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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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성장 속도전 그린의 위기

MB 광복절 경축사 5개월 만에 정책 쏟아져 … 환경 가치 외면한 또 다른 성장정책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10-04-14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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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성장 속도전 그린의 위기
    “대한민국 건국 60년을 맞는 오늘, 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비전의 축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녹색성장은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입니다. 녹색기술과 청정에너지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국가발전 패러다임입니다. …저는 녹색성장을 통해 다음 세대가 10년, 20년 먹고살 거리를 만들어내겠습니다.”

    2008년 8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중 일부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저탄소 녹색성장’ 전략을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의 대응책이자 향후 국정목표로 천명했다. 구체적인 목표치도 제시했다. 5% 남짓한 에너지 개발률을 임기 중 8%, 2050년에는 50% 이상 끌어올리고 2%에 불과한 신재생에너지 사용률을 2030년에는 11% 이상, 2050년에는 20% 이상 높이겠다는 것. 이를 위해 집집마다 신재생에너지를 쓸 수 있게 하는 ‘그린홈’ 100만 호 프로젝트 실시, LED와 무공해 석탄 등 새로운 그린에너지 기술 개발, 친환경 고효율의 ‘그린카’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중점 육성 등 실질적인 정책도 내놨다.

    이보다 한 달 정도 앞선 7월, 이 대통령은 일본 도야코에서 열린 G8 확대정상회의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2050년까지 현재의 절반으로 감축하자는 범지구적 장기목표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선언해 국제사회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당시 미국, 일본 등이 ‘2050년까지 온실가스 50% 감축 방안’을 개발도상국들의 반대로 정상선언 문안에 포함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은 국제사회에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각종 계획과 정책 정비 관련 예산 대폭 증액

    녹색성장 속도전 그린의 위기

    지난해 9월 25일 미국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

    환경전문가들은 집권 초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신대 교양학과(환경계획) 이상헌 교수는 “과거 기후변화협약 논의과정에서 늘 모호한 태도로 국제시민사회의 비난을 받아온 한국이 뒤늦게나마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했다.



    ‘녹색성장(Green Growth)’이라는 용어는 2000년 미국 ‘이코노미스(The Economist)’지에서 처음 사용했다. 국제사회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05년 3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환경과 개발에 관한 각료회의’ 때다.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 회원국 52개국이 참여한 당시 회의에서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에 관한 서울 이니셔티브’를 채택하면서 녹색성장을 빈곤 감소와 환경 지속성이라는 상충되는 정책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전략 및 정책으로 제시한 것.

    이후 세계 각국은 ‘녹색성장’의 개념을 두고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 아직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정리된 개념은 없지만 각국 정부와 전문연구기관, 국제기구 등이 각자의 처지에서 논리와 개념을 구체화하고 있다.

    현 정부가 국정목표로 ‘녹색성장’을 정한 것은 이 같은 세계적인 추세와 결을 같이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이후 1년 7개월여가 흐른 지금까지 보여준 현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보다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정부 각 부처는 이 대통령의 경축사 직후 각종 계획과 대책을 쏟아냈다. 2008년 8월 27일 제1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을 시작으로 그린에너지 산업발전전략, 기후변화대응 종합기본계획, 기후변화대응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마스터플랜, 저탄소 녹색성장 추진전략안,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녹색뉴딜사업 추진방안, 녹색기술 연구개발 종합대책, 신성장동력 비전 및 발전전략 등 지난해 1월까지 5개월 남짓한 기간에 굵직한 계획이 발표됐다. 녹색성장위원회(이하 녹색위)는 지난해 7월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 계획을 내놨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난해 2월 녹색위가 확정한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이하 녹색법)은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해 4월 14일부터 전면 시행된다.

    관련 예산도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녹색성장 국가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2009년부터 5년간 107조400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연평균 10.2% 증액한다는 것.

    녹색성장 속도전 그린의 위기
    국회입법조사처 환경노동팀 최준영 입법조사관은 “현 정부가 내놓은 녹색성장 정책과 예산 규모를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맥을 잡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기술적인 면과 경제성장에만 치중해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에 대한 최 조사관의 분석이다.

    “ESCAP에서는 환경친화적인 세제 개편이나 법·제도 마련이 녹색친화적인 시장 형성과 함께 어우러져야 진정한 녹색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권고한다. OECD는 정책 간의 상호작용을 면밀히 고려해야 녹색성장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그런 고려 없이 수많은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녹색기술 개발정책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집권 초 정부부처를 조정하면서 과학기술부를 없앴다. 이로 인해 국가과학기술위원회(과학기술정책 최고의사결정기구·위원장 대통령)의 영향력이 크게 줄면서 부처 간 중복사업이 늘어났다. 예를 들어 고효율 저공해 차량기술은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 환경부, 국토해양부 등에서 33개에 이르는 사업이 별도로 진행 중이다(표 참조). 관련 산업에 대한 조정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다.

    최 조사관은 “대통령 관심 사안마다 여러 부처가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같은 분야의 기술인데도 정책목표나 추진방법이 다른 경우가 생기고 있다. 특히 ‘녹색기술 연구개발 종합대책’이 수립(2009년 1월)됐는데도 개별 부처에서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분야의 추진계획을 지속적으로 세우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진단은 잘하는데 처방이 엉망”

    정부가 녹색성장 정책에 4대강 사업을 포함시키고 신재생에너지에 원자력을 포함시킨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윤순진 교수는 “국제사회는 우리나라가 녹색성장에 예산을 많이 투자하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그 예산 대부분이 4대강 사업 예산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평가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원자력도 국제사회에서는 재생가능(신재생) 에너지에 포함되지 않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현 정부의 녹색정책에 대해 “진단은 비교적 잘하는데, 처방이 엉망”이라고 총평했다. 윤 교수는 4대강 유역을 개발하면서 건설할 자전거도로를 예로 들었다. 4대강 유역을 자전거도로로 연결한다지만 이용할 사람도 매우 적고, 탄소 발생이 미미한 지방에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것. “탄소를 줄이기 위해 자전거도로가 필요한 곳은 도심인데도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게 윤 교수의 지적이다.

    단국대 사회과학부 조명래 교수(환경정의 공동대표)는 “개발을 최소화하는 것이 녹색성장의 기본인데,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은 말이 녹색이지 성장의 한 방향”이라면서 “궁극적으로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하는 정책이어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 교수의 이어지는 부연 설명이다.

    “외국은 개발보다 보존을 중시하며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의 변화에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그린홈’ 정책은 쓰레기 처리 효율화와 저탄소 생활화 등을 통해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시민사회 영역의 정책이고, 그 시작은 바로 집이다. 같은 ‘그린홈’ 정책이지만 우리나라에선 기존의 건물을 없애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집을 새로 짓는 것이다. 환경보다는 산업으로서 의미가 더 크다. 주체도 정부다. 신재생에너지 정책도 원자력 중심이다. 이명박 정부는 환경의 내재적 가치를 놓치고 도구적 가치에만 사로잡혀 있다. 결과적으로 이 대통령은 수단적, 도구적 환경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한신대 이상헌 교수는 ‘MB정부 저탄소 녹색성장 전략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조 교수와 비슷한 평가를 내놨다. “MB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과 녹색뉴딜 정책은 ‘기후’라는 자연에 대한 자본의 의제(擬制)적 포섭 전략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수행되는 환경적 조정을 토건국가의 신개발주의 방식으로 지원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이 교수는 “사회적인 공론화 작업을 거쳐 시민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자연을 즐기고, 기존의 에너지와 물질 소비패턴을 변화시켜 나갈 때 진정한 녹색전환이 완성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터뷰/ 김형국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

    “건물에서 먼저 온실가스 감축 … 800억 원 규모 녹색펀드 조성”


    녹색성장 속도전 그린의 위기
    녹색성장위원회(이하 녹색위)는 2009년 2월 발족한 대통령 직속기구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와 기후변화대책위원회, 국가에너지위원회가 통합돼 만들어졌다.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추진체계를 구축하고, 각 부처 간 중복된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조율하는 것이 주 업무다. 녹색위의 활동은 4월 14일 ‘녹색성장기본법’ 시행을 계기로 본격화된다. 당연직인 정운찬 국무총리와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형국(68·서울대 교수·사진) 위원장에게 다양한 문제점이 지적되는 현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들어봤다.
    현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의 성과는?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곳은 산업계다. 전체 배출량의 50%를 차지한다. 건물 부문에서 25~26%, 교통 부문에서 15~16%의 온실가스가 나온다. 정부는 산업계의 부담을 고려해 건물 부문에서 먼저 온실가스를 줄여나가기로 했다. 에너지 목표관리제를 도입해 대형 에너지 소비업체와 에너지관리공단이 협의해서 효율성을 높이도록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정부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초호화 논란을 빚은 관공서 건물의 에너지 효율성을 진단하고 평균 10% 감축 목표를 세웠다. 녹색법이 시행되면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진행해오던 에너지 정책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녹색법에 대해 기업들의 불만이 많다.
    “일부 기업이 규제로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건 오해다. 녹색법은 다른 산업의 창출을 돕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2013년에는 백열등 생산이 금지된다. 대신 LED 전구가 30% 넘게 보급될 것이다. LED 전구가 아직 가격은 비싸지만 에너지 효율성은 뛰어나다. 대기업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녹색시장은 전망이 밝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탄소세를 검토하고 있다. 해외 수출기업들은 이런 세계적 변화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다. 녹색법은 이를 위해서도 필요한 법이다.”
    중소기업들은 에너지 효율화나 기술 개발을 위한 자금 여력이 없다. 지원책이 있나.
    “중소기업청에서는 연구개발(R&D) 지원과 금융 지원 등으로 중소기업의 녹색성장을 도우려 한다. 이를 위해 녹색상용화 기술에 대한 R&D 자금지원 예산을 지난해 489억 원에서 올해 680억 원으로 늘렸다. 또 저탄소 녹색성장 사업과 고에너지 효율시설을 도입한 중소기업에는 시설자금 잔액한도 적용 배제, 초기가동 운전자금 한도 확대, 업종별 제한부채비율 적용 배제, 대출금리 우대 등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모태펀드 출자와 민간투자자금 매칭을 통해 올해 800억 원 규모의 ‘녹색전문펀드’도 조성할 계획이다.”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 정책은 저탄소 녹색성장과는 거리가 있는 것 아닌가.
    “어떤 발전형태든 이산화탄소(CO2)는 나온다. 어떤 것도 비용 없는 활동은 없다. ‘원자력이 최선’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차선은 충분히 된다. 지금까지 원자력발전(원전)이 안고 있는 사회적 위해성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안정적으로 운용돼왔다. 가장 저가이면서 청정에너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원전 가동률을 지금의 70%에서 향후 80~9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독일도 원전 가동시한을 늘렸다.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아주 단호히 원전은 청정에너지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50년까지 CO2를 50%까지 감축하겠다고 했다.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보나?
    “목표는 추계적인 것도 있고, 당위적인 것도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당위적인 목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는 의욕적인 목표를 정해야 어느 정도 달성하지 않겠느냐는 기조가 깔려 있다. ‘사실의 미래’라기보다는 취해야 할 ‘목표 가치적 미래’라고 보고 싶다.”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현시점에서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환경과 경제는 공존할 수 있다. ‘환경이 곧 돈이 된다’는 게 생태 근대화 이론이다. 문명사적으로도 녹색 패러다임은 근대사적 궤도의 시작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녹색성장이라는 행정방식이나 정책지향은 대단히 진화할 것이다. 그 틀을 정리해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일환으로 올해 ‘녹색성장 편람’이라는 것을 만들려고 한다. 현재 우리의 좌표를 정리하는 작업이다. 녹색성장은 아직 모델이 없다. 세계적으로 암중모색기다. 단기적으로는 비관적이고 문제점도 많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낙관적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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