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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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통령을 원한다

장진 감독의 ‘굿모닝 프레지던트’

  •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입력2009-10-28 14: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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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대통령을 원한다

    장동건(사진)과 이순재, 고두심 3명의 대통령이 각기 다른 캐릭터로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대통령을 ‘각하’라 부르며 “차렷! 경례” 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 대통령, 우리의 대통령은 TV 드라마를 보고 라면을 먹고 부부싸움을 한다. 장진 감독의 신작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상상만 해도 즐거워지는 3명의 유쾌한 대통령에 대한 판타지다. 그렇기에 현실적인 대통령의 무게 근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블랙코미디이기도 하다.

    장 감독의 영화는 아이디어 그 자체다. 그가 주는 웃음은 자극적인 소재에 슬랩스틱(slapstic·과장된 희극)한 웃음을 비벼놓기보다, 한결같이 휴머니즘의 온기에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가미해 관객들을 단숨에 빨아들인다. 물론 기가 막히게 타이밍을 뺏는 대사들도 한몫한다.

    예를 들면 고아들을 위해 훔친 자전거를 나무에 주렁주렁 걸어놓았던 ‘기막힌 사내들’의 마지막 장면이나 ‘간첩 리철진’에서 서로의 운명을 손금을 통해 나눠 갖는 화이와 리철진의 손 클로즈업 같은 것이다.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는 그게 244억원짜리 로또복권에 당첨된 대통령이나 신장을 달라고 외치는 국민을 위해 심각하게 장기이식을 고민하는 대통령, 또 남편에게 이혼당할 위기에 처한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사실 이 영화 속의 대통령은 굳이 대통령일 것도 없다. 재벌 총수, 잘나가는 연예인 누구라도 좋다. 영화는 바로 그 특별한 사람들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방귀를 뀌고, 질투하고, 인간적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과정을 담았다. 그들이 입은 날개옷을 벗기고 우리 곁에서 아이 셋 낳고 살아가게 만들고 싶은 대중적 소망을 담았다고 볼 수도 있다.



    천사와 악마가 양쪽 귀에서 튀어나와 로또 당첨금 244억원을 가지라고 싸울 정도로 갈등하면서도 결국 국민을 위해 사재를 터는 대통령,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라는 아버지의 유훈을 실천하며 첫사랑에 얼굴 붉히는 대통령, 달밤에 남편과 멋들어진 왈츠를 추는 대통령…. 우리는 바로 이런 대통령을 원한다.

    영화 속에서 오랜 민주화투쟁에도 국민대통합을 주장하는 김정호(이순재 분) 대통령, 강렬한 카리스마로 자주외교의 기치를 내건 꽃미남 차지욱(장동건 분) 대통령, 건국 이래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 한경자(고두심 분) 대통령은 모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처럼 한국 역사에 아직은 ‘없는’, 그러나 다가올 정치사에는 ‘있어봄직한’ 혹은 반드시 ‘있어야 할’ 멋진 위정자의 표상이 된다.

    그 와중에 감독은 현실정치의 이면을 행간에 녹여낸다. 특히 대통령들의 상담역이라 할 만한 청와대 요리사를 내세워 은근슬쩍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현실 속 정치인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즉 정치를 잘하려면 배고픈 이웃아이부터 챙기고, 불행한 대통령이 행복한 국민을 만들 수는 없는 거라고 말한다. 또 로또 맞은 대통령처럼 숨긴 돈 있으면 빨리 내놓고, 서민정치는 서민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것이지 시장 가서 떡볶이 먹는다고 달라지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력과 재치 있는 블랙유머에도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2% 아쉽다. 장 감독의 태생적 한계와 옴니버스 영화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영화가 깊은 감정을 그러쥐지 못한 채 그냥 흘러만 가는 것 같다고 할까. 대사는 감칠맛 나지만 영화라는 매체와 통 친해지지 못하는 장 감독을 보고 있노라면, 초창기의 우디 앨런이나 프랑스의 아네스 자우이 감독이 저절로 떠오른다.

    한편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는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외치지만 현실은 ‘굿바이 프레지던트’를 외치는 듯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불행한 대통령이 행복한 국민을 만들 수 없다”는 대사는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 올라가기 전 누군가 꼭 해줬어야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훌륭한 대통령을 갖고 싶다는 희망이 잔혹한 슬픔으로 뒤바뀌는 경험,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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