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특급 호텔 못지않은 VIP 병실. 2 병원 소속 수녀들이 직접 안내를 맡는 건 서울성모병원만의 강점. 이들의 미소는 병원을 찾는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독여준다. 3 서울성모병원 전경. 4 서울성모병원 본관 로비에 들어서면 따스한 자연 채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이하 서울성모병원)은 지상 22층, 지하 6층, 1200개 병상, 연면적 19만m2로 단일 병동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면적으로만 따지면 ‘63빌딩’보다 넓다. 그런데 대형 종합병원 특유의 삭막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중앙홀 안내데스크에서 봉사하는 노수녀의 인자한 미소가 병원을 찾는 이들의 불안한 마음을 부드럽게 다독여준다. 서울성모병원 임성규 홍보팀장은 “병원 소속 수녀님이 22명 계신다. 이분들의 안내가 환자들에게 신뢰와 편안함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강남성모병원 옆 부지에 건물을 신축해 2009년 개원한 서울성모병원은 최고의 ‘금싸라기 땅’이라 불리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총 1조 원을 투자해 세워졌다. 세계 수준의 의료진을 영입하고 총 2000억 원 규모의 첨단 의료장비를 구입해 개원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다. 2010년 5월 3일 개원 1주년을 맞은 서울성모병원은 화려하던 개원 당시만큼이나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뒀다. 먼저 진료 실적을 보면, 하루 평균 외래환자가 기존 3700명에서 5500명으로 약 1.5배 증가했다. 병상 가동률은 개원 후 10개월째인 지난 1월 91.5%에 달했으며, 주간 수술 건수는 5개월 만에 600건을 넘어섰다. 목표를 25% 넘어선 성적이다.
개원한 지 1년 만에 서울성모병원이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서울성모병원 홍영선 병원장은 “최고를 지향하면서도 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고자 하는 가톨릭의 생명 존중 이념, 그리고 환자로 들어와 가족이 되어 나가는 병원을 만들자는 경영철학이 서울성모병원의 경쟁력이자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환자 중심의 진료 시스템
환자, 즉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는 마음은 병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진료’ 시스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서울성모병원은 가톨릭 암병원(이하 암병원)을 포함한 4개의 중점센터, 12개의 전문센터를 중심으로 환자 개개인의 질환에 따른 ‘맞춤형’ 진료를 제공한다. 그중 암병원과 심혈관센터, 장기이식센터, 안(眼)센터는 서울성모병원의 70여 년 진료 노하우를 집약해 특화한 강점 분야다.
암 치료의 세계적 권위자인 뉴욕의대 전후근 교수를 병원장으로 영입한 암병원은 선진 암 치료 시스템인 ‘다학제적 팀 접근방식(Multi-disciplinary Team Approach)’을 전격 도입했다. 이는 환자 개인에게 맞춰 진단·진료·시술·관리·임상·연구·기초과학 등을 연계한 ‘협진’ 시스템을 말한다. 서울성모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장홍석 교수는 “아주 세부적인 부분까지 협진이 이뤄져 진단에서부터 수술까지 걸리는 시간이 타 병원에 비해 매우 짧다. 또 개별 환자의 치료가 바로 연구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암병원은 위암, 대장암 등 10개의 질환별 협진팀으로 이뤄진 ‘고형암센터’와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조혈모세포 이식(BMT) 센터’로 이뤄져 있다. 조혈모세포는 적혈구·백혈구·혈소판을 만드는 미분화된 골수조혈세포의 조상세포로, 골수에서 대량 생산된다. 즉, 조혈모세포 이식은 백혈병 등 혈액종양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조혈모세포를 새로 심어주는 치료법. BMT센터는 1983년 국내 최초로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에 성공한 이후 현재 연간 260건 이상을 시술하고 있는데, 이는 아시아 최대 규모다. 특히 전문 인력을 갖춘 데다 이식 경험도 풍부해 비혈연 간 이식, 불일치 이식, 제대혈 이식 등 고난이도 이식이 많이 이뤄진다.
심혈관센터는 서울성모병원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손꼽힌다. 조만간 ‘심뇌혈관’센터로 확대될 예정. 고령화시대에 접어들면서 혈관질환 환자가 급증함에 따라 혈관과 관련된 모든 진료과가 한 곳에 뭉치게 된다. 심혈관센터장 승기배 교수는 “혈관질환의 원인은 다 똑같다. 단지 문제가 머리에서 생기느냐, 심장에서 생기느냐, 말초혈관에서 생기느냐의 차이일 뿐”이라며 “뇌혈관, 심혈관 등 모든 혈관질환 환자들이 한 센터에서 자신의 증상에 맞춰 치료를 받게 된다. 이는 고령화시대에 우리 병원의 강력한 차별화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기이식센터는 개원 이후 이식 건수가 2배 정도 늘었다. 특히 혈액형 불일치 이식이나 감작(感作·이식 장기에 항체 반응을 보임)된 환자 이식 등 고난도 이식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2009년 서울성모병원이 보건복지가족부(현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2009년 선도형 연구중심 병원’에 선정돼 5년간 총 225억 원의 연구자금을 지원받았는데, 장기이식센터가 그 중심 구실을 했다. 연구과제는 모든 면역 관련 질환에 적용 및 응용 가능한 치료 기술과 치료제 개발이다.
장기이식센터장 양철우 교수(면역질환 융합 연구 사업단장)는 “지난 40년간 서울성모병원이 국내 최초로 신장 및 골수 이식을 성공시키는 등 이식과 자가 면역 치료의 산실로 인정받은 결과 ‘선도형 연구중심 병원’으로 선정될 수 있었다”며 “혈액형이 다르면서 감작된 환자에 대한 이식 등 고난이도 시술법은 물론, 이식 환자들이 면역 억제제를 먹지 않고도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치료법 개발 등 다각도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각막 이식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안센터는 오는 9월 서울성모병원 별관(구 강남성모병원) 건물로 이전, 안과종합병원 형태의 ‘안병원’으로 거듭난다. 안병원은 3개 층, 약 3300㎡(1000평)에 달하며 이곳에서 진료, 검사, 수술이 원스톱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이외에도 소화기센터, 척추센터, 뇌졸중센터, 뇌종양센터, 사이버나이프(Cyber-Knife)센터, 호스피스센터, 임상시험센터, 류머티즘센터 등 다양한 전문 센터가 있다.
또 국내 최초로 도입된 부정맥 검사 및 시술 장치인 ‘자장에 의한 로봇틱 심도자 유도 시스템’을 비롯해 3세대 로봇 수술기 다빈치, 선형 가속기·CT 비전, 토모테라피, 로봇 혈관 촬영기, O-ARM(O자 모양으로 생긴 엑스레이 발생장치), 다목적 심혈관 촬영기, 3.0 MRI 시스템, PET-CT, 단광자 단층촬영장치 등 완벽한 진료를 돕는 국내 최고 수준의 첨단 장비도 서울성모병원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평생건강증진센터, 100점 만점에 100점
환자, 즉 고객이 최우선이라는 마음가짐은 진료 시스템뿐 아니라, 병원의 모든 서비스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서울성모병원 본관 4층에 약 2645㎡(800평) 규모로 구성된 평생건강증진센터가 대표적. 첨단 의료장비와 전문화된 의료진은 물론 개인의 가족력, 키와 몸무게, 생활습관과 식습관, 몸의 각 증상, 비용 등을 모두 고려해 선택할 수 있는 ‘맞춤형’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다수 갖췄다. 특히 건강검진과 IT기술이 융합된 ‘U헬스케어 시스템’을 통해 검진 후에도 지속적으로 병원의 건강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평생건강증진센터는 병원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100점 만점에 100점 가까운 점수를 받기도 했다.
외래 전면 예약제와 진료비 후불제 도입, 층마다 설치된 수납창구 역시 고객 최우선의 마음에서 출발했다. 그 결과 불필요한 대기시간이 줄고, 진료 전 수납의 번거로움이 없어졌으며 환자의 동선도 최소화됐다. VIP 병실뿐 아니라 다인실(5인)도 호텔 수준으로 꾸며 환자의 만족도를 높였다. 또한 서울성모병원을 포함해 가톨릭대 부속병원과 협력병원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통합 의료정보시스템을 구축한 결과, 환자 개인에 대한 모든 정보가 공유돼 병원을 옮길 때마다 불필요한 중복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오케스트라 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와 건강강좌도 고객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1 서울성모병원을 찾는 외국인 환자도 급증했다. 러시아 의사 면허를 가진 코디네이터 라보브카(가운데)가 러시아 환자를 안내하고 있다. 2 척추센터에서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는 모습. 수술 장비인 이동형 다차원의 영상 장치 3D-scanner를 이용한 영상유도 장치는 척추 내 기구 삽입에 따른 합병증과 부작용의 발생률을 줄여준다.
또한 수술실의 ‘클린존’과 ‘더티존’을 완전히 분리해 감염 위험을 없앴으며, 폐기물 배출 전용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해 사람과 폐기물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이 시스템은 세계 최초의 설비로, 국내외 유수의 의료기관에서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서울성모병원은 외국 유수 병원과 제휴를 맺는 것은 물론, 외국인 환자 유치에도 적극 나서서 한국 의료의 글로벌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2009년 미국 최고의 암센터인 ‘메모리얼 슬로안 케터링 암센터’, 그리고 미국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미시간대학 심혈관센터’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국제적 위상을 높였으며, 이외에도 국내외 120여 개 대학, 의료기관, 연구소 등과 MOU를 체결했다.
해외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친 결과, 서울성모병원을 찾은 외국인 환자도 급증했다. 2009년 약 7200명의 외국인 환자가 내원했는데, 이는 2008년 대비 165% 증가한 수치다. 외국인 환자는 서울성모병원 1층에 자리한 별도의 국제진료센터에서 진료를 받는다. 이 센터에는 러시아어, 일어, 프랑스어, 영어가 가능한 4명의 코디네이터가 상주한다. 특히 러시아 의사면허를 가진 코디네이터가 직접 문진을 해 의료시설이 열악한 러시아 환자와 러시아어를 공용으로 쓰는 카자흐스탄 환자가 많이 늘었다는 게 병원 측 설명. 또 병원 주변에 JW메리어트 호텔 등 숙박 시설이 다수 있고, 공항으로 연결되는 교통망이 좋으며, 삼성동 무역센터 등 서울 강남권의 관광지와도 가까워 입지 상 매우 유리하다.
그 결과 서울성모병원은 2009년 12월 외국인 환자 유치 우수기관으로 선정, 당시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2010년 2월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현지 사무소를 냈는데, 교민과 현지인이 서울성모병원을 비롯해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병원들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안내 창구 구실을 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측은 오는 7월 국제의료기관평가(JCI)가 실시되면 올해 안에 JCI 인증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JCI 인증은 미국 8000여 개의 의료기관을 평가하는 비영리법인 JCAHO(Joint Commission Accreditation of Health Organization)가 설립한 국제의료기관 인증기구에서 발급하는 것으로, 국제 공신력을 갖고 있다. 특히 미국의 민간의료보험사가 병원과 계약을 맺을 때 최우선으로 요구하는 만큼, 외국인 환자 유치에 필수적인 선결 조건인 셈. 서울성모병원 측은 예비 평가에서 합격점을 받아 본평가 통과도 무난할 것으로 내다본다. 홍 병원장은 “JCI 인증을 받으면 미국 LA 사무소를 통한 외국인 환자 유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며 “외국인 환자 전문 병동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안에 JCI 인증 기대
서울성모병원은 올해 말 별관을 리모델링하면서 2000병상 규모로 거듭나게 된다. 그럼 진료(서울성모병원), 교육(가톨릭 의과대학과 간호대학, 의과전문대학원), 연구(가톨릭 의과학연구원), 산학협력 등이 함께 이뤄지는 초대형 종합의료과학단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이 바로 별관에 위치하게 될 ‘자선병원’이다. 서울성모병원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차상위계층이나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무료 자선병원을 설립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현재 300억 원을 모금하고 있다고 병원 측은 설명한다. ‘이윤 추구’라는 과정을 통해 소외된 이를 한 명이라도 더 진료하겠다는 서울성모병원의 가톨릭 이념이 어떻게 실현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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