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전남 영암에서 일어난 ‘공무원 부부 살인사건’의 범인이 다름 아닌 장남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부모를 흉기로 20여 차례나 찔러 살해하고도 야산에서 증거를 소각한 뒤 태연히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긴 것으로 알려져 수사진조차 놀랐다고 한다. 이에 앞서 울산에서는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뇌병변 장애가 있는 어머니를 무참히 살해한 패륜범죄가 발생했고, 부여에서도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아들이 아버지를 방화 살인하는 등 12월 한 달에만 여러 건의 존속살해(parricide)가 일어났다.
존속살인이란 법률적으로는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부모, 조부모)에 대한 살인을 의미하는데, 직계존속은 법률적 혈족에 국한되며 친척은 해당하지 않는다. 즉 부모, 배우자의 부모, 양부모는 포함되지만 사실혼 관계의 동거인 부모는 제외된다.
강원지방경찰청 정성국 검시관이 경찰청 통계를 바탕으로 2008년 1월부터 2009년 6월까지의 국내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 살인사건은 1734건이었고 그중 존속살인이 72건으로 전체의 4.2%를 차지했다. 이는 연평균 전체 살인사건에서 5% 내외를 차지해 미국 2%, 프랑스 2.8%, 영국 1%에 비해 상당히 높다. 유독 한국에서 존속살해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기대 이수정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인이 가족과 함께 사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양인들은 가정에서 언어·신체 폭력을 경험하며 내면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채 성장했을 경우 독립해 가정이 아닌 다른 곳에서 총기난사 같은 사건을 일으키는 반면, 비슷한 경험을 한 한국인들은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그 안에서 충동적 결과를 낸다는 것이다.
가족과 오래 살다 그 안에서 표출
한남대 이창무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 기대심리’를 또 다른 원인으로 꼽는다. “명문대생이 부모를 토막살해한 ‘이은석 사건’(2000년)에서 알 수 있듯, 부모가 지나치게 자녀를 닦달하면 자녀가 정신적 압박을 견디다 못해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다”는 얘기다. 외국에 비해 높은 교육열과 의사소통 부재가 촉매제 구실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가족 간 갈등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살인으로 이어지느냐 여부는 개인의 정신적 취약함과 연관돼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정 검시관이 최근 18개월 동안의 국내 살인사건 1734건을 분석해 한국법과학회지에 발표한 ‘존속살해와 정신분열의 연관성 분석’ 논문에 따르면, 존속살해의 동기 중 피의자의 정신분열(43%)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 밖의 원인으로는 우발성과 가정불화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는데, 우발적이라 하더라도 평소 폭행이나 폭언을 당하거나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앞에서 본 몇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부모의 재산을 노린 계획적인 패륜살인도 일부 있다.
정신질환도 일종의 병이기 때문에 증세의 경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존속살인 대상의 피의자들을 조사한 결과, 작게는 우울증부터 부모를 살해하라는 환청이 들리는 ‘지시적 환청(commanding hallucination)’, 부모가 괴물 같은 다른 형상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망상성 정신분열(paranoid schizophrenia)’ 증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경우가 많았으며, 이와 같은 증상으로 입원한 병력이 있기도 했다.
정신분열증이 위험한 이유는 이것이 만성화돼 가족관계와 신체 상태를 악화시킬 뿐 아니라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게 해 끝내 존속살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존속살인사건 피의자가 일반 살인사건 피의자에 비해 정신분열증 병력이 40배 더 높은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제주도에서 일어난 모친 살인사건의 범인은 20대 초반의 앳된 여대생이었는데, 과대망상에 의한 정신분열증으로 어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한 그는 현재 치료감호소에 수감 중이다.
존속살해범은 식칼 같은 도검류를 가장 많이 사용하며, 그 다음으로 무차별적인 폭행을 하거나 야구방망이, 망치 등의 둔기를 사용해 얼굴, 목, 머리를 집중적으로 손상시켰다. 대부분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평상시 부모를 상습적으로 폭행했거나 범행 당시 알코올을 과다하게 섭취한 경우도 많았다.
피해자 60%는 힘없는 어머니
전체 존속살인의 90% 이상은 아들이 저질렀으며, 범죄자의 연령대는 30대 다음으로 20대가 많아 20, 30대가 존속살해의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는 70대가 가장 많았고, 60세 이상의 부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75%에 달했다. 어머니(약 60%)가 아버지(약 30%)보다 2배 많이 살해당했으며, 배우자의 부모나 계부모(약 10%)가 살해되기도 했다. 모친살해(matricides)가 부친살해(parricides)보다 많은 이유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신체적으로 약할 뿐 아니라, 자녀인 피의자들과 보낸 시간이 많아 망상이나 분노의 대상이 되기 쉽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존속살해와 더불어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사건의 피의자 비중은 아버지 52%, 어머니 48.6%로 나타났다. 피해자인 자녀 역시 아들, 딸 간의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대부분 사업 실패나 치정, 비관 등의 이유로 자녀를 살해한 데 비해, 어머니는 우울증이나 기타 정신질환 탓에 일을 저지른 경우가 많았다. 정신질환이 가족 간 살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효를 중시하는 한국에서 존속살해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를 방지하려면 가족 간 대화를 늘려 불화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존속살해자의 상당수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만큼 위험군을 조기에 파악해 환자와 그 가족에 대한 교육 및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의 비율은 비슷하지만 한국은 정신과에 대한 편견 때문에 환자들이 방치돼 있다”며 “정신분열증의 경우 적절한 약물치료와 생활의 관리만 이뤄진다면 결코 위험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존속살인이란 법률적으로는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부모, 조부모)에 대한 살인을 의미하는데, 직계존속은 법률적 혈족에 국한되며 친척은 해당하지 않는다. 즉 부모, 배우자의 부모, 양부모는 포함되지만 사실혼 관계의 동거인 부모는 제외된다.
강원지방경찰청 정성국 검시관이 경찰청 통계를 바탕으로 2008년 1월부터 2009년 6월까지의 국내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 살인사건은 1734건이었고 그중 존속살인이 72건으로 전체의 4.2%를 차지했다. 이는 연평균 전체 살인사건에서 5% 내외를 차지해 미국 2%, 프랑스 2.8%, 영국 1%에 비해 상당히 높다. 유독 한국에서 존속살해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기대 이수정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인이 가족과 함께 사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양인들은 가정에서 언어·신체 폭력을 경험하며 내면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채 성장했을 경우 독립해 가정이 아닌 다른 곳에서 총기난사 같은 사건을 일으키는 반면, 비슷한 경험을 한 한국인들은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그 안에서 충동적 결과를 낸다는 것이다.
가족과 오래 살다 그 안에서 표출
한남대 이창무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 기대심리’를 또 다른 원인으로 꼽는다. “명문대생이 부모를 토막살해한 ‘이은석 사건’(2000년)에서 알 수 있듯, 부모가 지나치게 자녀를 닦달하면 자녀가 정신적 압박을 견디다 못해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다”는 얘기다. 외국에 비해 높은 교육열과 의사소통 부재가 촉매제 구실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가족 간 갈등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살인으로 이어지느냐 여부는 개인의 정신적 취약함과 연관돼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정 검시관이 최근 18개월 동안의 국내 살인사건 1734건을 분석해 한국법과학회지에 발표한 ‘존속살해와 정신분열의 연관성 분석’ 논문에 따르면, 존속살해의 동기 중 피의자의 정신분열(43%)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 밖의 원인으로는 우발성과 가정불화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는데, 우발적이라 하더라도 평소 폭행이나 폭언을 당하거나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앞에서 본 몇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부모의 재산을 노린 계획적인 패륜살인도 일부 있다.
정신질환도 일종의 병이기 때문에 증세의 경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존속살인 대상의 피의자들을 조사한 결과, 작게는 우울증부터 부모를 살해하라는 환청이 들리는 ‘지시적 환청(commanding hallucination)’, 부모가 괴물 같은 다른 형상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망상성 정신분열(paranoid schizophrenia)’ 증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경우가 많았으며, 이와 같은 증상으로 입원한 병력이 있기도 했다.
정신분열증이 위험한 이유는 이것이 만성화돼 가족관계와 신체 상태를 악화시킬 뿐 아니라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게 해 끝내 존속살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존속살인사건 피의자가 일반 살인사건 피의자에 비해 정신분열증 병력이 40배 더 높은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제주도에서 일어난 모친 살인사건의 범인은 20대 초반의 앳된 여대생이었는데, 과대망상에 의한 정신분열증으로 어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한 그는 현재 치료감호소에 수감 중이다.
존속살해범은 식칼 같은 도검류를 가장 많이 사용하며, 그 다음으로 무차별적인 폭행을 하거나 야구방망이, 망치 등의 둔기를 사용해 얼굴, 목, 머리를 집중적으로 손상시켰다. 대부분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평상시 부모를 상습적으로 폭행했거나 범행 당시 알코올을 과다하게 섭취한 경우도 많았다.
피해자 60%는 힘없는 어머니
전체 존속살인의 90% 이상은 아들이 저질렀으며, 범죄자의 연령대는 30대 다음으로 20대가 많아 20, 30대가 존속살해의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는 70대가 가장 많았고, 60세 이상의 부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75%에 달했다. 어머니(약 60%)가 아버지(약 30%)보다 2배 많이 살해당했으며, 배우자의 부모나 계부모(약 10%)가 살해되기도 했다. 모친살해(matricides)가 부친살해(parricides)보다 많은 이유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신체적으로 약할 뿐 아니라, 자녀인 피의자들과 보낸 시간이 많아 망상이나 분노의 대상이 되기 쉽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존속살해와 더불어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사건의 피의자 비중은 아버지 52%, 어머니 48.6%로 나타났다. 피해자인 자녀 역시 아들, 딸 간의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대부분 사업 실패나 치정, 비관 등의 이유로 자녀를 살해한 데 비해, 어머니는 우울증이나 기타 정신질환 탓에 일을 저지른 경우가 많았다. 정신질환이 가족 간 살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효를 중시하는 한국에서 존속살해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를 방지하려면 가족 간 대화를 늘려 불화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존속살해자의 상당수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만큼 위험군을 조기에 파악해 환자와 그 가족에 대한 교육 및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의 비율은 비슷하지만 한국은 정신과에 대한 편견 때문에 환자들이 방치돼 있다”며 “정신분열증의 경우 적절한 약물치료와 생활의 관리만 이뤄진다면 결코 위험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