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4일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 국제범죄수사대 한 수사관이 경찰 저격용 총 레밍턴 M700을 버스를 향해 발사했다. 날아간 탄알은 버스 유리창을 깨부수고 반대편 창까지 깼다. 겉보기에 저격용 총과 똑같은 이 총은 진짜 저격용 총이 아니다. 일본 완구제조업체 다나카 사에서 만든 다나카 M700이다. 레밍턴 M700의 시가는 2000만 원 이상. 개조한 다나카 M700은 350만 원 정도에 거래됐다. 이와 같은 모의총기들을 공기총에 가까운 성능으로 개조한 사람은 정형외과 병원 원장 윤모(45) 씨 등이다.
국제범죄수사대가 ‘총기 오타쿠’ 윤모 씨의 경기도 일산 창고에서 발견한 총은 60여 정. 실제 총기와 외관, 무게가 똑같은 M16, AK47 소총 등 모의총기가 즐비했고 일부에는 저격용 조준경까지 달려 있었다. 윤씨는 수입된 장남감총, 모의총기를 창고에서 개조했다. 총기 성능을 높이려고 해외 총기 관련 사이트를 섭렵하며 총기에 대한 지식을 쌓았고, 부품 제작과 관련한 기계 지식도 익혔다. 그는 총기 설계도를 직접 그리고 쇠를 손으로 깎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공기총보다 강한 파괴력
총기의 핵심 부품 제작을 선반 기술자를 고용해 맡길 정도로 애쓴 끝에 총기 파괴력은 공기총 못지않게 강해졌다. 실린더 등 핵심 부품 내구성을 키웠고 스프링식, 전동식을 가스충전식으로 바꾸었다. 윤씨는 총의 성능을 시험하려고 병원 엘리베이터 철제문을 향해 조준사격을 하기도 했다.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에 따르면 총기 탄환 운동에너지가 0.2J(Joule)을 초과하면 불법이다. 이들은 제한 기준치의 약 62배에 이르는 총을 제작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총기관리실 관계자는 “0.2J 모의총기에서 나온 BB탄을 1~2m에서 맞으면 약간 따끔할 정도지만, 1J이 넘으면 라면박스를 관통한다. 30J이 넘는 총기에서 발사된 쇠구슬에 머리를 맞으면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씨는 인터넷 총기 동호회 카페에서 제작 관련 정보를 교류하고 직접 총기를 팔기도 했다. 윤씨를 조사한 국제범죄수사대 김병관 수사관은 “이들의 총기에 대한 집착은 마니아를 넘어 오타쿠 수준이다. 과시욕이 강해 개조한 총기를 자랑하고, 개조 방법을 일일이 사진으로 찍거나 동영상으로 촬영해 교환한다”고 말했다. 현재 윤씨가 활동했던 동호회 카페는 폐쇄된 상태다. 서바이벌 총기 판매업자 A씨는 “일부 비뚤어진 총기 마니아 중에는 총기를 테스트하려고 야산에서 작은 동물을 잡기도 한다. 모의총기를 개조하는 데 드는 비용이 공기총 구입 비용보다 2~3배나 많지만 공기총보다 규제가 엄격하지 않아 큰돈이 들더라도 매달린다”고 전했다.
총기 오타쿠가 아니더라도 총기에 관심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인터넷, 직거래 등을 통해 개조한 총기를 구입할 수 있다. 2009년 12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K2 소총 등 모의총기를 설계, 제작해 판매한 일당을 붙잡았다. 이들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버젓이 사무실을 차려놓고, 중국 등지에서 완구류로 수입한 총기 부품을 경기도 일대 공장에서 모의총기로 제작해 인터넷을 통해 팔았다. 심지어 올해 8월에는 고등학생이 해외 사이트에서 총기 기술을 수집한 뒤 인터넷과 시중에서 구입한 재료를 이용해 K2 실총의 위력에 버금가는 모의총기를 제작하기도 했다.
모의총기를 이용한 범죄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선 경찰들은 “모의총기가 실총만큼 파괴력이 있지 않아도 겉보기엔 구분이 안 가 범죄에 충분히 이용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2008년 5월 전북 익산의 한 은행에 예비군 옷을 입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총기를 들고 들이닥쳤다. 그는 “탈영병이다. 쏘겠다”고 외친 뒤 총기로 은행 직원들을 위협하고 현금 400여만 원을 훔쳐 달아났다. 폐쇄회로(CC)TV 판독 결과 전문가들은 한눈에 모의총기임을 파악했으나 당황한 은행 직원과 경비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범죄를 막기 위해 관련 당국은 장난감, 모의총기를 수입할 때 실총과 구분되도록 총열, 탄창, 개머리판 등에 컬러패턴을 입히게 했다. 하지만 업자들은 컬러패턴 처리된 총기를 수입하면서 실총과 색깔이 같은 부품을 따로 들여와 다시 조립하는 방법으로 법망을 피한다.
파괴력이 커지면서 대형사고 위험도 커졌다. 2009년 6월 20대 남성들이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경기도 고양시, 파주시 등지에서 M16 모의총기로 유리구슬을 쏴 시내버스 등 버스 5대, 유리창 10여 장을 깨뜨렸다. 이들은 “술에 취했다. 유리창이 깨질지 몰랐다”며 장난으로 여겼지만, 시내버스에 탄 시민들은 불안감에 떨었다. 경찰 관계자는 “모의총기로 인한 테러 위험을 경고하면 대부분 과장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달리는 차량에 모의총기를 쏘아 운전자를 위협했다가운전자가 자칫 운전대라도 놓으면 도로에서 대형사고가 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모의총기 불법 개조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바이벌 동호회 회원들은 “모의총기 문화의 발달 속도를 법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 서바이벌 동호회 회원 김모(29) 씨는 “서바이벌 동호회 회원들을 살상용 무기 제조업자로 몰아붙이면 안 된다. 현행 법 규정에 정해진 탄환 운동에너지를 지키면 야외에서 탄이 날아가지 못해 정상적인 게임을 할 수 없다. 외국처럼 규정을 현실화할 때 불법 개조에 손대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고 말했다. 서바이벌 동호회에서 사용하는 모의총기의 탄환 운동에너지는 보통 1~2J. 법은 이를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지만 일선 경찰들도 암묵적으로 용인한다. 동호회도 자체 규정을 마련하고 파괴력에 상한을 두고 있다.
“별일 있겠어?” 모의총기 불감증
범죄 전문가들은 모의총기와 관련된 솜방망이 처벌을 질타한다. 총기 관련 수사를 했던 한 경찰은 “불법 개조된 총기는 공기총, 실총에 가까운 살상력이 있다. 하지만 1J이든 60J이든 모의총기 소지로만 두루뭉술하게 처벌받는다. 힘들게 잡아도 단죄를 받지 않으니 허무할 때가 있다”고 아쉬워했다. 이러니 벌금형을 받고 풀려난 총기 오타쿠가 “경찰서에 가보니 별것 없더라”는 글을 동호회 게시판에 올리기도 한다. A씨도 “엄격히 따지면 모의총기 개조가 아닌 공기총 개조로 불러야 한다. 껍데기만 모의총기지 부품은 공기총에서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총기 성능에 목숨을 거는 오타쿠 중에는 모의총기보다 강한 공기총, 실총에 손대거나 폭탄, 탄알까지 마구잡이로 수집하는 사람도 많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들은 남성성의 상징인 총기에 집착해 더 강한 것을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타인보다 월등한 전문성을 키우고, 광적으로 수집에 집착한다”고 설명했다. 한 해군 함정 병기 담당부사관 출신 남자는 작은 임대아파트 방을 군대 탄약고에서 빼돌린 MK4, 벌컨포 포탄, 대검, 총알, 불법 개량한 모의소총 등으로 채우기도 했다. 모의총기 불법 소지로 경찰에 붙들려온 20대 초반 남성은 경찰의 추궁에 반성하기는커녕 압수된 다른 총기를 보고 “어떻게 구했느냐, 얼마면 살 수 있느냐”며 집착하기도 했다. 한 경찰관의 말이다.
“김길태 같은 살인마가 모의총기로 사람들을 위협하고 난사하면 모를까. 우리 사회의 모의총기 불감증은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국제범죄수사대가 ‘총기 오타쿠’ 윤모 씨의 경기도 일산 창고에서 발견한 총은 60여 정. 실제 총기와 외관, 무게가 똑같은 M16, AK47 소총 등 모의총기가 즐비했고 일부에는 저격용 조준경까지 달려 있었다. 윤씨는 수입된 장남감총, 모의총기를 창고에서 개조했다. 총기 성능을 높이려고 해외 총기 관련 사이트를 섭렵하며 총기에 대한 지식을 쌓았고, 부품 제작과 관련한 기계 지식도 익혔다. 그는 총기 설계도를 직접 그리고 쇠를 손으로 깎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공기총보다 강한 파괴력
총기의 핵심 부품 제작을 선반 기술자를 고용해 맡길 정도로 애쓴 끝에 총기 파괴력은 공기총 못지않게 강해졌다. 실린더 등 핵심 부품 내구성을 키웠고 스프링식, 전동식을 가스충전식으로 바꾸었다. 윤씨는 총의 성능을 시험하려고 병원 엘리베이터 철제문을 향해 조준사격을 하기도 했다.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에 따르면 총기 탄환 운동에너지가 0.2J(Joule)을 초과하면 불법이다. 이들은 제한 기준치의 약 62배에 이르는 총을 제작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총기관리실 관계자는 “0.2J 모의총기에서 나온 BB탄을 1~2m에서 맞으면 약간 따끔할 정도지만, 1J이 넘으면 라면박스를 관통한다. 30J이 넘는 총기에서 발사된 쇠구슬에 머리를 맞으면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씨는 인터넷 총기 동호회 카페에서 제작 관련 정보를 교류하고 직접 총기를 팔기도 했다. 윤씨를 조사한 국제범죄수사대 김병관 수사관은 “이들의 총기에 대한 집착은 마니아를 넘어 오타쿠 수준이다. 과시욕이 강해 개조한 총기를 자랑하고, 개조 방법을 일일이 사진으로 찍거나 동영상으로 촬영해 교환한다”고 말했다. 현재 윤씨가 활동했던 동호회 카페는 폐쇄된 상태다. 서바이벌 총기 판매업자 A씨는 “일부 비뚤어진 총기 마니아 중에는 총기를 테스트하려고 야산에서 작은 동물을 잡기도 한다. 모의총기를 개조하는 데 드는 비용이 공기총 구입 비용보다 2~3배나 많지만 공기총보다 규제가 엄격하지 않아 큰돈이 들더라도 매달린다”고 전했다.
총기 오타쿠가 아니더라도 총기에 관심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인터넷, 직거래 등을 통해 개조한 총기를 구입할 수 있다. 2009년 12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K2 소총 등 모의총기를 설계, 제작해 판매한 일당을 붙잡았다. 이들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버젓이 사무실을 차려놓고, 중국 등지에서 완구류로 수입한 총기 부품을 경기도 일대 공장에서 모의총기로 제작해 인터넷을 통해 팔았다. 심지어 올해 8월에는 고등학생이 해외 사이트에서 총기 기술을 수집한 뒤 인터넷과 시중에서 구입한 재료를 이용해 K2 실총의 위력에 버금가는 모의총기를 제작하기도 했다.
모의총기를 이용한 범죄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선 경찰들은 “모의총기가 실총만큼 파괴력이 있지 않아도 겉보기엔 구분이 안 가 범죄에 충분히 이용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2008년 5월 전북 익산의 한 은행에 예비군 옷을 입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총기를 들고 들이닥쳤다. 그는 “탈영병이다. 쏘겠다”고 외친 뒤 총기로 은행 직원들을 위협하고 현금 400여만 원을 훔쳐 달아났다. 폐쇄회로(CC)TV 판독 결과 전문가들은 한눈에 모의총기임을 파악했으나 당황한 은행 직원과 경비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범죄를 막기 위해 관련 당국은 장난감, 모의총기를 수입할 때 실총과 구분되도록 총열, 탄창, 개머리판 등에 컬러패턴을 입히게 했다. 하지만 업자들은 컬러패턴 처리된 총기를 수입하면서 실총과 색깔이 같은 부품을 따로 들여와 다시 조립하는 방법으로 법망을 피한다.
파괴력이 커지면서 대형사고 위험도 커졌다. 2009년 6월 20대 남성들이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경기도 고양시, 파주시 등지에서 M16 모의총기로 유리구슬을 쏴 시내버스 등 버스 5대, 유리창 10여 장을 깨뜨렸다. 이들은 “술에 취했다. 유리창이 깨질지 몰랐다”며 장난으로 여겼지만, 시내버스에 탄 시민들은 불안감에 떨었다. 경찰 관계자는 “모의총기로 인한 테러 위험을 경고하면 대부분 과장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달리는 차량에 모의총기를 쏘아 운전자를 위협했다가운전자가 자칫 운전대라도 놓으면 도로에서 대형사고가 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스를 충전한 모의총기는 공기총 못지 않은 살상력을 지닌다. 기자가 직접 들어보니 실총처럼 묵직했다.
“별일 있겠어?” 모의총기 불감증
범죄 전문가들은 모의총기와 관련된 솜방망이 처벌을 질타한다. 총기 관련 수사를 했던 한 경찰은 “불법 개조된 총기는 공기총, 실총에 가까운 살상력이 있다. 하지만 1J이든 60J이든 모의총기 소지로만 두루뭉술하게 처벌받는다. 힘들게 잡아도 단죄를 받지 않으니 허무할 때가 있다”고 아쉬워했다. 이러니 벌금형을 받고 풀려난 총기 오타쿠가 “경찰서에 가보니 별것 없더라”는 글을 동호회 게시판에 올리기도 한다. A씨도 “엄격히 따지면 모의총기 개조가 아닌 공기총 개조로 불러야 한다. 껍데기만 모의총기지 부품은 공기총에서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총기 성능에 목숨을 거는 오타쿠 중에는 모의총기보다 강한 공기총, 실총에 손대거나 폭탄, 탄알까지 마구잡이로 수집하는 사람도 많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들은 남성성의 상징인 총기에 집착해 더 강한 것을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타인보다 월등한 전문성을 키우고, 광적으로 수집에 집착한다”고 설명했다. 한 해군 함정 병기 담당부사관 출신 남자는 작은 임대아파트 방을 군대 탄약고에서 빼돌린 MK4, 벌컨포 포탄, 대검, 총알, 불법 개량한 모의소총 등으로 채우기도 했다. 모의총기 불법 소지로 경찰에 붙들려온 20대 초반 남성은 경찰의 추궁에 반성하기는커녕 압수된 다른 총기를 보고 “어떻게 구했느냐, 얼마면 살 수 있느냐”며 집착하기도 했다. 한 경찰관의 말이다.
“김길태 같은 살인마가 모의총기로 사람들을 위협하고 난사하면 모를까. 우리 사회의 모의총기 불감증은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