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각국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동원해 경기부양에 나서면서 ‘세수 부족’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더욱이 베이비붐 세대가 향후 9년에 걸쳐 모두 은퇴하면 경제활동가능 인구가 165만 명이나 적어지고, 세수도 연간 7조7000억 원씩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각국 정부는 부족한 세수를 마련하고, 세출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재정건전성 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와중에 금지금(金地金) 유통을 악용한 탈세행위로 3조 원에 이르는 국세가 고스란히 탈세 혐의자들에게 빠져나갈 위험에 처했다.
금지금은 금괴, 골드바 등 원재료 상태로 순도 99.5% 이상인 금을 말한다. 부가가치세(이하 부가세) 과세 대상으로 분류돼 있으나, 2003년 정부는 금시장 양성화와 수출 촉진을 위해 일정 요건을 갖춘 도매상 및 수출업체에 부가세를 면세하는 특례제도를 도입했다. 금지금은 △ 귀금속 자체가 돈보다 가치가 많고 △ 환금성이 좋으며 △ 거래 특성상 가격이 몇 분 단위로 빠르게 변하는 특징을 지닌다. 또한 관세 등으로 국내 금 시세는 국제 시세 대비 103.4% 이하로는 거래될 수 없다.
탈세 혐의자들 허위거래 면죄부?
금지금 거래를 이용한 부가세 포탈의 모형은 ‘금지금 수입업체 → 폭탄업체 → 금지금 수출업체’로 단순하다. 폭탄업체는 노숙인처럼 세금이 부과되면 결손 처분을 할 수밖에 없는 담세 무능력자들 즉 자기 자금으로 실물을 구입할 수 없는 사람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과세관청과 수사기관의 조사에 대비하거나 적법한 거래로 꾸미기 위해 수입업체와 폭탄업체 사이에 1차 도매업체(속칭 면세도관업체)를 개입시키고, 폭탄업체와 수출업체 사이에 3차 도매업체(속칭 과세도관업체)를 개입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관업체는 오로지 금지금의 거래를 사실인 것처럼 꾸미기 위한 완충 구실을 위해 설립한 것으로, 그 업무는 세금계산서의 수취와 발급에 국한돼 일상적인 사업장조차 갖추고 있지 않다.
면세거래 특례로 부가세 없이 금을 사들인 폭탄업체는 면세 금지금을 즉시 과세로 전환 판매하는 형식으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한다. 이후 폭탄업체는 1분기에 부가세를 납부하지 않고 폐업하고, 매입 세금계산서를 받은 수출업체는 금지금 수출 후 폭탄업체가 납부하지 않은 부가세 전액을 부정환급 받는다(그림 참조). 이 과정은 폭탄업체는 물론 중간 도관업체·수출업체까지 공모해 짧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이틀 만에 끝난다.
그동안 과세당국은 폭탄업체를 자료상으로 보고, 수출업체는 가공 세금계산서를 수취했다는 이유로 매입세액을 공제하지 않았다. 자료상이란 통상 실물거래 없이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교부해 허위 자료를 수취한 상대방으로 하여금 부가세 등을 부정하게 공제받을 수 있게 해줌으로써 그 대가로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 자를 말한다. 무자료로 물품을 판매한 자의 허위 세금계산서를 대신 받아 외견상 그 거래를 정당화해주며, 실물 없는 가공의 허위 세금계산서를 수취하는 사업자는 가공 원가를 계산해 법인세를 줄이거나 비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에서 금지금 실물 수출이 확인된 이상 가공 세금계산서 수취를 이유로 매입세액을 불공제할 수 없다고 판결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2008년 12월 대법원은 판례를 변경해 “공급자가 사실과 다르다거나 명목상의 거래라는 주장만으로는 실물이 거래된 사실이 인정되는 한 매입세액 불공제 사유가 안 된다”며 국가 패소 판결을 내렸다. 즉, 금 도매업자들이 탈세를 위해 허위 거래를 했다는 점을 국가가 더욱 엄격히 입증하라는 것.
한 법률전문가는 “과세관청 스스로가 폭탄자료상에 대해 조세포탈범으로 고발하는 데서는 실제 거래라고 주장하고, 부가세 부과처분의 다툼에선 명목상의 거래라 주장하는 모순을 보였다. 대법원이 명목상의 거래 입증 책임을 과세관청에 지움으로써 폭탄영업 거래에 대해 명목상의 거래라는 이유로 매입세액 불공제에 해당한다는 논리는 그 기반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판례 변경 전까지 확정판결이 난 26건 중 23건은 국가 승소가 확정돼 1417억 원의 포탈 세금이 환수됐지만, 판례 변경 이후 국가 패소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위장 세금계산서가 발행됐다는 정황이 명백한데도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하기 때문에 과세관청에선 더 이상의 증거를 찾기가 불가능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유류, 비철금속, 컴퓨터칩 등으로 확대
폭탄자료상은 조세포탈범으로 고발만 되고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 조세포탈범으로 고발되면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로 처벌되므로, 폭탄자료상은 검찰에선 실물은 본 적이 없고 세금계산서만 발행한 자료상이라고 주장해 질서범으로 기소된다. 국세청 관계자는 “초범은 기소유예나 집행유예로 석방된다. 누군가가 변호사 비용을 부담해주는데 (폭탄자료상들은) 석방되면, 다시 실물거래를 했다고 말을 번복한 뒤 수취자에게 확인서 등을 써주고 수출업체가 매입세액을 공제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폭탄자료상은 대형화되고 그 수법 또한 대담해졌다. 허위 세금계산서를 보통 3개월에 500억~1000억 원대까지 발행한다. 이에 대한 부가세만 50억 원 이상 부당 공제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50억 원이면 안 되는 게 없다. 폭탄자료상에게 5억 원 정도 주고 도피시키고, 폭탄자료상이 수사당국에 잡히면 형사사건 변호사 비용으로 5억 원을 쓰고 환급 받아간 사업자에게 5억 원, 수출업체에 10억 원을 나눠줘도 25억 원이 남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5년도에 간이과세자 160만 명이 납부한 부가세액이 4561억 원에 불과한데 금지금을 수출하는 형식으로 부정환급된 총액이 3조 원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비단 부정환급이 금지금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환금성이 빠른 유류, 휴대하기 간편한 컴퓨터칩, 오래 두어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 비철금속 등을 이용해 부정 매입세액을 공제받기 위한 폭탄자료상이 확산되고 있다. 고철을 수집하면서 폭탄 세금계산서만을 수취해 매입세액으로 공제하는 제철소 등은 오래전부터 소액으로 관행화됐지만, 지금은 고철 폭탄자료상도 대형화하는 추세다. 국세청 관계자는 “부가세 제도가 부정환급 조직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는데도 막을 방법이 없다면 성실 납세의식이 무너지고 국가 재정도 위협받는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법원은 똑같은 유형의 금지금 탈세 소송이 들어오면 바뀐 판례를 적용해 심리를 하지 않고 ‘심리 불속행’으로 국가 패소 판결을 잇따라 내렸다. 그러나 “판례 변경으로 부정환급된 막대한 세금을 환수할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서울고검 송무부와 국세청 등 국가 측이 새로운 증거와 논리를 제출하면서 대법원은 ‘심리 속행’으로 지정하고 심리에 나섰다. 국세청 관계자는 “금지금 사건이 개별 사건으로 소송이 제기되면서 미처 대법원이 사회에 미칠 파장까지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 심리 속행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바란다”고 말했다.
금지금은 금괴, 골드바 등 원재료 상태로 순도 99.5% 이상인 금을 말한다. 부가가치세(이하 부가세) 과세 대상으로 분류돼 있으나, 2003년 정부는 금시장 양성화와 수출 촉진을 위해 일정 요건을 갖춘 도매상 및 수출업체에 부가세를 면세하는 특례제도를 도입했다. 금지금은 △ 귀금속 자체가 돈보다 가치가 많고 △ 환금성이 좋으며 △ 거래 특성상 가격이 몇 분 단위로 빠르게 변하는 특징을 지닌다. 또한 관세 등으로 국내 금 시세는 국제 시세 대비 103.4% 이하로는 거래될 수 없다.
탈세 혐의자들 허위거래 면죄부?
금지금 거래를 이용한 부가세 포탈의 모형은 ‘금지금 수입업체 → 폭탄업체 → 금지금 수출업체’로 단순하다. 폭탄업체는 노숙인처럼 세금이 부과되면 결손 처분을 할 수밖에 없는 담세 무능력자들 즉 자기 자금으로 실물을 구입할 수 없는 사람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과세관청과 수사기관의 조사에 대비하거나 적법한 거래로 꾸미기 위해 수입업체와 폭탄업체 사이에 1차 도매업체(속칭 면세도관업체)를 개입시키고, 폭탄업체와 수출업체 사이에 3차 도매업체(속칭 과세도관업체)를 개입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관업체는 오로지 금지금의 거래를 사실인 것처럼 꾸미기 위한 완충 구실을 위해 설립한 것으로, 그 업무는 세금계산서의 수취와 발급에 국한돼 일상적인 사업장조차 갖추고 있지 않다.
면세거래 특례로 부가세 없이 금을 사들인 폭탄업체는 면세 금지금을 즉시 과세로 전환 판매하는 형식으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한다. 이후 폭탄업체는 1분기에 부가세를 납부하지 않고 폐업하고, 매입 세금계산서를 받은 수출업체는 금지금 수출 후 폭탄업체가 납부하지 않은 부가세 전액을 부정환급 받는다(그림 참조). 이 과정은 폭탄업체는 물론 중간 도관업체·수출업체까지 공모해 짧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이틀 만에 끝난다.
그동안 과세당국은 폭탄업체를 자료상으로 보고, 수출업체는 가공 세금계산서를 수취했다는 이유로 매입세액을 공제하지 않았다. 자료상이란 통상 실물거래 없이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교부해 허위 자료를 수취한 상대방으로 하여금 부가세 등을 부정하게 공제받을 수 있게 해줌으로써 그 대가로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 자를 말한다. 무자료로 물품을 판매한 자의 허위 세금계산서를 대신 받아 외견상 그 거래를 정당화해주며, 실물 없는 가공의 허위 세금계산서를 수취하는 사업자는 가공 원가를 계산해 법인세를 줄이거나 비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에서 금지금 실물 수출이 확인된 이상 가공 세금계산서 수취를 이유로 매입세액을 불공제할 수 없다고 판결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2008년 12월 대법원은 판례를 변경해 “공급자가 사실과 다르다거나 명목상의 거래라는 주장만으로는 실물이 거래된 사실이 인정되는 한 매입세액 불공제 사유가 안 된다”며 국가 패소 판결을 내렸다. 즉, 금 도매업자들이 탈세를 위해 허위 거래를 했다는 점을 국가가 더욱 엄격히 입증하라는 것.
한 법률전문가는 “과세관청 스스로가 폭탄자료상에 대해 조세포탈범으로 고발하는 데서는 실제 거래라고 주장하고, 부가세 부과처분의 다툼에선 명목상의 거래라 주장하는 모순을 보였다. 대법원이 명목상의 거래 입증 책임을 과세관청에 지움으로써 폭탄영업 거래에 대해 명목상의 거래라는 이유로 매입세액 불공제에 해당한다는 논리는 그 기반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판례 변경 전까지 확정판결이 난 26건 중 23건은 국가 승소가 확정돼 1417억 원의 포탈 세금이 환수됐지만, 판례 변경 이후 국가 패소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위장 세금계산서가 발행됐다는 정황이 명백한데도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하기 때문에 과세관청에선 더 이상의 증거를 찾기가 불가능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유류, 비철금속, 컴퓨터칩 등으로 확대
폭탄자료상은 조세포탈범으로 고발만 되고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 조세포탈범으로 고발되면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로 처벌되므로, 폭탄자료상은 검찰에선 실물은 본 적이 없고 세금계산서만 발행한 자료상이라고 주장해 질서범으로 기소된다. 국세청 관계자는 “초범은 기소유예나 집행유예로 석방된다. 누군가가 변호사 비용을 부담해주는데 (폭탄자료상들은) 석방되면, 다시 실물거래를 했다고 말을 번복한 뒤 수취자에게 확인서 등을 써주고 수출업체가 매입세액을 공제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폭탄자료상은 대형화되고 그 수법 또한 대담해졌다. 허위 세금계산서를 보통 3개월에 500억~1000억 원대까지 발행한다. 이에 대한 부가세만 50억 원 이상 부당 공제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50억 원이면 안 되는 게 없다. 폭탄자료상에게 5억 원 정도 주고 도피시키고, 폭탄자료상이 수사당국에 잡히면 형사사건 변호사 비용으로 5억 원을 쓰고 환급 받아간 사업자에게 5억 원, 수출업체에 10억 원을 나눠줘도 25억 원이 남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5년도에 간이과세자 160만 명이 납부한 부가세액이 4561억 원에 불과한데 금지금을 수출하는 형식으로 부정환급된 총액이 3조 원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비단 부정환급이 금지금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환금성이 빠른 유류, 휴대하기 간편한 컴퓨터칩, 오래 두어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 비철금속 등을 이용해 부정 매입세액을 공제받기 위한 폭탄자료상이 확산되고 있다. 고철을 수집하면서 폭탄 세금계산서만을 수취해 매입세액으로 공제하는 제철소 등은 오래전부터 소액으로 관행화됐지만, 지금은 고철 폭탄자료상도 대형화하는 추세다. 국세청 관계자는 “부가세 제도가 부정환급 조직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는데도 막을 방법이 없다면 성실 납세의식이 무너지고 국가 재정도 위협받는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법원은 똑같은 유형의 금지금 탈세 소송이 들어오면 바뀐 판례를 적용해 심리를 하지 않고 ‘심리 불속행’으로 국가 패소 판결을 잇따라 내렸다. 그러나 “판례 변경으로 부정환급된 막대한 세금을 환수할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서울고검 송무부와 국세청 등 국가 측이 새로운 증거와 논리를 제출하면서 대법원은 ‘심리 속행’으로 지정하고 심리에 나섰다. 국세청 관계자는 “금지금 사건이 개별 사건으로 소송이 제기되면서 미처 대법원이 사회에 미칠 파장까지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 심리 속행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