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 사령부 앞에서 울부짖는 실종자 가족.
“아들이외다, 큰아들. 하사.”
이내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린 그는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올라탔다. 이처럼 실종자 가족은 말이 없었다.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칠 대로 지친 심신
3월 26일 천안함 침몰사고 이후 실종자 가족들은 임시 숙소에 모여 ‘아빠이자 남편, 아들이자 형제가 반드시 살아 돌아오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구조 소식에 귀 기울여왔다. 하지만 사고 발생 3일 후인 28일에야 실종자 대다수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함미(艦尾)를 발견한 데다 이후에도 구조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특히 생존 ‘마지노선’이라는 29일 오후 6시 30분(사건 발생 후 69시간)이 지나자 가족들의 희망은 허탈함과 분노로 바뀌었다.
30일 오후 2시경 임시 숙소 앞에서 만난 가족들은 이전보다 더 말이 없었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까칠한 거죽만 남은 모습이었다. 정범구 상병의 어머니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우리 아들 어떻게 해”만 반복했다. 실종된 정 상병이 그의 어머니가 20여 년 전 홀로 된 후 키운 외아들이라는 사실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몇몇 가족은 취재진에게 “왜 들어왔냐?” “나가라” “사진 찍지 말라”고 소리치며 숙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정종율 중사의 작은아버지는 “69시간이 지난 후 모두 힘을 잃었다.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안타깝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실종자 가족은 “차라리 시신이라도 빨리 수습하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제 분노를 넘어 해군과 정부, 언론에 강한 불신을 표출했다. 김경수 중사의 매형은 “현장에서 접하는 사실과 언론보도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 군의 구조작업을 보니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백령도 구조 현장에 다녀온 한 실종자 가족도 “현장을 가보니, 구조작업이 쉽지 않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사고 나고 사흘이나 지난 뒤에야, 그것도 민간 어선이 함미를 발견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나. 구조요원들은 자신의 건강도 챙기지 않은 채 헌신적으로 노력하는데, 해군의 지원이 너무 없다”고 말했다. 김태석 중사의 누나 김양순 씨도 “다 우왕좌왕이다. 군의 지도체계가 엉망이다. 그러니 가족들도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오게 기원해달라”
최정환 중사의 매형 이정국 씨는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씨는 “오보와 추측성 기사 때문에 매일 숙소엔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실종자 가족을 위한다는 기사가 오히려 가족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나이가 많은 실종자 부모들에게 수백 통씩 전화를 하고 한밤중에 집까지 찾아오는 기자도 있다. 또 울먹이거나 분노하고, 소리치는 모습만 찍어서 내보낸다. 심지어 우리에게 실종자 가족이 아닌 ‘유족’ ‘유가족’이라고 한다. 이런 일부 언론의 무분별한 취재 때문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고 덧붙였다.
30일 저녁 실종자 가족들은 회의를 열고 자신들의 뜻을 공식적으로 전할 ‘실종자가족협의회’(이하 협의회)를 구성했다. 협의회는 다음 날인 31일 오전 10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 내 예비군 강당에서 첫 기자회견을 열고 군(軍)에게 세 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첫째 마지막 한 사람까지 최선을 다해 구조하고, 둘째 해군 및 해경의 초동 대처와 구조작업 과정에 대한 자료 전부를 제공하며, 셋째 실종자 가족들의 의혹 해소를 위한 별도의 질의응답 시간을 마련해달라는 것. 언론에 대해서도 추측 보도와 확인되지 않은 사항의 기사화를 자제하고, 가족의 비통한 심정을 이용한 비인도적 취재, 연로한 가족에게 매달리는 무리한 취재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가족대표 46인은 목에 ‘○○○ 가족대표’라는 명찰을 건 채 단상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김동진 하사의 어머니는 눈 밑이 헐어 퉁퉁 부었고, 박경수 중사의 부인은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회견 내내 가슴에 손을 얹고 있었다. 실종자를 찾으러 바닷속에 뛰어들었다가 순직한 고(故) 한주호 준위에 대한 묵념을 올린 후 시작된 기자회견의 초반 분위기는 다소 차분했다. 하지만 협의회 대변인을 맡은 이정국 씨가 대국민 호소문 말미에서 “하늘에서 부여받은 명이 다해 불가항력으로 희생된 장병이라도 온전한 모습으로 저희 곁에 돌아올 수 있게 기원해달라”고 말하자, 강당 안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한 실종자 어머니가 “내가 대신 죽을 테니 우리 아들 살려달라”며 오열하자 분위기는 더욱 숙연해졌다.
실종 이레째인 4월 1일 오전, 이틀째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바람도 거셌다. ‘악천후에 수색이 잠정 중단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가족들은 임시 숙소의 창밖으로 하늘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숙였다. 가족들의 눈물은 말랐으나, 야속하게도 하늘의 눈물은 계속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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