오른다. 제주대 학생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는 지역의 자립적인 발전을 고민하는 민간연구소 희망제작소가 제주대 학생 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HRA(Human Resource Academy) 가운데 한 분야를 맡아 2년째 강단에 서고 있다. 4시간 동안 청춘에게 경험을 전한 뒤 저녁에는 술잔을 기울이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더없이 귀하다. 그래서 제주도 가는 길은 늘 설렌다”고 말했다.
지방대 취업 지원 프로그램서 강의
이씨는 금융맨 출신이다. 1981년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에 입사해 2009년 5월 퇴직했다. 영업, 외환, 공보…. 여러 보직을 두루 거치다가 지점장 자리에서 회사를 그만뒀다. 다니려면 더 다닐 수도 있었다. 동년배 중에는 임금피크제로 회사에 남는 이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퇴직을 결정했다.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회사에 몇 년 더 다니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죠. 재취업이 어렵고, 조직에 머무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을 주니까요. 하지만 저는 아내에게 ‘무조건 그만둔다’고 말했고, 아내도 ‘그동안 가족을 위해 일했으니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제 마음을 헤아려주더군요.”
청년들도 내뱉기 쑥스러워하는 단어 ‘꿈’. 하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꺼내놓았다. 그가 ‘먹고사니즘’ 아래 고이 접어두었던 꿈은 바로 배우와 교사.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실현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언뜻 들지만, 그는 이미 첫발을 내디뎠다. 학생들이 제작하는 독립영화에 보조출연을 했고, 제주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희망제작소가 마련한 행복설계아카데미에 참가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어릴 적 꿈꾸던 배우와 교사라니, 가능할까 싶었죠. 하지만 은퇴자 모임에서 자신감을 갖게 됐고,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으니 정말로 되더군요. 희망제작소가 마련한 행복설계아카데미에 참가했는데, 그곳에서 인연을 맺은 분들의 소개로 연기를 하고 강단에도 설 수 있었어요. 학생들이 제작하는 독립영화에 구청장 역으로 보조출연을 했는데, 대사 하나 없는 한 컷을 위해 두 시간을 기다려도 즐겁더군요. 제주대 학생을 가르치는 건 두말할 나위 없고요.”
특히 전문지식과 노하우를 예비 사회인에게 전파하는 기쁨은 남다르다. 이씨가 참여하는 HRA는 젊은이에게 리더십을 가르치는 영리더스 아카데미(Young Leaders Academy·YLA)의 일환으로, 은퇴한 임원과 현역 최고경영자(CEO)가 지방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수도권에 비해 낙후한 환경에 있는 지방대 학생들에게 취업에 필요한 자질과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을 가르친다. 행복설계아카데미를 함께 수강한 YLA 서재경 대표의 권유에 처음에는 “금융 관련 지식이라면 모를까, 나는 누구를 가르칠 능력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지금은 제주도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학생들과의 만남을 즐긴다.
취업과 미래고민 컨설팅…성장 지켜보는 기쁨
커리큘럼은 학과 수업만큼 빡빡하다. 매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3명의 사회 명사가 강의를 하고, 학생들에게 매번 적지 않은 양의 과제를 준다. 그는 4시간 동안 ‘기업실무’ ‘한국경제사’ ‘경영서 리뷰’를 가르친다. ‘기업실무’에서는 ‘감귤을 해외에 수출할 때 필요한 절차를 조사하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한국경제사’ 시간에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부터 1972년까지 한국 경제의 개황’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며, ‘경영서 리뷰’에서는 ‘직업 선택의 기술’ ‘정상은 내 가슴에’ ‘소비의 심리학’ 등을 읽고 토론한다. 겨울방학 때는 7박8일간 합숙 교육을 실시한다. 이씨는 “1년 과정을 마친 뒤 학생들에게 ‘신입사원 2년 차보다 여러분의 기획력이 더 나을 것’이라고 격려한다”라고 말했다.
“HRA 강사들은 언론계 인사, 재계 임원, 정부 관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한 사람들인 데다 대부분 해외 근무 경험이 있어요. 학자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쌓은 경험을 선생으로서, 인생 선배로서 전할 수 있는 거죠. 저는 일본에 3년간 머물렀고, 은행에서 여러 부서를 거치며 실무를 익혔습니다. 학생들이 토론하고, 발표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을 점검해줄 능력은 지닌 셈이죠.”
무엇보다 큰 기쁨은 학생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다. 취업을 앞둔 고학년 학생들이 주로 털어놓는 고민은 자기 정체성의 혼란.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지만, 비전이 없어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살았나’라는 자괴감에 빠진 학생이 많다는 것. 그는 “학생들은 나에게 도움을 받고, 나는 학생들에게 자극을 받는다. 세대를 뛰어넘어 자식뻘인 학생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연기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인생 2모작을 준비 중이다. 다음 학기에 사이버대학에서 국어문화를 공부한 뒤 자격증을 취득, 한국에 사는 외국인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한국어 교사를 평생직업으로 생각하느냐”고 묻자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봉사하고, 배우로 활동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며 웃었다.
“일본에는 인텔리 자원봉사자가 넘쳐나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문화가 아직 부족해요. 차비만 주면 다문화가족이나 주한 외국인을 직접 찾아가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어요. 문학을 좋아하고 가르치기를 즐기니, 그만큼 마침맞은 일도 없죠.”
이갑수(56) 씨는 매달 한 번 제주도행 비행기에 오른다. 제주대 학생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는 지역의 자립적인 발전을 고민하는 민간연구소 희망제작소가 제주대 학생 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HRA(Human Resource Academy) 가운데 한 분야를 맡아 2년째 강단에 서고 있다. 4시간 동안 청춘에게 경험을 전한 뒤 저녁에는 술잔을 기울이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더없이 귀하다. 그래서 제주도 가는 길은 늘 설렌다”고 말했다.
지방대 취업 지원 프로그램서 강의
이씨는 금융맨 출신이다. 1981년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에 입사해 2009년 5월 퇴직했다. 영업, 외환, 공보…. 여러 보직을 두루 거치다가 지점장 자리에서 회사를 그만뒀다. 다니려면 더 다닐 수도 있었다. 동년배 중에는 임금피크제로 회사에 남는 이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퇴직을 결정했다.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회사에 몇 년 더 다니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죠. 재취업이 어렵고, 조직에 머무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을 주니까요. 하지만 저는 아내에게 ‘무조건 그만둔다’고 말했고, 아내도 ‘그동안 가족을 위해 일했으니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제 마음을 헤아려주더군요.”
청년들도 내뱉기 쑥스러워하는 단어 ‘꿈’. 하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꺼내놓았다. 그가 ‘먹고사니즘’ 아래 고이 접어두었던 꿈은 바로 배우와 교사.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실현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언뜻 들지만, 그는 이미 첫발을 내디뎠다. 학생들이 제작하는 독립영화에 보조출연을 했고, 제주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희망제작소가 마련한 행복설계아카데미에 참가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어릴 적 꿈꾸던 배우와 교사라니, 가능할까 싶었죠. 하지만 은퇴자 모임에서 자신감을 갖게 됐고,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으니 정말로 되더군요. 희망제작소가 마련한 행복설계아카데미에 참가했는데, 그곳에서 인연을 맺은 분들의 소개로 연기를 하고 강단에도 설 수 있었어요. 학생들이 제작하는 독립영화에 구청장 역으로 보조출연을 했는데, 대사 하나 없는 한 컷을 위해 두 시간을 기다려도 즐겁더군요. 제주대 학생을 가르치는 건 두말할 나위 없고요.”
특히 전문지식과 노하우를 예비 사회인에게 전파하는 기쁨은 남다르다. 이씨가 참여하는 HRA는 젊은이에게 리더십을 가르치는 영리더스 아카데미(Young Leaders Academy·YLA)의 일환으로, 은퇴한 임원과 현역 최고경영자(CEO)가 지방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수도권에 비해 낙후한 환경에 있는 지방대 학생들에게 취업에 필요한 자질과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을 가르친다. 행복설계아카데미를 함께 수강한 YLA 서재경 대표의 권유에 처음에는 “금융 관련 지식이라면 모를까, 나는 누구를 가르칠 능력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지금은 제주도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학생들과의 만남을 즐긴다.
취업과 미래고민 컨설팅…성장 지켜보는 기쁨
커리큘럼은 학과 수업만큼 빡빡하다. 매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3명의 사회 명사가 강의를 하고, 학생들에게 매번 적지 않은 양의 과제를 준다. 그는 4시간 동안 ‘기업실무’ ‘한국경제사’ ‘경영서 리뷰’를 가르친다. ‘기업실무’에서는 ‘감귤을 해외에 수출할 때 필요한 절차를 조사하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한국경제사’ 시간에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부터 1972년까지 한국 경제의 개황’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며, ‘경영서 리뷰’에서는 ‘직업 선택의 기술’ ‘정상은 내 가슴에’ ‘소비의 심리학’ 등을 읽고 토론한다. 겨울방학 때는 7박8일간 합숙 교육을 실시한다. 이씨는 “1년 과정을 마친 뒤 학생들에게 ‘신입사원 2년 차보다 여러분의 기획력이 더 나을 것’이라고 격려한다”라고 말했다.
“HRA 강사들은 언론계 인사, 재계 임원, 정부 관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한 사람들인 데다 대부분 해외 근무 경험이 있어요. 학자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쌓은 경험을 선생으로서, 인생 선배로서 전할 수 있는 거죠. 저는 일본에 3년간 머물렀고, 은행에서 여러 부서를 거치며 실무를 익혔습니다. 학생들이 토론하고, 발표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을 점검해줄 능력은 지닌 셈이죠.”
무엇보다 큰 기쁨은 학생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다. 취업을 앞둔 고학년 학생들이 주로 털어놓는 고민은 자기 정체성의 혼란.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지만, 비전이 없어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살았나’라는 자괴감에 빠진 학생이 많다는 것. 그는 “학생들은 나에게 도움을 받고, 나는 학생들에게 자극을 받는다. 세대를 뛰어넘어 자식뻘인 학생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연기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인생 2모작을 준비 중이다. 다음 학기에 사이버대학에서 국어문화를 공부한 뒤 자격증을 취득, 한국에 사는 외국인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한국어 교사를 평생직업으로 생각하느냐”고 묻자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봉사하고, 배우로 활동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며 웃었다.
“일본에는 인텔리 자원봉사자가 넘쳐나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문화가 아직 부족해요. 차비만 주면 다문화가족이나 주한 외국인을 직접 찾아가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어요. 문학을 좋아하고 가르치기를 즐기니, 그만큼 마침맞은 일도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