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리 사치코 지음/ 최태자ㆍ심명숙 옮김/ 창해 펴냄/ 1만 원
온 식구가 일을 하는 터라 할 수 없이 환갑이 넘은 아주머니 한 분을 도우미로 모셨다. 노인 모시는 일에 일가견이 있는 아주머니는 어머니의 약에 들어 있는 수면제부터 제외했다.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비슷한 증세만 나타나면 간단한 설사나 변비에도 큰 병원 가서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타박하던 어머니가 몰라보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주머니가 휴가를 떠난 주말이면 어머니는 간단한 집안일을 하시는데 나는 모르는 척한다. 늘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나를 일일이 챙기는 것을 보면 정신적으로는 완전히 정상상태로 돌아오셨다.
나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나의 미래를 본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늙어갈 것이고 언젠가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관심을 보인 것이 노인 수발이다. ‘노인수발에는 교과서가 없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시어머니 등 다섯 사람의 노년과 임종을 지켜보면서 노인 수발의 노하우를 습득한 하나리 사치코가 노인 수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에세이로 쉽게 풀어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저자의 아버지는 마지막 3일을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수액이 몸에 들어가도 소변이 나오지 않고 복수가 차올라 무척 고통스러워하며 고함을 질러댔다. “제발 죽여다오!” “그럴 수 없어요.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매정한 년!” 이렇게 말하며 매서운 얼굴로 바라보는 아버지를 저자는 침대에 올라가 껴안았다. 무거워 손과 발이 금방 저려왔지만 아버지를 안고 속삭였다. “아버지, 살 만큼 살았어요.” 그러자 저자의 아버지는 잠들었다. 품에 안긴 아버지의 표정에 안도감이 비치면서, 세우고 있던 무릎이 툭 하고 넘어지더니 조금 뒤 숨을 거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공유했다는 생각을 한 저자.
저자는 수발이란 생명과 생명이 서로 부딪치고 투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죽고 싶다’는 말을 ‘살고 싶다’는 말로 이해하고, 수발하는 쪽과 받는 쪽 모두 이 순간을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에게는 “괜찮아요. 언젠가는 죽으니까.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모두 죽어요. 저도 그렇고요”라고 말할 것을 권한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수발하고 있는 지인이 어느 날 어머니를 죽이고 싶다는 전화를 했다. 저자는 “알았어. 지금 바로 밧줄 가지고 도와주러 갈게” 하고 상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답했다. 그러자 수화기 저쪽에서 깊은 한숨 소리와 함께 “고마워. 마음이 이제 안정됐어”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저자는 열심히 참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좀 더 참고 노력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저자가 다리를 쓸 수 없는 시어머니를 수발할 때, 기저귀까지 갈아놨지만 시어머니를 혼자 두고 30분 정도 시장 보는 일조차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 문득 ‘시어머니 수발은 시할머니께 부탁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할머니는 뵌 적도 없고 오래전에 돌아가신 분이지만 그분에게 시어머니를 부탁하고 외출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안심할 수 있었다.
책은 수발의 교과서적인 지식을 일일이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발하는 이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지에 대한 감동적인 교훈은 넘친다. 저자는 인생을 더욱 행복하게 살기 위해 태어난 사람에게 수발은 그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수발을 하게 되면 수발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리고, 어디까지나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인생을 소중하게 생각하면, 수발받는 사람의 인생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발하는 사람은 수발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잊어선 안 된다.”
실제로 저자는 시어머니를 수발하며 통신제대학을 마치고 취미생활도 포기하지 않았다.
저자는 수발이라는 게 배설물을 처리하고 인생을 지탱하는 궁극적인 인간관계라 인간학적이고 철학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될 수밖에 없으므로 결국 “자기 노년의 리허설”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부모의 노후나 죽음을 보고, 이윽고 찾아올 자신의 노후와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훈련을 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또 수발은 가족의 구성, 경제 상태, 지역, 환경이 저마다 다르기에 주어진 환경에서 계속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수발은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현실이다. 그 현실 속에서도 빛나는 보석의 지혜를 발견할 사람은 바로 우리 모두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