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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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웃음’에서 ‘리얼 채취’로 ㅋㅋ

TV ‘예능프로’ 역사로 본 ‘웃음코드’ 변천사

  • 이응주 MBC 예능국 부장·언론학 박사 ejlee@mbc.co.kr

    입력2009-12-29 13: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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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의 예능·오락 프로그램은 대중에게 저비용으로 가장 효과적인 재충전의 시간을 제공해왔다. 요즘처럼 다양한 재충전 수단이 없던 시절에는 TV가 거의 유일한 휴식과 오락 수단으로 활용됐다.

    예능·오락 프로그램은 음악, 패션, 디자인, 생활습관 등 한 시대의 유행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예능·오락 프로그램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은 물론 생각의 변화까지 엿볼 수 있다.

    ‘준비된 웃음’에서 ‘리얼 채취’로 ㅋㅋ

    배우에 필적하는 연기력을 자랑했던 구봉서·배삼룡.

    1960~80년대

    성숙한 연기력으로 ‘완벽한 대본’ 소화


    우리나라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된 1962년부터 컬러TV 시대가 열린 1980년대까지의 예능 프로그램은 크게 코미디, 쇼, 공개 오락으로 나눠볼 수 있다.



    드라마 형식의 내러티브를 갖추고 비공개 세트에서 코미디언이 진행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에는 ‘웃으면 복이 와요’ ‘소문만복래’ 등이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코미디언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탤런트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서영춘, 구봉서, 곽규석 같은 이들은 코미디를 통해 ‘연기’를 했기에 진지함과 깊이가 돋보였다. 이들은 드라마 극본처럼 완벽하게 짜인 대본을 따랐다.

    쇼 프로그램으로는 가수들이 출연하는 ‘쇼쇼쇼’ ‘OB 그랜드 쇼’ 등이 있었다. 가수들의 노래, 코미디언들의 만담과 코믹 쇼를 선사하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시청자들은 대본에 맞게 짜인 ‘준비된 상황’과 반복되는 말장난에 웃음을 터뜨렸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각박했던 시기, 온 국민이 같은 상황에 함께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에서 동질감과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1990 년대

    생활 속 캐릭터 통한 감정이입


    1990년대 들어 새롭게 등장한 시트콤은 드라마의 한 장르로 볼 수도 있지만 극의 흐름이나 스피디한 전개 등이 코미디에 가깝다. 1993년 한국 최초의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이 선보였을 때만 해도 시트콤은 무척 낯선 장르였다. 그러나 주제와 내용이 국민 정서와 부합하면서 ‘남자 셋 여자 셋’ ‘순풍산부인과’ ‘거침없이 하이킥’에 이은 ‘지붕 뚫고 하이킥’ 등을 통해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시트콤 장르에서 찾을 수 있는 웃음 코드는 주변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캐릭터들이 저지르는 실수와 인간적인 해프닝이다. 장르적 특성상 다소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이들이 실제 일어남직한 상황을 해결 또는 무마하는 과정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곧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1980년대의 오락 프로그램처럼 대본이 존재한다는 점은 같지만, 시청자들은 친숙한 시트콤 속 캐릭터에 더 쉽게 감정이입, 몰입하며 웃음을 발견하게 됐다.

    ‘시트콤’ 시대 이후부터는 코미디가 무대 위에서만, 또 준비된 코미디언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즉 코미디의 소재가 일반인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발견하고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코미디의 대중화’가 가속화됐다.

    ‘준비된 웃음’에서 ‘리얼 채취’로 ㅋㅋ

    구체적인 대본 없이 출연자들의 활약을 ‘채취’하는 ‘해피선데이-1박2일’. ‘리얼 버라이어티’는 현대인의 웃음 코드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0 년대

    이후예능의 진화와 포스트모던함에 열광


    21세기로 넘어오며 예능 프로그램 형식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계기는 인터넷 활성화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으로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게 된 시청자들은 방송 전반에 자신들의 의견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방송사는 시청자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었고, 시청자들을 선도해온 방송 제작 전반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방송 제작자들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형식이 바로 ‘탈(脫)장르’다. 오락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형식의 만남, 시사 프로그램과 오락 프로그램의 결합. 방송 제작자들은 외국의 수준 높은 프로그램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을 따라잡기 위해 어떠한 장르 파괴도 서슴지 않게 된 것이다. 이로써 등장한 형식이 ‘서바이벌’로 대표할 수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대본 없이 체력과 지식을 총동원해 상대방을 탈락시키고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경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포맷에 시청자들은 신선함을 느꼈다.

    이후 ‘리얼’의 기치를 내걸고 큰 성공을 거둔 프로그램이 MBC ‘동거동락’이다. 즐거움과 고통을 같이한다는 ‘동고동락(同苦同樂)’ 대신 ‘동거동락(同居同樂)’, 즉 함께 살면서 즐거움을 같이한다는 의미를 차용했다. 유재석이 진행한 이 프로그램은 여러 연예인이 같은 공간에서 일정 기간 생활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이들을 엿보는 즐거움을 전달했다.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제작 형식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겨났다. 그전까지는 출연자가 대본에 의해, 연출자의 지휘 아래 예고된 동선을 따라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수십 대의 카메라를 곳곳에 배치한 뒤 연기자들에게는 기본적인 구성 틀만 제공하고, 연출자는 그 안에서 그들이 자유롭게 놀게 한 뒤 그 모습을 ‘채취’했다.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간판을 달고 인기리에 방영되는 MBC의 ‘무한도전’, KBS의 ‘해피선데이-1박2일’, SBS의 ‘패밀리가 떴다’ 등은 상황을 설정하고 출연자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시트콤과 가장 유사하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램 속에서 연예인은 연출자가 제공한 상황에서 주어진 캐릭터뿐 아니라 출연 연예인의 ‘예능성’과 그들 특유의 자유분방함까지 보여준다. ‘포스트모던’한 현대의 시청자들이 정형화한 정통 시트콤보다 리얼 버라이어티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TV 예능·오락 프로그램의 이런 변화는 일반인의 ‘웃음 코드’에도 영향을 미쳤다. TV 밖 일상생활 속에서 대중은 ‘참새 시리즈’류의 콩트를 외워 읊어대는 사람보다 상황에 맞게 남의 말을 받아치거나, 순발력 있게 리액션을 보이는 이를 ‘재미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한 버라이어티 속 각각의 ‘캐릭터’에 열광하듯 일상생활에서도 그저 실없이 웃기는 사람보다 개성 있는 성격과 행동패턴, 말 습관을 가진 ‘캐릭터’ 있는 이들을 ‘인기남’ ‘인기녀’로 여기게 됐다.

    예능 프로그램은 사회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는 온도계 같은 존재이면서, 미묘하게 달라지는 대중의 ‘웃음 코드’를 반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예능, 오락 프로그램 속 한국인의 ‘웃음 코드’는 끊임없이 발전, 진화해나갈 것이다.

    *이응주 프로듀서는 ‘우정의 무대’ ‘남자 셋 여자 셋’ ‘오늘은 좋은 날’ ‘테마게임’ ‘환상여행’ 등 다수의 오락, 시트콤 프로그램을 거쳐 현재 ‘환상의 짝꿍’을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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