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과 아이폰, 무선인터넷으로 무장한 코피스족에게 커피숍은 도서관이요, 사무실이다.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켜고 일하거나 공부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지자 그들을 지칭하는 ‘코피스족’(coffice族·coffee와 office를 합친 말)이란 말까지 생겼다. 신인류 코피스족은 넷북과 스마트폰, 무선인터넷으로 무장한 ‘디지털 유목민’으로 이들을 잡기 위해 커피전문점은 물론 패스트푸드점까지 나섰다.
평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할리스커피 매장. 시끌벅적한 1층과 달리 2층으로 올라가니 20여 명의 손님이 널찍이 떨어져 앉아 제각기 뭔가에 열중하고 있다. 대부분 20, 30대로 그중 몇 명은 노트북을 펼쳐놓고 있다. 테이블에 책과 메모지 등을 늘어놓고 공부 중이던 대학생 강보연(27) 씨는 “이 앞 어학원에서 통·번역 수업을 듣는데, 매일 수업 전후 시간이 날 때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한편 구로구 가산디지털단지 앞 스타벅스 매장은 흰색 반팔 셔츠에 양복바지 차림의 직장인들로 붐빈다. 애플 노트북에 연결된 마우스를 쉴 새 없이 클릭하는 강정모(32) 씨. 근처 IT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그는 며칠 뒤 있을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준비 중이다. 강씨는 “답답한 사무실과 달리 여기서는 흡연석에 앉아 일하면서 담배도 필 수 있고, 맛있는 커피도 마실 수 있어 최고의 ‘리프레싱(refreshing)’ 장소”라고 말했다.
커피도 즐기고 무선인터넷도 사용하고
이처럼 상당수 학생, 직장인이 업무와 공부를 위해 커피전문점을 찾는다. 이화여대 앞 할리스커피 매장에서 근무했던 박지영 씨는 “그곳 손님 중에는 프리랜서, 강사, 교수 등이 많고 외근이 잦은 제약사 영업직이나 회계사도 많았다”고 했다. 사무실에 얽매어 있어야 하는 회사원들에게야 코피스족이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비교적 일하는 데 제약이 적은 직종의 사람들은 커피숍에서 업무 처리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내전화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받을 수 있게 연결하고, 사내 메신저나 e메일을 이용하면 되니 불편함이 없다. 회계사 김모 씨는 “감사 기간에는 클라이언트 회사에서 외근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회사와 먼 곳의 일을 맡으면 업무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 대신 근처에서 바로 정리하는 게 효율적이라 커피전문점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코피스족이 커피전문점을 찾는 최대의 이유는 무선인터넷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료 인터넷 때문에 스타벅스를 찾는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 스타벅스는 2003년부터 무선인터넷 사용이 가능한데, 2008년부터는 모두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할리스커피는 KT네스팟을 설치해 네스팟 가입자가 인터넷을 쓸 수 있는데 최근에는 KT 쿡앤쇼존을 구축해 가입자가 아니라도 와이파이를 무료로 쓸 수 있다.
이런 서비스에 대한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자 패스트푸드점과 패밀리 레스토랑까지 무선인터넷 제공에 나섰다. 롯데리아는 6월 ‘T와이파이존’을 구축해 전국 840여 개 매장 모두에서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고, 패밀리 레스토랑인 TGI 프라이데이스도 와이파이를 제공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런 공간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또 있다. 딱딱한 사무실과 달리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라는 것. 할리스커피 명동점은 아예 4층을 코피스족을 위한 비즈니스 공간으로 꾸며 밝은 조명에 푹신한 소파는 기본이고, 여기에 유리 박스로 분리된 별도의 회의·세미나 공간까지 제공한다.
이러한 코피스족의 증가에 대해 업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커피도 안 마시고 무선인터넷만 쓰는 ‘얌체족’과,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종일 노트북만 쓰는 ‘죽돌이’(온종일 자리만 차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은어)로 인해 테이블 회전이 안 되면 그만큼 손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롯데리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만큼 고객만족도가 높아져서 괜찮다”고 말했다. 일종의 ‘기프트 마케팅’인 셈. 할리스커피 지철우 대리는 “이미 경쟁 업체들이 코피스족을 위한 서비스를 하고 있어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속내를 보였다.
커피빈은 no-무선인터넷 차별화
그런데 오히려 커피전문점이 무선인터넷을 제공함으로써 이미지가 좋아진 것은 물론 ‘새로운 고객군’의 등장으로 매출이 증가했다는 분석도 있다. 일단 코피스족이 되면 그 커피숍의 충성도 높은 고객이 된다는 것. ‘스타벅스 100호점에 숨겨진 비밀’의 저자인 중소기업혁신경영전략연구원 맹명관 전임교수는 “스타벅스는 커피가 아닌 문화를 파는 곳이다. 스타벅스의 타깃과 무선인터넷 주고객층이 일치하므로 스타벅스는 무선인터넷을 제공해 노트북을 쓰는 20, 30대 고객을 자신의 매장으로 끌어냈고 그 결과 매출도 신장시킬 수 있었다”는 것. 게다가 고객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적극 제공한다는 긍정적인 이미지도 쌓았다.
스타벅스에서 무선인터넷을 쓰려면 이름,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의 우려가 있다. 일각에서는 “개인정보가 제휴된 쇼핑몰에 넘어가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한다. 이에 3월부터 스타벅스와 제휴해 무선인터넷을 제공하는 G마켓의 관계자는 “우리는 금액을 협찬하고 광고할 뿐, 개인정보는 전혀 수집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스타벅스 박한조 홍보담당도 “실명인증은 타 용도로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 법률 및 동법 시행령에 따라 이용자 수가 10만 명 이상인 웹사이트의 경우 개인정보 도용을 방지하기 위해 실명인증이 필수다. 박씨는 “제한적으로 본인을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KT 쪽에 자료가 남긴 하나, 이는 훗날 수사 협조 등 공익적으로 쓸 목적이지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스타벅스의 라이벌, 커피빈에는 무선인터넷은커녕 고객이 사용할 수 있는 매장 내 콘센트도 없다. 직장인 박지영(27) 씨는 “급하게 무선인터넷 쓸 일이 있어 커피빈에 갔다가 무선인터넷이 안 돼 커피값만 날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커피빈 정민경 주임은 “2, 3년 전 어린아이가 콘센트에 포크를 넣는 사고가 있어 매장 내 콘센트를 없앤 것이지 노트북 사용자를 줄이려는 의도는 아니다”라고 했다. 또한 “무선인터넷 제공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지만 이미 스마트폰, KT와이브로 등이 대중화돼 고객들이 각자 무선인터넷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굳이 매장에서 제공하지 않아도 노트북 이용객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에 맹 교수는 “커피빈의 ‘no-무선인터넷’ 정책은 스타벅스와 달리 커피빈은 ‘커피’ 자체를 즐기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굳혀 차별화하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