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곳곳에서 빙판길 안전사고가 발생했고, 서울 명동에선 눈을 치우는 과정에서 시비가 붙은 주민 2명이 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으며, 6시간에 5만원의 보수를 받는 ‘눈 치우기 아르바이트’가 등장하면서 제설·제빙 범위와 방법을 규정한 조례가 주목받고 있다. 폭설 뒤 한파가 몰아치면서 각 자치구도 ‘서울시 조례’를 주민들에게 전하며 눈 치우기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정작 ‘내 집 앞 눈 치우기’ 조례(건축물 관리자의 제설·제빙에 관한 조례)를 만든 서울시의원들은 자신의 집과 사무실 앞 도로의 눈을 제대로 치우지 않았다. “서울시의 폭설 대비 매뉴얼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시의원들이 ‘있는 조례 매뉴얼’도 따르지 않은 것이다.
“조례 홍보가 제대로 안 됐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일부 의원들에게 구체적인 조례 내용을 묻자 침묵만 돌아왔고, “집(혹은 사무실) 앞 눈을 치우셨느냐?”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라고 대답했다가 “의원님 집 앞을 방문했다”는 기자의 말에 얼른 태도를 바꾸기도 했다.
‘주간동아’는 ‘내 집 앞 눈 치우기’ 조례를 만든 서울시의원들의 ‘준법정신’을 확인하기로 했다. 폭설이 내린 다음 날(1월5일) 2개 팀으로 나눠 시의원 19명의 집과 사무실로 향했다. 준법 여부도 궁금했지만 △건물 소유자와 세입자 간 제설·제빙 책임순위를 정하고 △얼음 제거가 어려우면 모래를 사용하고 △건축물 내에 제설·제빙 도구를 갖춰야 하는 조례(상자기사 참조)의 ‘실효성’을 현장에서 확인하고자 했다. 하지만 ‘법 따로, 현실 따로’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도봉구 창동 이면도로 사거리에 자리한 성무원 의원의 지상 3층 주택 앞길에서 취재진은 한동안 진땀을 빼야 했다. 폭 8m가량의 이면도로에 쌓인 눈이 그대로 방치돼 마주 오는 1t 트럭 뒷바퀴가 헛돌았고, 한동안 취재차량의 발이 묶인 것이다.
1층에 공인중개사 사무실이 들어선 성 의원 소유의 건물은 근린생활시설이어서 조례대로라면 대지경계선을 따라 1m가량 제설·제빙 작업을 해야 하지만 주 출입구 등 일부분만 치워져 있었다.
성 의원은 “건물 앞에 주차가 된 상태여서 (제설·제빙이) 제대로 안 된 부분이 있었다. 조금 전 (지나가는 제설차량에서) 염화칼슘을 얻어 뿌렸다. 조례안 심사는 했지만 모호한 부분이 있어 정확하게 내용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정오께 찾은 용산구 이태원2동 이종필 의원의 5층 빌라도 사정은 비슷했다. 언덕바지에 있는 이 빌라의 한쪽은 차도, 다른 한쪽은 이면도로와 맞닿아 있었고 빌라 입구는 이면도로를 향해 나 있었다. 이면도로는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쌓였고, 건물 출입구와 접한 1m 공간만 맨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1층 편의점과 피트니스센터 등 ‘비주거용’임을 감안하면 대지경계선과 접한 1m 둘레 모두 제설·제빙 작업을 해야 한다.
외국인 운전자 차량이 10분 넘게 헛바퀴를 돌리면서, 엔진소음과 배기가스가 허공을 갈랐다. 행인은 물론 이 건물 출입구를 오가는 주민들도 불편해 보였다.
‘눈 치우기 조례’를 공동 발의했던 이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몇 시간 동안 제설을 하면서 이면도로에 쌓인 눈은 다 치웠다. 세입자 대부분이 외국인이라 거의 내가 치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취재진이 현장을 실사했다고 전하자 “이면도로 위의 눈은 치우기가 어렵다. 다 치우면 쌓인 눈더미 때문에 차가 지나가지 못한다. 치운 눈을 갖다버릴 곳도 마땅치 않다”며 당황스러워했다.
‘법 따로, 현실 따로’의 현장
은평구 대조동 임승업 의원의 집을 찾아갈 때는 취재기자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좁은 골목길과 언덕이 많은 지역 특성상 차량 미끄럼 현상이 잦았기 때문. ‘고진감래(苦盡甘來)’라더니, 임 의원의 주택 주차장과 대문으로 이어지는 출입구 전면 1m 공간은 깨끗이 제설돼 있었다. 하지만 치운 눈을 대문 한가운데에 쌓아 ‘눈 봉분’이 만들어져 행인들의 불편을 초래했다. 임 의원은 “조례 내용은 모르겠다. 조례와 관계없이 치울 만큼 치웠다. 골목길로 눈을 밀쳐내면 지나가는 데 불편해서 어쩔 수 없이 거기에 쌓아뒀다”고 말했다.
동대문 답십리3동에서 기자는 때아닌 ‘전위예술’을 해야 했다. 박주웅 의원 소유의 3층 건물의 제설상태를 둘러보던 중 건물 계단 앞 얼음을 발견하지 못해 넘어지면서 두세 번 ‘앞차기’를 한 뒤 엉덩방아를 찧었다. 규정대로라면 제설·제빙을 해야 했지만 조례는 여전히 적용되지 않았다.
땅바닥에 줄자를 대고 심각한 표정으로(사실은 넘어진 통증 때문에) 얼음판(정확한 재원은 길이 1.5m, 폭 1m, 두께 10cm)을 확인하는 기자가 이상했던지 행인 2명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쭈그려 앉으며 한마디 한다. “뭘 찾아요?”
박 의원의 대답은 이렇다. “조례는 만들어놓았지만 별 실효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미끄럼 사고 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제설을 하라는 당위성 차원에서 만든 것이다.” 하마터면 박 의원은 기자에게 민사상 책임을 질 뻔했다.
“지하철역 제설함에 모래와 염화칼슘이 비치돼 있다. 조례가 생기기 전에는 ‘누군가 해주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그러면 안 된다. 집 앞 인도는 직접 치워야 한다.”
종로구 부암동에 사는 남재경 의원은 여느 의원과 달리 조례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제설 범위와 기준은 물론, 눈을 치운 뒤 제빙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하지만 그의 집을 찾았을 때는 학창시절 외웠던 영문 “It’s easier said than done!(말하기는 쉬우나 행하기는 어렵다)”이 떠올랐다.
2층 연립주택 1층 주 출입구는 남 의원의 말대로 제설이 돼 있었지만 2층으로 올라가는 또 다른 출입구 앞길은 제빙은커녕 제설도 돼 있지 않았다. 남 의원은 “출퇴근 전후에 치워서 그 사이 쌓인 눈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강북구 삼양동사거리를 지나 미아6동 박종환 의원의 단독주택을 찾았을 땐 한참 수소문을 해야 했다. 차량 GPS가 박 의원 주소지를 인식할 수 없었기 때문. 인근 공인중개소에 들러 대강의 위치를 확인했지만, 좁은 골목이 이어져 번번이 헛걸음을 했다.
결국 음식점을 운영하는 50대 남성에게 취재 의도를 밝히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시의원이라면 먼저 나서서 (집 앞 눈을) 깨끗이 치우는 모범을 보이는 게 당연하다. 가보자”며 흔쾌히 길안내를 해줬다.
도움을 받아 찾은 박 의원 집은 주 출입구는 물론 담벼락을 따라 치워진 집 앞 골목길은 여러 번 제설한 듯 깨끗했다.
이웃들은 “어제(1월4일) 아침에 박 의원이 틈틈이 눈을 치우는 걸 봤다. 오후에는 (박 의원) 부인이 치웠다. 여기 골목길은 주민이 모두 나와 함께 치웠다”고 전했다. 이웃들의 설명을 듣고 보니 골목 입구부터 빠른 속도로 걸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기쁜 마음도 잠시. 이동을 위해 미아6동 미아뉴타운 공사장 인근에 주차한 취재차량에 올랐을 때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한 시간여 주차해둔 차량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던 것. 자동차 배터리 방전이 의심됐다. 차량 보험사의 긴급출동서비스 관계자는 “폭설 후 한파로 배터리 방전으로 인한 서비스 요청이 폭주하고 있다. 고객님은 21번째 대기 고객이다. 2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길은 구만리. 인근 슈퍼마켓 주인의 도움으로 가까운 카센터 사장과 통화할 수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카센터 사장은 ‘내 집 앞 제설·제빙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해줬다.
“지금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 배터리 방전 때문에 전화가 많이 오는데요, 골목길에 눈이 안 치워져 있어요. 도로도 미끄럽고요. 지금은 오토바이도 출동을 못해요.”
(경찰의 도움으로 ‘점프’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시동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결국 회사 차량과의 이동정비 서비스를 받은 후 운행이 가능했다)
해질 무렵 찾은 중곡동 이재홍 의원의 4층 집은 1, 2층이 소매점과 사무실로 운영되는 근린생활시설. 하지만 ‘대지경계선 1m 제설’은 여전히 조례로 잠들어 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의원은 “집사람이 몸이 아파 거기 신경 쓰느라 제대로 치우지 못했다. (의원으로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뭘 취재하느냐” 오히려 핀잔
아파트에 거주하는 의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리인이 알아서 치우기 때문에 치워본 적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서대문구 연희3동 ○○아파트에 사는 하태종 의원은 눈을 직접 치운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대신 이번 폭설 때는 상황을 파악해서 알리는 연락책 노릇을 했다고 한다. 기자가 그의 아파트를 찾았을 때 아파트 주 출입구 눈은 거의 치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주민이 드나드는 출입구 쪽만 좁은 길이 나 있었고, 멀리서 관리인 4, 5명이 인도에 쌓인 눈을 쓸어내는 모습이었다.
한 아파트 관리인은 “일부 나이 드신 분들이 내려와 같이 빗질을 하지만 주민 대부분은 ‘나 몰라’다. 이번처럼 폭설이 내릴 때는 주민 모두가 나서 함께 치워야지” 하며 혀를 찼다.
이 밖에 성북구 석관동 안희옥 의원의 사무실 건물, 관악구 봉천6동 김갑룡 의원 사무실, 은평구 응암동 류희숙 의원의 주택, 관악구 신림동 이남형 의원의 주택, 마포구 아현동 정춘희 의원의 주택, 중랑구 면목동 채봉석 의원 사무실 등 이날 찾은 대부분의 의원 집과 사무실은 출입구 일부만 제설돼 있었고, 제빙 등 조례를 지킨 의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각 팀별로 이동거리 100km에 이르는 취재 과정에서 기자는 ‘내 집 앞 눈 치우기 조례’가 지켜지지 않은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제빙 도구를 갖추는 등 현실적으로 조례 준수에 어려움도 있겠지만, “뭘 그런 걸 취재하느냐”는 핀잔과 원망 섞인 한 의원의 말에는 그들의 ‘의식’을 읽을 수 있었다. 실효성 없는 법규를 제정하면서 각종 수당은 챙기면서도, 자신은 지키지 않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이었던 것이다.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이설 기자 snow@donga.com
폭설이 내린 1월4일 오전 서울시내 출근길은 ‘교통지옥’이었다. 제설작업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서대문구 금화터널 부근에서 눈을 뒤집어쓴 차량들이 눈밭이 된 도로에 꼬리를 문 채 멈춰 서 있다. 다급한 승객들은 버스에서 내려 걷는 등 오전 내내 혼잡이 계속됐다.
재난 상황 대비 매뉴얼 만들고 사전 훈련 실시해야
기록적인 폭설로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의 도로는 완전 통제불능 상태가 되었다. 시민들의 발은 묶이고 물류대란이 일어났다. 이것은 재난이다. 염화칼슘과 제설차가 동원됐지만 너무 늦었거나 대응 순서가 잘못됐다.
일단 폭설이 예고되면 언론이 앞장서서 정확한 교통상황을 알리고 시민의 이동을 자제시켜야 한다. 그리고 염화칼슘을 뿌리거나 제설차를 동원할 때도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 무조건 도로에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러다가 대중교통, 일반 차량과 뒤엉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된다. 폭설 예고와 동시에 교통경찰관이 먼저 도로에 나와 차량을 유도하고 정리를 한 뒤, 제설차가 눈을 치우면 그 다음에 염화칼슘을 뿌리는 게 순서다.
폭설에는 주요 교량이나 언덕길, 노후건물 등 재해 취약지역을 따로 집중 관리할 필요가 있다. 폭설은 겨울철에는 언제 발생할지 모르므로 취약도로나 건물 등에 현장 점검 등 현장 중심 체계로 업무가 바뀌어야 한다. 각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에 재난전담반이 있다 해도 타 부서와 통합돼 담당자는 2~3명뿐이어서 이들 인력으로 이번 폭설과 같은 재난에 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방위 같은 대응책 필요
국민의 안전불감증도 문제다.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큰 대형 재난에만 관심이 쏠리다 보니 폭설 정도는 재난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차량이 겨울에 월동장구도 없이 운행하고 내 집 앞 눈을 치우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언덕길의 경우 내리막에서 종종 차량 충돌이나 미끄럼으로 상해가 발생하고 있다. 내 집 앞 눈 치우기에 대한 처벌조항도 좋지만 차량을 위한 도로가 아닌 사람 중심으로 언덕길에는 계단식 인도를 설치해야 한다.
강설량이 많은 외국에서도 획기적인 대응방안이나 첨단장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폭설이 예고되면 담당 공무원들이 미리 장비를 동원하고 눈이 많이 쌓이기 전에 처리를 한다. 또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 일반 차량의 사용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고, 자기 집 앞 눈 치우기에 대한 홍보를 계속한다. 또 폭설로 건설현장에서 묶인 장비들을 지자체가 제설에 동원할 수 있도록 사전 협의체제가 갖춰져 있다.
재난은 또 온다. 강설 상황을 신속하게 전파해 시민들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정보전달 체계부터 갖춰야 한다. 휴대전화와 재난방송, 전시 대비 민방위 방송망을 활용해 위험지구나 산간 등 외딴 지역 주민과 통행자에게 대응 요령, 차량 사용 제한, 눈 치우기, 상습 정체구간 돌아가기 등을 홍보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상황에 대한 공무원과 시민들의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사전 훈련을 해야 한다.
김태환 용인대 경호학과 교수·재난정보학회 이사 twehwan@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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