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슈마허(왼쪽)는 슈마허 사단으로 활동하며 챔피언 머신의 개발 총책임을 맡아온 로스 브론과 함께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활동하게 됐다.
F1은 월드컵, 올림픽과 더불어 세계 3대 스포츠로 일컬어지는 국제 카레이싱 경기로 스포츠 종목 중 상업선전 효과가 가장 크다고 평가받는다. 관중 수는 연간 380만명, TV 시청자 수는 연간 150개국 23억명에 이른다.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은 최고의 기술역량을 과시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드라이버들은 챔피언의 명예를 얻고자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동안 뛰었던 페라리 라이벌 회사로 이적
이런 혈투의 무대에 249회 초청받아 91차례 우승하고 챔피언 타이틀을 7번 거머쥐며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미하엘 슈마허. 경이적인 드라이빙 테크닉, 레이스를 꿰뚫어보는 냉정한 판단력, 어떤 차를 타더라도 최고 속도를 내는 천재성, 게다가 승리에 대한 집념과 노력까지 겸비한 그는 실로 한 시대를 풍미한 ‘F1의 황제’였다. 은퇴를 선언했던 그가 다시 피 튀기는 경쟁의 무대에 선 이유는 뭘까. 그것도 그간 몸담았던 페라리가 아닌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말이다.
사실 그의 복귀 선언은 2009년 8월에 있었다. 페라리의 에이스인 펠리페 마사가 중상을 입어 당분간 출장이 어려워지자, 은퇴 후 페라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던 슈마허에게 긴급 요청이 들어온 것. 그렇지만 얼마 못 가서 복귀 의사를 철회했다. 2009년 초 오토바이 사고로 부상한 목 부위 통증이 예상보다 컸기 때문이다. 반년이 지난 뒤 그는 당시보다 좋아진 몸으로 돌아와 메르세데스와 무려 3년 계약을 맺었다.
슈마허는 1994년과 1995년에 베네통-포드 팀에서 두 차례 월드 챔피언을 차지하고, 1996년 페라리로 와서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연속 5회 월드 챔피언에 오르면서 그야말로 천하무적 시대를 보냈다. 한편 1979년 조디터 이후 월드 챔피언을 배출하지 못하던 페라리는 전통의 자존심을 꺾고 ‘슈마허 사단’ 전체를 영입함으로써 세계 최고 자동차로서의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이랬던 슈마허가 페라리의 라이벌인 맥라렌에 오랫동안 엔진을 공급한 메르세데스 선수로 나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특히 페라리 팬들의 실망이 이만저만 아닌데, 이에 불을 붙이듯 이탈리아 언론은 “슈마허가 다시 독일인이 됐다”며 비난했다.
2005년 동남아 쓰나미 사태 때 난민을 위해 써달라며 1000만 달러를 쾌척한 갑부 스타가 돈이 아쉬워 복귀한 것 같지는 않다. 향후 메르세데스에서 연봉 700만 달러를 받을 것이라는데, 이는 전성기 수입인 1억 달러에 비하면 초라하기까지 하다. F1 역사상 최고 기록을 보유한 그가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메르세데스 팀의 에이스 드라이버 자리를 보장받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슈마허는 “나는 메르세데스 에이스 자리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공식 발언한 바 있다. 넘버 2로라도 F1에서 뛰고 싶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슈마허의 F1 복귀 소식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베네통 시절부터 함께한 슈마허 사단의 움직임을 파악해야 한다. 슈마허는 2006년 시즌 막바지에 갑작스러운 은퇴 발표를 했는데, 사실 이 은퇴는 자의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페라리 오너와 경영진 세력 간의 알력다툼으로 슈마허는 물론 그와 오랫동안 손발을 맞춘 이들이 모두 페라리를 떠나게 된 것이었다.
한편 메르세데스 벤츠는 슈마허가 주니어 선수였을 때 그를 후원한 바 있다. ‘독일 팀에 독일인 드라이버를 키운다’는 목표 아래 향후 메르세데스가 F1에 진출하면 그 팀의 드라이버로 기용한다는 계획에서였다. 하지만 자금 부족으로 F1 진출을 하지 못하고, 대신 신생팀인 자우버에 엔진을 공급하는 업체로 F1과 인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에는 맥라렌과 엔진 공급계약을 체결, 결국 1998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페라리와 맥라렌의 경쟁구도 속에서 슈마허와 메르세데스는 본의 아니게 적이 되고 말았다.
41살 최고령 드라이버의 도전
그렇지만 맥라렌과 메르세데스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2007년 드라이버 한 명을 새로 기용할 때, 맥라렌의 지분 40%를 가진 대주주로서 메르세데스는 자신이 스폰서한 독일인 드라이버 닉 하이드펠트를 원했다. 그렇지만 팀 대표인 론 데니스는 이를 거절하고 자신이 키워오던 영국 출신 루이스 해밀턴을 기용했다. 여기에다 맥라렌과 메르세데스의 슈퍼카 프로젝트가 겹치기도 했다. 메르세데스 처지에서는 자신들이 지분 투자까지 한 업체가 나서 슈퍼카 경쟁 모델을 시판한다는 사실이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메르세데스는 슈마허 사단과 손잡을 생각을 한 것이다. 새로 독자적인 팀을 꾸리는 메르세데스에서 슈마허가 드라이버로 활동하고 메르세데스는 자금과 엔진 등을 공급하고, 10년 이상 베네통과 페라리에서 슈마허 사단으로 활동하며 챔피언 머신의 개발 총책임을 맡아온 로스 브론이 팀을 운영한다면 그 이상의 환상적인 조합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침 그는 2007년 혼다 팀 대표로 영입됐지만 혼다가 F1을 철수하자 자기 이름을 걸고 팀을 힘겹게 꾸려가고 있었다. 한편 메르세데스는 맥라렌과의 엔진 공급계약을 종료하고, 지분 매각을 합의해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이로써 슈마허의 F1 복귀는 그와 로스 브론, 그리고 메르세데스 경영진과의 커넥션으로 자연스럽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스포츠 선수로는 노년이 된 슈마허가 늦게나마 메르세데스와 첫사랑의 결실을 맺은 것이다.
시속 300km 이상으로 질주하는 경주용 자동차를 몰기 위해서는 초인적인 체력이 필요하다. 차체의 좌우회전 시 원심력이 중력가속도의 4배 이상 나올 때도 신속히 주변을 파악해야 하고, 핸들 조작이나 브레이킹을 할 때도 손과 다리에 많은 힘을 줘야 한다. F1 최고령 드라이버인 슈마허가 41살의 나이로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스피드에 대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올 한 해 F1 그랑프리 무대를 뜨겁게 달구어놓을 수도 있다. 그의 저력으로 올가을 전남 영암에서 열릴 ‘코리아 그랑프리’가 선전하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