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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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새벽에 도끼를 휘둘렀나

윤모 씨, 박재순 前 한나라당 최고위원 테러 토지보상 소송 실패하자 한풀이 차원서 범행

  • 김호 광주일보 사회부 기자 kimho@kwangju.co.kr

    입력2010-11-22 09: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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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왜 새벽에 도끼를 휘둘렀나
    11월 10일 새벽, 광주시 서구 풍암동 모 아파트 3층 박재순(66)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집. 안방 침대에서 아내(63)와 함께 잠을 자던 박 전 최고위원은 누군가 비춘 손전등 빛에 잠에서 깼다. 눈을 제대로 뜰 틈도 없이 마스크를 쓴 괴한은 박 전 최고위원의 이마에 도끼를 휘둘렀다. 놀란 박 전 최고위원은 “살려 달라”며 소리를 질렀고, 이 소리를 들은 아내 역시 잠에서 깼지만 괴한이 휘두른 도끼에 머리와 다리를 다쳤다. 이후에도 괴한은 가스총까지 발사해가며 계속 도끼를 휘둘렀고, 박 전 최고위원과 아내의 머리 등에 상처를 입혔다.

    다행히 도끼에 빗맞아 정신을 차린 박 전 최고위원과 그의 아내가 약 30분간 격투 끝에 괴한을 제압했고, 마스크를 벗기는 데 성공했다. 방바닥은 이미 박 전 최고위원 부부의 이마 등에서 흐른 피가 흥건한 상태. 마스크를 벗겨 괴한의 얼굴을 본 박 전 최고위원과 아내는 경악했다. 단순히 금품을 노린 강도라고 생각했던 괴한이 약 한 달 전까지 자신들의 집에 찾아오던 단골 목욕탕 구두닦이 윤모(56) 씨였기 때문이다. 윤씨와 박 전 최고위원은 어떤 사이이며, 왜 그는 박 전 최고위원을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하려 했던 것일까.

    이들의 ‘인연’이자 ‘악연’은 4년 6개월 전 시작된 윤씨의 소송에서 시작됐다. 윤씨는 2006년 6월께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내용은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광양~목포 구간 성전인터체인지 공사과정에서 훼손된 자신 소유의 땅 1322㎡(약 400평)에 대해 11억2500만 원을 보상해달라는 것. 당시 윤씨는 도로공사 측의 공사 사실을 미리 알고 자신의 땅에 무궁화 약 6000주를 심어놓은 상태였으며, 토지보상금으로 약 2000만 원을 책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2007년 6월께 윤씨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한국도로공사 측이 윤씨에게 59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담을 뛰어넘은 단골 목욕탕 구두닦이

    그러나 윤씨와 한국도로공사 모두가 재판 결과에 불복하면서 윤씨의 ‘소송 전쟁’이 시작됐다. 윤씨는 곧장 항소했고, 법원은 2008년 11월 ‘윤씨에게 1억95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조정안을 제시했다. 이 무렵 광주시 남구의 한 목욕탕에서 구두닦이로 일하던 윤씨는 그곳의 단골손님이던 박 전 최고위원과 알게 됐다. 평소 박 전 최고위원을 알고 있던 목욕탕 이발사가 연결해준 것. 윤씨와 박 전 최고위원이 동향(전남 강진)이어서 급속히 친해졌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경찰에서 그가 진술한 내용에 따르면 윤씨는 박 전 최고위원에게 법원의 조정 권유에 대해 자문했고, “조정을 받아들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대답을 들었다. 박 전 최고위원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 믿은 윤씨는 그에게 봉황삼으로 담근 술까지 선물하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박 전 최고위원을 등에 업고 재판 결과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윤씨의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총 3차례의 조정과 6차례의 재판 끝에 법원이 지난해 2월 윤씨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기 때문. 재판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윤씨는 2008년 12월께 ‘소송에 개입했다’며 박 전 최고위원을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이후 윤씨는 지난 3월 항소심이 기각돼 1심 재판 결과에 맞춰 토지보상금 5000만 원만 지급받을 처지가 되자 또다시 박 전 최고위원을 상대로 2억 원대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박 전 최고위원을 상대로 한 윤씨의 고소와 소송은 모두 무혐의 처분되거나 기각됐다.

    그는 왜 새벽에 도끼를 휘둘렀나

    11월 10일 새벽, 윤모 씨의 피습 직후 병원으로 후송 중인 박재순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모든 일이 박 전 최고위원 때문에 발생했다고 생각하게 된 윤씨는 급기야 수시로 박 전 최고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박 전 최고위원이 이를 받아주지 않자 윤씨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10월 초순 윤씨는 마지막으로 박 전 최고위원을 만나러 집까지 찾아갔지만 외출해 만날 수 없자 범행을 결심했다. 박 전 최고위원의 집에 몰래 들어가 가스총을 분사한 뒤 도끼를 휘두르는 것이다.

    윤씨는 이에 앞서 10월 중순 박 전 최고위원의 집을 사전 답사했다. 완전 범행을 노렸던 것이다. 이후 윤씨는 광주시 남구 주월동 의 철물점과 생활용품점에서 범행에 사용할 도끼, 드라이버, 마스크 등을 구입한 뒤 대검과 가스총까지 준비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윤씨는 11월 10일 새벽 0시께 풍암동 박 전 최고위원의 집 인근에 자신의 차량을 세워둔 뒤 인적이 드물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때를 기다리는 사이 차량에 보관돼 있던 낚싯대와 로프, 갈고리 등을 박 전 최고위원의 아파트 앞에 옮기기도 했다.

    박 前 최고 부적절 처신 지적도

    그는 왜 새벽에 도끼를 휘둘렀나

    이번 사건으로 구속 수감된 피의자 윤모 씨(사진). 그는 약 한 달 전까지 박재순 전 최고위원의 집까지 찾아오던 단골 목욕탕 구두닦이였다.

    같은 날 새벽 2시 40분. 박 전 최고위원의 집에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윤씨는 한쪽 끝에 갈고리를 단 로프를 낚싯대에 연결했다. 윤씨는 낚싯대를 길게 늘어뜨려 로프를 아파트 3층 박 전 최고위원의 집 베란다에 고정한 뒤 로프를 잡고 올라갔다. 당시 베란다 쪽 창문은 열려 있었다. 이후 윤씨는 손전등을 들고 박 전 최고위원의 집을 뒤졌으며, 놀라 잠에서 깬 박 전 최고위원 부부의 이마와 머리 등에 도끼를 휘두르고 가스총을 분사했으나 결국 제압당해 경찰에 붙잡혔다. 광주서부경찰은 11월 13일 윤씨를 박 전 최고위원을 살해하려 한 혐의(살인미수)로 구속했다.

    경찰에서 윤씨는 범행 이유 등을 진술하면서 박 전 최고위원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경찰에서 “박 전 최고위원을 처음 만났을 때 하늘에서 신이 내려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리 재판이 꼬이기 시작했다. 분노가 치밀었다”고 진술했다. 윤씨는 박 전 최고위원이 자신 앞에서 법원 관계자에게 전화해 “억울한 사람이 생기면 안 된다”며 정확한 판결을 주문한 것을 봤다고 말했다. ‘하늘에서 내리신 분’을 확신한 것도 이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고 덧붙였다.

    전화 내용이 원론적이라고 해도 전라남도 기획관리실장과 한나라당 전남도당 위원장 등을 지낸 박 전 최고위원으로선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대목. 박 전 최고위원은 처음엔 선의로 도와주려 했지만 윤씨가 소송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을 보고 멀리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한편 윤씨를 조사했던 경찰 관계자는 “상당한 피해의식과 집착 증세를 보였다. 소송의 실패를 모두 박 전 최고위원 탓으로 여기는 분위기였으며, 소송에 모든 초점을 맞춘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의 동생 역시 “형님이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치료를 받다가 숨졌으나 찾아뵙지도 않을 정도였다”고 말해 소송에 대한 그의 집착을 짐작게 했다.

    일각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박 전 최고위원의 금품 수수와 ‘윗선과의 접촉’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피의자 윤씨 역시 경찰에서 이러한 내용은 진술하지 않았다.

    현재 광주지역에서는 구두닦이 생활을 하던 윤씨가 아버지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않을 만큼 토지보상 소송에 ‘올인’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박 전 최고위원에게 한풀이를 시도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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