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답지 않지만 소소한 상상력을 즐길수 있는 영화 ‘리키’.
일곱 살짜리 딸 ‘리자’와 생활하던 싱글맘 ‘케이티’(알렉산드라 라미)는 하릴없이 반복되는 일상과 공장생활에 지쳐가고 있다. 그런 그 앞에 공장 동료이자 외국인인 ‘파코’(세르기 로페즈)가 나타난다. 오종답게 그린 케이티와 파코의 공장 화장실 파격 정사. 그런데 어라, 영화는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 아이를 낳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사랑과 이별의 재회라는 ‘삼천포로 빠져버린다’.
‘리키’의 최대 매력이자 단점은 영화 중간까지 이어지는 파코와 케이티 간에 펼쳐지는 스릴러적 요소다. 영화는 무규칙 이종 장르처럼 스릴러에서 멜로, 멜로에서 코미디로 여러 장르가 비빔밥처럼 버무려진다. 아이 양육이 힘들어지면서 파코가 슬슬 다른 여성을 만나는 것도 그렇다. 게다가 아이의 등에는 자꾸만 멍이 든다. 케이티는 자연스레 파코를 의심하고, 그런 아내에게 파코는 “내가 아들을 때렸을 것 같은가”라고 반문한 뒤 집을 나가버린다. 관객 역시 케이티의 시점에서 과연 파코가 아동학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어떻게 벗어날지를 숨죽여 본다. 그런데 아이는 결국 옷장 위에서 발견된다. 엄마는 날갯죽지가 간지러워 그렇게 보채던 아이를 숨겨도 보고 감춰도 보지만, 하늘을 훨훨 날고 싶어 하는 아기천사를 언젠가는 세상에 공개해야 한다.
파코가 외국인 노동자이자 그 진의가 오해되는 ‘타자’라면, 아기천사 리키 역시 날개 때문에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프랑스 사회의 ‘타자’다. 그러나 파코와 리키는 어떠한 연관성도 맺지 못한다. 오히려 영화는 케이티의 리키에 대한 감정적 동일시에 주력하면서 진부한 모성애 신화에 일조하는 우를 범한다.
그 점은 또 다른 주인공인 딸 ‘리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리자 역시 이 복합 가족의 역동 속에서 ‘리키’에게 온 관심이 쏠리는 것을 반길 리 없다. 그런 와중 리자와 파코 사이에 흐르는 급조된 부녀간의 긴장감도 ‘천사’라는 판타지에 묻히고 만다. 그래서 영화는 해피엔딩인데, 마치 미완성 영화의 반을 뚝 잘라 본 느낌이나 오종의 쉬어 가는 작품을 엿본 느낌을 지울 길이 없다.
그러나 아기천사 ‘리키’의 이야기에 보너스 요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랑스의 대표 여배우 중 하나인 알렉산드라 라미를 보는 기쁨을 꼽겠다. 지나치게 평범해서 신화적이지 않은, 섬세한 감정을 담을 줄 아는 라미를 스크린을 통해 알게 되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영국의 로즈 트레맨의 단편소설 ‘나방’과 영화를 비교해서 볼 수 있는 점도 포기할 수 없다(소설이 국내에 소개되진 않았지만 원하는 분은 원작에 도전해보길). 전 세계의 이질적인 문화요소가 어우러진 사랑스러운 판타지 ‘리키’. 영화를 본 뒤 오종이라는 이름만 잊을 수 있다면 충분히 소소한 상상력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