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약진’했지만 한나라 텃밭 여전}
경남 창녕군 길곡면 오호리 함안보 공사 현장. 가물막이 안에서 보 구조물 공사가 한창이다.
낙동강이 흐르는 영남지역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이자 한나라당의 텃밭. 그만큼 4대강을 둘러싸고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마찰음은 거의 없었다. 6·2지방선거를 치르면서도 일부 지역에서 ‘무소속 약진’ 현상이 나타났지만, 결과는 여전히 여대야소(與大野小)다.
경북은 한나라당 김관용 도지사가 재선에 성공했고, 기초단체장 23명 중 한나라당 소속이 16명(무소속 6명, 미래연합 1명)으로 여전히 한나라당이 압도적이다. 대구 역시 한나라당 김범일 시장이 재선에 성공했다. 8곳의 기초단체 중 한나라당은 6곳을 차지했고 광역의원은 전체 29명 중 27명, 기초의원은 116명 중 80명이 한나라당이다.
부산 역시 한나라당 허남식 시장이 3선에 올랐다. 기초단체 13곳 중 3곳에서 한나라당 깃발이 꽂혔고 광역의원 40명(총 47명), 기초의원 109명(총 182명)의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다.
다만 경남은 ‘4대강 반대’를 분명히 한 김두관 도지사가 당선되면서 마찰음이 현실화했다. 김 도지사는 6월 14일 취임에 앞서 도지사직 인수위원들과 낙동강 18공구 함안보(洑)와 15공구 밀양 낙동강 둔치 현장을 방문해 “4대강 사업 재고를 강력히 건의할 생각”이라며 반대 의사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경남 역시 전체 18개 기초단체장 중 11곳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고 광역의원 54명 중 38명이 한나라당 소속이어서 김 도지사를 향한 견제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도내 유일한 민주당 소속 김맹곤 김해시장도 선거 당시에는 당론을 따라 ‘반대’ 뜻을 밝혔다. 김해시 기초의원은 여느 지역과 달리 한나라당 소속 9명, 민주당 8명, 민주노동당 1명으로 여야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낙동강 유역의 기초단체장만 놓고 보면, 전체 29명 중 김맹곤 김해시장만 반대 의사를 보였다.
{낙동강 유역 민심 르포
“비만 오면 토사 범람 … 견제도 견제 나름”}
(왼쪽)함안보 공사로 인근 지역의 땅값이 들썩하면서 부동산 매매 전단이 나붙었다. (오른쪽)준설토를 실은덤프트럭이 분주히 오간다.
지난해 10월 착공한 함안보 공사 현장은 내년 12월 완공이 목표. 낙동강 영역에서는 8개의 보와 31개의 농업용 저수지 및 3개 신규 댐 건설, 생태하천(407km)과 자전거도로(743km) 조성이 핵심 사업으로 8개 보가 같은 기간에 완공된다.
“준설토는 창녕군 남지리에 마련된 골재적치장에 쌓거나, 함안군 칠북면 덕남리 등에 있는 농경지 리모델링 현장으로 옮긴다. 농경지 리모델링을 원하는 농민이 많아 준설토가 모자랄 지경이다.”
한국수자원공사 함안보 건설단 이상록 차장의 설명이다. 그는 “6~8월 집중 우기에 대비해 지난 4월부터 24시간 공사를 하고 있으며 현재 공정률은 27% 정도”라고 덧붙였다. 밤낮 없는 ‘4대강 속도전’에 ‘준설토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일각의 예상은 적어도 이곳에선 빗나갔다.
다음 날 찾은 달성보 공사 현장(대구 달성군 농공읍 하리)은 이미 1단계 공사를 끝마치고 생태하천 고수부지 준설 작업에 돌입한 상태였다. 이곳의 강 전체 폭은 580m. 강의 좌우 2단계로 나눠 공사를 진행하는 함안보와 달리 강의 중앙, 우측, 좌측 3단계로 나눠 공사를 진행한 결과였다. 5월 21일 강 중앙에서 9.5m 높이의 1단계 보 공사를 마쳤고, 가물막이도 이미 철거했다. 달성보는 지난해 12월 2일 이명박 대통령 등이 참석해 ‘낙동강 희망선포식’이 열려 국민의 주목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달성보의 공정률은 29.3%로 함안보보다 조금 빠르다. 달성보 현장은 대구시에 있어 웬만한 중장비는 지역에서 빨리 조달할 수 있었다. 2단계 공사는 우기가 끝나는 9월 시작할 예정이다.”
한국수자원공사 달성보 건설단 김성효 차장은 공사에 참여한 건설업체는 모두 10곳인데 중앙과 지역 건설업체가 각각 5곳이어서 지역 경제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1단계 보 공사는 끝났지만 하천 준설 작업은 계속됐다. 10여 대의 굴착기는 여전히 준설토를 퍼 올렸고, 덤프트럭이 부지런히 실어 날랐다. 이곳 준설토 역시 현재는 농경지 리모델링에 사용하고 있지만, 경남 고령군 송곡리와 오곡리 골재적치장에 쌓을 예정이다.
김 차장은 “4대강 사업에 대해 부정적인 말이 많아 힘 빠지기도 하지만 사업 평가는 후대가 해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1단계 보 공사를 마친 달성보(대구 달성군 하리) 현장. 2단계 공사는 우기가 끝나는 9월에 시작된다.
경남 밀양에서 함안보 공사 현장을 구경하러 왔다는 김장연(73) 씨의 말이다.
“낙동강은 비만 오면 매번 토사가 범람했다. 준설 작업을 벌써 했어야지. 전두환 정권 때 한강 준설 작업을 하니 얼마나 말 많았나. 그래도 해놓으니까 좋다.”
같이 온 친구 이종락(73) 씨와 이영식(73) 씨는 4대강 사업 반대를 주장하는 야당을 이해할 수 없다며 얘기 한 자락 거든다.
“홍수 피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으니까 좋다. 생태계 파괴 문제도 있겠지만 낙동강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물론 야당의 견제도 필요하지만, 그것도 정도껏 해야지 너무 심하다.”
창녕군 유어면에서 만난 성낙심(79) 씨의 반응도 비슷했다.
“오랫동안 고여 있던 것들을 치워준다는데 왜 반대하나. 나는 속이 다 시원하더라. 야당은 그 좋은 것을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명박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노년층은 일방적 지지였다면 청·장년층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득실에 따라 다른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창녕군 길곡면의 한 양파밭에서 만난 대학생 신모(20) 씨는 “국유지는 몰라도 사유지 주민들은 땅값도 오르고 고향이 발전한다고 좋아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달성군 화원읍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서준(38) 씨는 30대에선 막연히 좋아질 거라는 기대만 할 뿐 큰 관심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 또래 친구들은 4대강 사업과 직접 연관이 없어 관심이 덜하다. 서울의 청계천처럼 잘 지어놓으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 정도랄까. 꼭 해야 하는지는 사실 모르겠다.”
“‘정치쇼’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 푸념도
창녕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곽모(49) 씨는 “공사 현장 사람들은 함바집(공사장 밥집)에서 먹지 여기까지 안 온다. 나는 땅도 없어 땅값이 올라도…. 다만 경제가 회복되기만 바라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곽씨는 함안보가 완성돼 관광객이 많이 찾기를 기대하고 있다.
땅값 오름세 때문에 ‘진짜 농사꾼’ 사이에는 푸념도 흘러나왔다. 이들은 보통 자신의 땅과 임대한 남의 땅에 농사를 짓는데 땅값이 오르면 임대료도 오르기 때문. 17년간 창녕 일대에서 농사만 지었다는 차모(47) 씨의 말이다.
“땅값이 들썩거리는데, 오르면 농사짓기 더 어려워진다. 뼈 빠지게 농사지어봤자 임대료 내기도 어렵고, 내 땅을 살 수 있다는 꿈도 사라진다. 보를 만들어 관광지가 되면 마을이야 발전하겠지만, 우리 같은 농사꾼에겐 무슨 도움이 되겠나. 오염된 강을 깨끗하게 한다는 건 이해하지만 서민 생각도 좀 해야지. ‘정치 쇼’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겠나. ”
차씨가 이야기 도중 답답한 듯 담배를 한 대 피우자 옆에서 조용히 일하던 그의 아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결국은 외지 사람들만 득 본다. 이곳 땅 주인은 대부분 외지 사람이다.”
그렇다면 영남지역 단체장 중 유일하게 ‘4대강 반대’를 천명한 김두관 경남도지사에 대한 기대는 어떨까. 지난해까지 낙동강 주변 국유지에서 과수(果樹) 농사를 지었다는 60대 농부는 고개를 갸웃했다.
“평당 1만 원씩 해서 보상도 다 받았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용 있나. 나라에서 하는 사업인데 도지사 한 사람이 반대한다고 되나. 방법이 없지.”
그는 자신 소유의 땅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경남 김해시 대동면에 사는 김석규(42) 씨는 “김해시의 경우 지장물 보상 등 지자체 보상이 당초 계획의 절반이 넘었다. 김맹곤 김해시장이 민주당 소속이어서 4대강 사업을 반대한 거지, 행정가로서는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전망했다.
4대강 사업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됐다는 지적도 있다. 부산에서 직장을 다니는 성경호(40) 씨는 “이명박 정부가 합의 절차 없이 일을 밀어붙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임기 안에 그 큰 국책사업을 끝낸다는 게 말이 되나”며 언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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