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8일 강원 강릉빙상경기장에서 강원도민 2018명이 현지 실사에 나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평가단을 앞에 두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는 합창을 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나오는 인상적인 문장이다. 지난해 말 스위스 국제축구연맹(FIFA) 본부에서 치른 월드컵 개최지 선정 투표 결과 2018년 러시아에 이어 2022년 카타르로 결정됐을 때, 나의 심정이 그랬다. 완벽한 절망,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2014년 월드컵은 브라질에서 열린다).
카타르는 적은 인구(2008년 기준 약 93만 명)와 좁은 면적, 무엇보다 높은 기온이 결정적 결격 사유였는데도 미국, 호주, 일본, 한국 등 당당한 나라를 제치고 개최권을 따냈다. 어떻게? 결격 사유 두 가지가 거꾸로 선정 사유가 됐던 것이다. 좁은 면적에 대한 핸디캡은 경기장 간 이동이 편리하다는 장점으로 바뀌었다. 축구는커녕 관람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높은 기온 문제는 ‘축구장에 냉방시설을 설치하겠다’는 아이디어로 비켜갔다. 카타르는 마지막 미국과의 3차 결선 프레젠테이션에서 관중석, 벤치 무릎 아래쪽, 목 뒤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오도록 하고, 운동장은 27℃ 미만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필요한 에너지는 태양열 발전을 이용하며 100% 탄소 중립을 지키겠다’는 등 환경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약점을 강점으로 극복한 최고의 마케팅 성공사례다.
우리 축구계의 월드컵 유치 실패를 다행(?)으로 여기는 곳도 있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가 그곳이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2014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2011년) 등 잇따른 대회 유치로 한국이 국제대회를 독식하려 한다는 분위기는 평창에 악재임이 분명하다. 몇 표 차이로 러시아 소치에 2014년 동계올림픽을 빼앗겼던 강원도 평창이 며칠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2018년 후보지 현지실사를 무사히 마쳤다. 삼수(三修) 도전이다. 이제 평창은 2차로 5월 스위스 로잔 IOC 본부에서 열리는 후보 도시 브리핑에 이어, 3차로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리는 IOC 총회에서의 개최지 선정 투표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만만치 않다. 경쟁국 프랑스 안시는 처음부터 ‘내신 1등급’ 알프스의 풍광을 자랑하고, 독일 뮌헨은 ‘유서 깊은 문화도시’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반해 평창은 입국 후 평창까지 이동 거리가 길다는 핸디캡과 우리의 2022년 월드컵을 무산시켰던 연평도 포격 같은 남북 긴장상황 등이 발목을 잡을 것으로 우려된다. 그런데 이러한 핸디캡을 한 번에 뒤집을 평창의 마지막 히든카드, 회심의 전략이라는 게 ‘피겨스케이팅 스타 김연아의 활약 기대’라는 발표는 실망스러웠다.
지난해 나의 마지막 라운딩 장소였던 평창 알펜시아CC는 필드 상태와 숙박시설 등은 훌륭했지만 찾는 이 없어 바람만 쓸쓸히 불었다. 우리 축구계의 월드컵 유치 실패를 교훈 삼아, ‘카타르의 시원한 에어컨’처럼 평창은 ‘따뜻한 감동’을 준비해야 한다. 월드컵에 이어 올림픽마저 더블플레이 당하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 황승경 단장은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에서 축구 전문 리포터로 활약한 축구 마니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