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철·김인환 지음/ 동아일보사 펴냄/ 402쪽/ 2만 원
그러나 이러한 시각을 ‘유럽중심주의’라 비판하더라도 15세기 초 인구 100만 명에 불과했던 작은 나라 포르투갈이 어떻게 해상권을 장악했고, 세계 경영에 앞장서게 됐는지의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는다. ‘지도 위의 전쟁’의 저자 서정철·김인환 교수는 ‘고지도’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지도 제작의 학문적 이론을 세우고 어떤 원칙에 따라 지도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고대 그리스 때부터였고, 이를 집대성한 이가 그리스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였다. 고대 그리스 문명이 사라진 뒤 이들의 천문학과 지리·지도학을 이어받은 것은 아랍·이슬람 문화권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서’는 8세기에 아랍어로 번역됐고, 아랍·이슬람 지도에 처음으로 한반도가 등장한다. 12세기 지도제작자였던 알 이드리시가 그린 아시아 지도에는 형태는 정확하지 않으나 ‘sila(신라)’라는 지명이 나온다. 이들이 어떤 계기로든 동쪽 끝에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후 르네상스 바람을 타고 유럽에서 가장 먼저 지도 제작을 시작한 것은 이탈리아였지만 과실은 포르투갈이 땄다. 포르투갈 해군이 해상에서 아랍 세력을 쫓아내고 동방무역을 독점하는 과정에서 아랍 상선으로부터 지도를 포함한 다양한 지리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포르투갈 고지도에 한국이 비교적 정확한 형태로 그려져 있고 국명은 ‘코리아(Coria)’, 동해는 ‘한국해’로 표기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음성학적으로 볼 때 Coria는 아랍어의 Cory에 어미 a가 첨가되면서 y가 i로 바뀐 것이다. 오늘날에도 아랍·이슬람인들은 한국을 ‘코리’라고 부른다.
포르투갈은 아랍·이슬람의 지리 정보를 토대로 자신들이 개척한 탐사 자료를 추가하며 지도 제작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16세기 말 에스파냐가 포르투갈을 정복하면서 포르투갈은 동방무역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잃었고 지도 제작 역시 중단 상태에 놓였다. 이 틈을 타 재빠르게 해상무역와 지도 제작을 주도한 것이 네덜란드였다. 이화여대 김인환 명예교수는 고지도의 역사가 바로 문명의 흥망성쇠와 궤적을 함께한다고 말한다.
“르네상스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부흥하기 시작한 고지도는, 지중해 문명이 힘을 잃어가면서 당시 해양국가로 떠오르는 신흥강자 포르투갈·에스파냐로 넘어갔다가, 포르투갈이 에스파냐에 합병되면서 무역대국을 꿈꾸던 네덜란드로 주도권이 넘어갔다. 이후 고지도의 주도권은 프랑스로, 그리고 세계의 바다를 차지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으로 옮겨갔다.”
이처럼 해상 팽창의 시대에 지도 제작은 곧 국력의 척도였고, 우리는 고지도 연구를 통해 문명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놓쳐서는 안 될 대목은 고지도에 새겨진 한국의 흔적이다. 동해연구회 이사로 동해 관련 고지도 연구와 수집에서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외국어대 서정철 명예교수는 특히 ‘고지도에 나오는 이름(지명)’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리아’라는 명칭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동해라는 이름은 고지도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압록강과 두만강은 우리 영토의 경계선인가, 독도는 정말 우리 땅인가 등 한국과 관계되는 문제의 해답을 상당 부분 고지도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도 위의 전쟁’을 읽다 보면 군데군데 숨은그림찾기처럼 서정철·김인환 부부가 서양 고지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경위와 고지도 수집 과정이 소개돼 있다. 이를 통해 부부 불문학자가 취미로 시작한 고지도 수집이 여생을 바칠 탐구의 대상이 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고지도의 가장 큰 매력은 그것을 뚫어지게 보고 있으면 시간적으로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를 투영하는 환상을 준다는 것이다. 일종의 타임머신이라고 할까. 마치 자기 자신이 득도를 위한 수행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2004년 저자들은 30년 동안 수집해온 180여 점의 고지도와 관련 문헌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