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옥숙과 더블 캐스팅으로, 삶을 정리하는 엄마 역을 맡은 정애리. 그의 뛰어난 연기력은 무대 위에서도 빛을 발했다.
연극무대로 옮겨온 그의 드라마는 어떤 모습일까. 1996년 말 방영됐던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연극으로 무대에 올랐다. 방영 당시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백상예술대상과 한국방송대상에서도 수상한 작품.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중년 여성이 가족과 이별해 삶의 마지막 시간을 정리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기대를 지나치게 한 탓일까. 연극무대에서는 노희경의 감수성이 크게 빛나진 못했다. 연극의 문법에 맞는 각색과 연출이 부족했기 때문. 줄거리만 보면 진부한 작품이지만 그 진부함이 드라마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야기가 잔잔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말맛을 살린 대사가 적재적소에서 튀어나와 가슴을 울려주었고, 카메라 앵글과 편집의 묘미를 통해 주제의 전달력을 배가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롱 테이크로 펼쳐지는 연극무대에서는 좀 더 짜임새 있게 압축된 대본과 리듬감 있는 장면 구성이 필요하다.
사실 이야기의 진부함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를 통해 일상에서 간과했던 어머니와 가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면 의의가 있다. 이런 경우 ‘어떻게’ 이야기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아쉬운 점이다. 무대에서 딸의 시점을 부각했다면 더욱 섬세하고 설득력 있는 짜임새가 되지 않았을까. 3년 전 작가는 개인적으로 어머니를 여의었고, 자신의 가슴 저린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연출은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등으로 수많은 ‘폐인’을 만들어낸 이재규 PD가 맡았다. 드라마와 연극의 문법이 다른 탓일까. 그의 연출은 무대에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무대는 전환이 거의 없는 단일 세트였는데 2층은 지나치게 높고, 1층은 효율적으로 사용되지 못한 데다 무대 전반적으로 양식이 통일되지 않았다. 공간 분할이나 등장인물의 등장과 퇴장 동선도 난삽했고 모호했다. 음악, 음향도 작품의 흐름을 살려주는 구실을 못했다. 특히 타이밍이 장면의 구성과 좀 더 맞아떨어지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작품의 기저에 있는 따뜻한 시선은 감동을 주었고, 유머와 아이러니가 곁들여진 위트 있는 대사가 묘미였다. 사실적 캐릭터가 공감대를 이끌어냈으며 ‘엄마’의 죽음이라는 모티프는 남녀노소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송옥숙, 정애리, 최정우, 이용이 같은 연륜 있는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였다. 특히 송옥숙과 정애리는 거의 모든 장면을 자연스러우면서도 긴장감 있게 이끌어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엄마와 함께 관람하길 권한다. 대학로문화공간 이다1관, 7월 18일까지, 문의 766-6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