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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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투 펀치 휙~휙 평범한 일상 훌~훌

복스!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1-04-18 0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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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투 펀치 휙~휙 평범한 일상 훌~훌

    햐쿠타 나오키 지음/ 권일영 옮김/ 문학동네/ 660쪽/ 1만5000원

    복싱 글러브를 끼고 링에 오르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시작은 탤런트 이시영이다. 그는 전국여자신인아마추어 복싱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실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다른 선수를 압도하는 그의 실력에도 놀랐지만 멍든 얼굴과 그가 흘린 땀방울에 더 감동받았다. 특히 갑갑한 사무실에서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던 회사원들의 반향이 컸다. 저마다 7전 8기 신화를 썼던 홍수환을, 계단을 힘차게 뛰어 오르던 록키를 떠올리며 글러브를 낀다. 아직도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햐쿠타 나오키가 쓴 ‘복스!’를 읽어보자.

    “흥분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뭔가를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는 마음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입니다.”

    한 일본 독자가 일본 고교 복싱선수들의 성장기를 담은 이 소설에 보낸 찬사다. 660쪽에 달하는 책의 두께가 조금 부담스럽지만 일단 첫 장을 읽어보자. 지하철에서 불량배를 제압하는 고교 복싱선수의 화려한 몸놀림에 어깨가 들썩인다. 책장을 덮기 전까지 최소한 한 번은 독자도 허공에 주먹을 날릴 것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에비스고교 1학년 특별진학반 모범생 기타루는 몸이 약해 어릴 적부터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기타루의 영웅은 공부는 못해도 운동이라면 뭐든지 잘하는 친구 가부라야다. 복싱부 가부라야는 타고난 감각으로 이미 3학년 선배들을 압도한 운동 천재다. 기타루는 같은 반 여자친구가 보는 앞에서 불량배에게 망신당한 뒤 복싱을 시작하고, 끝내 최강의 자리를 놓고 가부라야와 다투게 된다.

    ‘노력파’ 기타루 캐릭터가 독자에게 주는 울림은 크다. 그는 복싱의 기본인 원투 펀치를 몇 달 동안 반복 연습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로드워크를 할 정도로 성실한 노력파다. 다른 부원들이 재능이 부족하다고 탓할 때 그는 묵묵히 땀 흘리며 모자란 재능의 빈자리를 채운다.



    “저 같은 건 권투에 전혀 재능이 없는데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제 입으로 이런 말하기는 그렇지만 정말 죽어라 노력하고 있죠.”

    고생하고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 얻은 복싱 실력은 차곡차곡 기타루 안에 쌓인다. 끝내 강자에 오르는 것은 기타루다. 반면 가부라야의 넘치는 재능은 그의 발목을 잡는다. ‘큰 고생도 큰 노력도 없이 너무 쉽게 잘하게 된’ 가부라야는 중요한 시합에서 패배한 뒤 쉽게 복싱을 버린다.

    그렇다고 노력의 가치를 딱딱하게 설명하진 않는다. 독자는 기타루와 함께 성장한다. 저질 체력에도 강도 높은 훈련을 이겨내고 늘어난 광배근 둘레를 확인했을 때, 강한 상대를 맞이해 두려움에 떨다가도 탄탄한 기본기로 맞서 싸울 때 책을 쥔 독자의 손과 팔에도 어느새 힘이 들어간다.

    책의 유일한 단점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연애 스토리다. 책의 광고문구에는 “운동선수의 군살 없는 몸처럼 한 점 낭비가 없는 올곧은 청춘 스포츠 소설”이라 썼지만, 660쪽의 군살 대부분은 유치할 정도로 투박한 남녀 사이의 연애 감정 묘사다. 모처럼 만난 땀내 가득한 소설인데, 좀 더 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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