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환경을 만나다’에 참여한 이기향 교수(한성대, 왼쪽)와 서봉하 교수(용인 송담대).
“친근해서 자칫 식상할 수도 있는 의복으로 오히려 색다르고 재미있는 충격을 주고 싶었어요.”
전시회에 신작 ‘지의 빛’을 출품한 이기향(54) 한성대 의생활학부 교수. 의상 관련 교수들과 패션 디자이너들을 주축으로 1996년 창립된 한국패션문화협회 멤버들 가운데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패션아트란 입는 옷으로서의 기능성을 넘어 조형예술의 한 장르로 보는 개념. 협회는 매년 국내외에서 전시회를 열며 옷과 예술의 ‘접경지대’를 탐색하고 있다.
패션을 통해 환경을 얘기해보자는 화두가 떠오른 건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습지 보존을 위한 람사르 총회가 계기가 됐다. 이 교수는 사진작가 세렌 조의 관련 전시회 ‘습지와의 속삭임’에서 받은 영감을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 평온해서 동양화 같은 느낌마저 주는 사진들을 훑어보다가 한 작품을 만난 순간 숨이 멎는 듯했어요. 갈색부터 오렌지색까지 석양에 다양한 층위로 빛나는 갈대와, 파란색 물이 괸 시커먼 개펄의 보색 대비가 어찌나 강렬하던지요.”
이 교수는 바스락거리는 노방 원피스에 CD 크기로 자른 색색 동그라미 900여 장을 달았다. 노랑, 갈색, 오렌지색을 거쳐 푸른색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스펙트럼으로 펼쳐지는 늪지의 마지막 석양이 옷 한 장 위에 표현됐다. 반투명 천 위에 동그라미들이 겹쳐지고 흩어짐에 따라 순간순간 새로운 색감이 나타나도록 고안했다.
전시회에는 이 밖에 습지와 옷의 다채롭고도 기발한 만남이 가득하다. 습지의 녹색 풀이 한가득 프린팅된 재킷이 걸리는가 하면, 습지 프린팅을 걸치고 춤추는 현대무용가의 동영상이 홀로그램으로 상영되기도 한다. 모두 51명의 작가가 저마다 옷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참신하면서도 서로 다른 습지에 대한 상상력을 뿜어낸다.
“평생 작품을 하며 살겠다”고 표방한 이 교수의 마음은 요즘 들어 전에 없이 분주하다. 2010년 한국패션문화협회 대표로 추대됐기 때문. 최근 패션산업이 문화관광부, 지식경제부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사업이 되면서 일반인들이 패션을 직접 인식하게 되는 큰 행사가 많아진 데다 15년째를 맞는 패션문화협회도 제2의 도약기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이 교수의 내년 목표는 국내에서 패션아트 국제비엔날레를 개최하는 것. 마침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삼았다. 12개국 작가가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협회가 꾸준히 활동하면서 그간 패션아트 분야에서는 국제적으로도 우리가 종주국 대접을 받아왔어요. 그런데 지난해 중국 초청으로 중국 디자이너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어보니 열정과 발전상이 놀랍더군요. 늘 앞서가려면 더욱 열심히 달려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