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에 묶인 그리스도(주황색과 푸른색의 하모니), 1935~1936, 합지에 유채, 잉크 및 구아슈, 27.3x21cm.
하지만 이번에 ‘색채의 연금술사 루오展’(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10년 3월28일까지)을 보고는 루오의 작품세계를 그동안 얼마나 편협하게 가둬놓았는지 뼈저리게 반성했습니다. 전시장에서 처음 만난 작품은 루오의 자화상으로 ‘견습공’(1925)이란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가장 명예로운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를 받은 그해에 그린 것으로 그의 나이 54세였지만, 그가 그린 자화상은 14세 때의 한없이 소박한 모습입니다.
그가 자화상으로 14세 소년이던 때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피아노의 마무리 공정을 하는 기술자인 아버지와 재단사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14세 때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의 견습공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검은 윤곽선과 마치 빛이 쏟아지듯 강렬한 색채의 조화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짐작하겠지요? 한편 그는 ‘노동자의 동네에서 노동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평생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이것이 자신의 자화상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대신 검소하고 명상적인 모습으로 그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서커스 소녀, 1939~1949, 종이를 덧댄 캔버스에 유채 및 잉크, 106.2x75.7cm.
특히 루오가 같은 주제를 색채와 형태를 바꿔가며 얼마나 반복적으로 그렸는지, 성서적 주제에만 천착한 게 아니라 서커스의 광대나 거리의 여자 등 사회 밑바닥 인생에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확인해줍니다. 그는 “광대는 바로 나였고, 우리 모두였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광대인지도 모른다”며 번쩍거리는 의상 뒤에 숨겨진 영혼의 존엄성을 작품에 담아내려 애썼습니다. 놀랍게도 광대와 피에로, 서커스 소녀, 거리의 여자는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성인들의 모습과 흡사하게 묘사돼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는 그리스도나 이 땅에 소외된 사람들이 겪어야 할 고통이 실은 다르지 않음을 전합니다.
두꺼운 물감층과 거친 표면은 작품 속 인물들의 영혼의 무게와 지상에 발을 딛고 살며 짊어져야 할 번뇌의 무게까지 담고 있습니다. 덧없는 인간 존재에서 가장 신성하고 영원한 빛을 찾아 기록한 루오의 작품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놓치기 아까운 행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